▲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3E 8단 제품 인증을 지난해 12월 획득하고 올해 1분기 말부터 본격 공급키로 하는 등 SK하이닉스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1분기 말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시작하고, 연내 HBM3E 12단 제품에 이어 차세대 HBM4까지 엔비디아에 납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적은 설비투자로도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중국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충격에 엔비디아 AI 반도체와 HBM 수요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올해도 AI 반도체와 HBM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31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에 대한 삼성전자의 추격이 올해 빨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은 지난해 영업이익 약 15조 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불황으로 15조 원 적자를 기록했던 2023년에 비해 큰 폭의 흑자전환을 이뤘지만, 23조 원 영업이익을 기록한 SK하이닉스에게 처음으로 반도체 영업이익 선두를 내줬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 크로스는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에서 갈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월 엔비디아 HBM3E 인증을 완료하고 AI 붐의 수혜를 누렸지만, 삼성전자는 발열 등 기술력 문제로 엔비디아 HBM 인증에 실패하며 온전한 AI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절치부심하며 HBM 등 메모리 반도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왔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전체 R&D 투자액 17조8천억 원 가운데 16조 원을 반도체 개발에 쏟아부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약 5조 원 규모의 적자를 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LSI 부문 투자를 축소하고, HBM 등 메모리반도체 투자 규모를 대폭 늘렸다. 또 개발인력도 파운드리 부문에서 메모리 부문으로 재배치하며 HBM 기술개발을 최우선 순위에 뒀다.
HBM에서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는 이날 HBM3E 8단 제품이 엔비디아 인증을 통과했다는 소식으로 드러났다. 블룸버그 이날 오전 삼성전자가 지난해 12월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 인증을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또 회사 측도 이날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HBM3E 8단 제품을 올해 1분기 말부터 주요 고객사(엔비디아)에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HBM3E 8단 제품의 가시적 공급 증가는 올해 2분기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며 "1c 나노 공정 기반의 HBM4는 2025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계획대로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간은 삼성전자가 올 3분기에 HBM3E 12단 제품에 대한 엔비디아 인증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HBM4 양산에 돌입할 계획인데, HBM 1위인 SK하이닉스도 올 하반기에 HBM4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삼성전자가 HBM4에서 SK하이닉스와 시장과 기술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말부터 엔비디아에 공급할 HBM3E 8단 제품은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 ‘블랙웰’이 아니라 이전 세대인 '호퍼’ 시리즈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블랙웰은 HBM3E 12단 제품을 탑재하는데, 대부분 SK하이닉스가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호퍼 시리즈에 대한 수요도 상당해 삼성전자 HBM3E 매출이 올해 2분기부터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는 전체 매출에서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데, 지난해 창신메모리 등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이 DDR4 등 구형 D램을 대량 양산해 싼값에 대거 판매하면서 D램 시황이 악화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삼성전자 D램 사업이 상당한 차질이 빚었고, 올해 1분기까지 D램 가격 약세가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 DDR4 등 구형 D램 대신 HBM 공급 비중을 늘리면서 D램 영업이익도 크게 회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회사 관계자는 실적 발표회에서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DDR4, LPDDR4의 경우 2024년 30% 초반 수준이었던 매출 비중을 올해 한 자릿수 수준까지 가파르게 축소할 계획"이라며 "DDR4와 LPDDR4 공급 과잉 이슈가 당사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올해 전체 HBM 공급량을 전년 대비 2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3분기부터 HBM3E 12단을 시작으로 엔비디아 공급 본격화가 추정되고, AI 주문형반도체(ASIC) 수요 급증으로 올 하반기부터는 브로드컴, 구글, 아마존 등으로 HBM3E 12단, HBM4 공급 확대가 예상된다"며 "1분기 실적 저점 후 하반기로 갈수록 실적 개선폭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가 적은 투자로도 고성능 AI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세계 AI 반도체와 HBM 수요가 위축될 것이란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도 AI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중국의 AI ‘딥시크’가 20분의 1의 투자비로 오픈AI가 개발한 챗GPT 성능과 유사한 수준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엔비디아 중심의 AI 반도체 시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적은 투자로도 고성능 AI 구현이 가능해지면서 AI 반도체 투자를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딥시크는 AI 개발에 단 560만 달러(약 81억 원)만 투자했다고 밝혔는데, 오픈AI는 챗GPT-4 개발에 1억 달러(약 1455억 원)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딥시크 출시 후 엔비디아 주가는 약 17% 폭락했으며,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는 13%, 반도체 설계회사 ARM은 10%,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은 6% 가량 하락했다. AI와 반도체 관련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9.15%나 하락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딥시크 쇼크에도 올해 여전히 AI 반도체와 HBM 수요가 견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딥시크가 AI 설비투자 전망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가 전략적 이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 CEO인 다리오 아모데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딥시크는 7~10개월 전 미국 AI 모델 성능에 근접하는 AI를 적은 비용으로 만든 것뿐"이라며 "딥시크는 특별한 혁신이 아니며,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는 딥시크 등장이 AI 수요를 더 키울 것이라고 예건했다.
MS는 올해 AI 분야에 8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메타도 650억 달러 투자할 계획이다. 또 앞서 지난 21일 오픈AI와 일본 소프트뱅크, 오라클은 AI 합작사 설립을 통해 향후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건설에 5천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