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6월 미국 대통령 최초로 백악관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공식성명을 진행하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각) 미국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위치한 자택에 가족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장수한 것으로 기록됐다.
카터 대통령의 아들 칩 카터는 공식성명을 통해 "내 아버지는 평화, 인권 그리고 이타적 사랑을 믿는 모두에게 영웅이었다"며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이 있었고 우리는 서로가 공유하는 믿음을 계속해서 실천함으로써 그의 기억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의 39대 대통령으로 1977년 집권해 1981년까지 재임했다. 당시 미국은 경제불황과 2차 석유파동 등의 영향으로 여러 경제난을 겪은 데다 이란 대사관 인질 사태까지 발생해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결국 1981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면서 재선에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터 전 대통령의 업적이 가장 빛난 것은 퇴임 이후였다. 1982년 부인 로잘린 카터와 함께 카터 재단을 설립한 뒤 인권 운동가로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활약했다.
한국에서는 평화 전도사로도 유명한데 1994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남북 위기가 고조되자 카터 전 대통령은 직접 북한을 찾아 정상회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전 대통령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뒤에도 카터 전 대통령은 '카터 센터'를 통해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해 열대성 전염병 퇴출을 위한 활동 등 여러 인권 관련 활동을 이어왔다.
인권과 평화 증진 활동에 밀려 비교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에너지 효율과 전환을 체계적으로 추진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국민과 대담에서 에너지 효율 필요성을 설파하고 각종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NPR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은 1977년 노변담화에서 "우리 모두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슴속에 새겨둬야 한다"며 "평상시에도 지나치게 냉방이나 난방 온도를 낮추거나 높이는 일을 줄여 사용되는 가스를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태양광 패널을 미래의 에너지 대안으로 내다본 인물이기도 하다. 카터 대통령 취임 2년 뒤인 1979년 미국 백악관은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온수 공급에 사용했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태양의 힘을 직접 활용함으로써 신이 우리에게 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늘려 점점 줄어들고 있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미국 국내의 각종 에너지 전환 및 에너지 효율 정책을 전담하는 미국 에너지부(DOE)를 처음 설치한 것도 카터 전 대통령이었다.
에이미 자페 뉴욕대 에너지·기후정의·지속가능성 연구실 디렉터는 NPR과 인터뷰에서 "40년도 전에 카터 전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정책들을 설치했다"며 "IRA는 카터 전 대통령의 목표를 이어받아 미국이 태야광과 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에서 주도권을 되찾는 것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