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정우성씨가 11월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다관객상 시상자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당사자가 미혼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사안은 아니다. 다만 비혼 출산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률문제, 특히 상속 문제와 관련해선 한번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혼외자의 법적 지위와 인지청구 제도
현행 민법상 혼외자가 법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인지’ 절차가 필수적이다.
인지에는 친부가 자발적으로 하는 임의인지와 혼외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소송을 통해 청구하는 강제인지가 있다. 실무에서 보면 친부가 인지를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갈등을 빚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된다.
최근 김용건 배우 사건에서처럼 혼외 출산 이후 낙태 종용 등으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인지 절차를 거친 사례나 가수 김현중이 인지 청구 소송 끝에 친생자임이 확인된 사례 등은 인지 절차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 상속과 관련해 실제 발생하는 문제들
혼외자는 인지를 통해 법적 친자관계가 성립되면 혼인 중의 자와 동일한 상속권을 갖는다. 정우성의 사례에서 현재 다른 자녀가 없는 상황이라면 이 혼외자는 장래 단독 상속인이 될 수 있다.
친부가 사망하면 혼외자의 상속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잠재적 갈등 요인이 있다.
첫째, 친부의 집안에서의 반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혼외자는 집안에서 ‘허락받지 않은 아이’,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인식 개선이 되었지만 아직은 결혼하지 않고 낳은 자식을 향한 반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친부가 가지고 있던 재산이 ‘부모 또는 집안에서 물려받은 재산’에 기초한 것이면 혼외자 상속은 더 큰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더구나 아동이 미성년인 동안에는 사실상 생모가 재산을 관리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친부의 집안에서의 우려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둘째, 상속 문제는 부모 세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친부가 사망한 이후에 다시 조부모가 사망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러면 혼외자는 조부모의 재산을 ‘대습 상속’이라는 형태로 상속하게 된다. 즉, 친부의 사망 때와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셋째, 유류분 제도 때문에 상속에서 혼외자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법은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법정상속분의 2분의 1로 정하고 있어 정우성이 향후 유언으로 혼외자 상속을 제한하거나 다른 상속인에게 재산을 증여하더라도 혼외자는 최소한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은 보장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혼외자의 부모는 종종 인지 자체를 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한다. 즉, 애초에 법적 친자관계를 형성하지 않음으로써 상속 문제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우성과 문가비가 혼외자를 인지하지 않기로 합의한다면 어떨까?
◆ 친부와 친모의 합의의 효력
아이의 친부와 친모가 아이의 인지 절차를 거치지 않기로 합의하면 그 효력이 미성년자인 아이에게도 미치는가의 문제다.
만약에 아이에게도 부모의 합의가 효력이 미친다고 하면 아이는 친부에게 인지청구를 할 수 없고 친부의 재산을 상속받기 어렵게 된다. 미성년자인 아이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다.
하지만 우리 법은 아이가 자신이 성년이 된 뒤에는 친부에게 인지청구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친부가 사망한 경우라도 성년이 된 자녀가 친부의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라면 인지청구가 가능하다.
또한 최근 우리 대법원은 미성년자일 때 친부가 사망한 것을 안 지 이미 2년이 지났더라도 친모가 인지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자녀가 성년이 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직접 제기한 인지청구의 소는 적법하다고 판단하는 등 자녀의 인지청구권을 두텁게 보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우성과 문가비가 어떠한 합의를 하든 아이의 인지청구권을 제한할 수 없으므로 상속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이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외자를 둘러싼 재산 승계 문제는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있다. 단순한 법률문제를 넘어 가족 관계와 재산 승계라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우성의 혼외자 문제는 단순히 비혼 출산의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을 넘어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인식을 환기했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꼭 결혼이라는 절차가 필요한가? 일본 국적의 연예인 사유리는 결혼을 하지 않고서도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런 절차가 금지되어 있을까? 등의 다양한 논의들이 시작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연예인에 의해서 비혼의 출산 문제가 공론화된 것에 환영한다. 굳이 결혼이라는 구속에 얽매이지 않아도 자유롭게 출산이 가능한 사회로 가야 한다.
다만 혼외자가 출생했다면 그 자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생명을 존중하고 아동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시에 상속을 둘러싼 가족 사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조기에 체계적 재산 승계 계획을 수립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이해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준비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남겨진 자식들이 법적 분쟁에 휘말릴 뿐이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