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증권거래소가 2024년 11월7일(현지시각) 오전 뉴욕에서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2024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후 다우존스 지수가 1500포인트 이상 상승 마감한 다음 날 개장과 동시에 주가는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이 상승은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에스앤피(S&P)500은 12월5일(현지시각) 장중 19790.03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에스앤피500지수 등 미국 증시 지수들은 11월 중순부터 연일 최고치를 경신해오고 있다. 미국 증시는 지수 상으로 역대 최고일뿐 아니라 그 가치를 측정하는 각종 수치에서도 역대 최고이다.
이는 한마디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에서 가격은 100년 전 증시 관련 데이터가 작성된 이래 최고이고, 상대적 가치도 관련 데이터가 작성된 50년 전에 비해 최고이다.
주요 세계 증시 지수에서 미국의 비중은 거의 70%에 이른다. 이는 1980년대에 비해 30%나 오른 것이다. 미국 증시는 세계금융위기가 잦아든 2009년 이래 나머지 국가 증시들에 비해 4배 이상의 상승을 보였다.
미국 증시의 폭발적 상승은 전 세계의 돈을 미국이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민간 자금 시장에서 미국의 흡입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2024년 12월 현재의 투자 속도로 보면, 외국인들은 미국 기채 시장에서 연 1조 달러 규모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는 유로존에 들어오는 돈에 비해 2배이다. 현재 13조 달러 규모의 세계 민간투자 시장에 들어오는 돈의 70%가 미국행이다. 2010년대 외국인들은 미 증시에 연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올해는 35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증시가 다른 나라 증시에 비해 가치가 높은 것은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고,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성적이다. 패권국가인 미국이 인터넷부터 시작해서 현재 인공지능까지 신기술을 선도하고, 그 신기술의 현실에 적용하는 데 결정적 요인인 표준을 정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있다.
미국의 이른바 '매그니피션트7'으로 불리는 거대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에다가, 미국 경제가 G7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훨씬 양호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9분기 연속으로 거의 3%대의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 증시에 대한 이런 환호가 과연 현재 미국이나 세계경제 상황에 비해 정당화될 수 있냐는 의문은 여전하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인 26~27%이다. 이에 비해, 세계 증시에서 미 증시 비중은 50% 이상이다.
미 증시가 미 경제력에 비해 과다평가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 증시와 경제의 불균형 성장은 더욱 심각하다.
미국은 소득 하위 40%가 미국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인 반면에 상위 20%는 40%를 차지한다. 미국의 극심한 소득 양극화를 감안하면, 크게 격차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관련 기록이 작성된 이래 가장 큰 격차라고 옥스퍼드 이노코믹스는 지적했다.
소비는 자산과는 달리 그 양극화가 심각하지 않은 분야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가난뱅이나 부자나 하루 3끼 먹고, 한끼에 밥 한그릇을 비슷하게 먹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투자나 자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지만, 소비 시장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다. 상위 20%가 소비에서 40%나 된 것은 하위 40%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처분소득에 의해 소비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더믹로 붕괴됐던 자신감은 소득 상위 3분의 1의 몫이고, 나머지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심했던 인플레이션의 결과로 여전히 지갑을 못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붐을 탄 증시 등 금융시장 호황으로 미국의 부는 51조 달러가 늘었다. 거의 모두가 소득 상위층으로 돌아갔고,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기업 분야에서는 상위 10개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36%를 차진한다. 이는 1980년 이후 최고치이다. 가장 가치있는 기업의 주가는 하위 25%에 속한 어떤 기업의 주식보다도 750배 이상 가격으로 거래된다. 이는 10년 200배에 비해 3배 이상이다. 1930년대 이후 최고치이다.
이런 증시 붐은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와도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증시 등 금융시장 붐은 민간분야에서 늘어나는 기채로 충당된다. 정부는 이런 차입이 과도해지면 나중에 단속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는 오히려 미국 정부가 빚잔치를 선도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6%까지 올라가,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늘었다. 그리고 확대일로이다. 공공부채는 지난 10년 동안 17조 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 10년 동안의 공공부채는 그 이전 240년, 즉 미국의 건국된 이후부터 지난 2014년까지의 액수와 맞먹는다.
미국의 국력은 상대적으로 갈수록 줄어는 추세이다. 하지만, 증시 등 금융시장만은 오히려 미국 ‘예외주의’를 더 강화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 투자하려고 달려는 투자자들은 미국의 펀더멘틀이 미 증시의 가치와 이를 둘러싼 환호를 추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펀더멘틀보다는 증시를 둘러싼 환호 등 투자자들의 감정이 증시를 추동하는 시기가 온다.
현제 세계 증시에서 문제점은 미국 증시의 상승이 다른 나라로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한국 증시가 전날 미국 증시 결과에 따라 등락하는 등 미국 증시에 세계 증시가 동조화됐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올해 들어서 점점 옅어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 증시의 동조 관계를 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24년간 매월 말 종가의 상관계수가 0.65에 이른다. 1년 12개월 가운데 8개월은 같이 오르거나 같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올들어, 특히 8월 이후 이런 상관관계가 완전히 깨졌다.
10월에만 코스피지수(-1.43%)와 나스닥지수(-0.52%)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 8월과 9월, 11월은 정반대였다. 특히 11월엔 나스닥지수가 6.21% 오른 반면, 코스피지수는 3.92%나 떨어져서 가는 길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 증시로 돈이 몰리면서, 한국 등 나머지 증시가 궁핍화 현상을 빚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국 증시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증시 혼자만 독야청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의 증시는 지금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많이 올랐다. 2008년 금융위기가 잦아든 이후 몇차례 조정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곧 반등하며 올라왔다. 특히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인공지능을 둔 첨단분야 주식들의 폭등은 이제 버블의 우려를 깊게 한다.
주가는 상승해, 상류층들은 흥청망청하는데 하류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고물가에 시달리는 상황은 마치 1930년대 대공황 전야를 방불케 한다. 1930년대 대공황 전 미국 경제는 이른바 ‘금박(gilded) 경제’라 불리웠다. 겉으로는 번쩍이는 도금으로 장식된, 속이 빈 경제라는 뜻이다.
1930년대 미국은 자동차, 세탁기, 전신전화 등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에 따른 신문물에 사회가 열광했다. 인공지능 등에 열광하는 현재 미국은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