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와 도요타가 창사 이래 첫 협업에 나선 가운데 서로의 안방 시장인 한국과 일본에선 더욱 치열한 점유율 쟁탈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도요타 캠리.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와 일본 도요타자동차그룹이 레이싱 행사를 공동 개최하고 수소차 분야 협력을 추진하는 등 첫 허니문 기간을 맞은 가운데 상대방 안방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앞선 기술력을 갖춘 전기차(EV)로, 도요타는 세계 최고 경쟁력을 인정 받는 하이브리드차(EV)로 각각 일본과 한국 시장에 신차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 두 시장에서 더욱 치열한 점유율 쟁탈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일 한국도요타자동차 안팎에 따르면 회사는 상위 차급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을 강화하며 국내에서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발발 이전 수준의 판매 회복을 노리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2018년 연간 3만 대를 넘어섰던 국내 도요타와 고급 브랜드 렉서스 합산 판매량은 2019년 2만2852대, 2020년~2021년 약 1만5천 대 수준을 보이다 2022년엔 1만3851대까지 곤두박질쳤다.
2019년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에 대응해 국내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노 재팬 운동)이 확산된 영향이 컸다. 마침 전년인 2018년엔 도요타가 1만6774대, 렉서스가 1만3340대로 각각 한국서 역대 최다 연간 판매 기록을 세운 터였다.
하지만 지난해 '노 재팬' 운동이 일어난 지 5년차를 맞아 두 회사 합산 판매량은 2만2056대로 전년보다 59.2% 급증했고, 올해 들어 10월까지 1만9292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8.5%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도요타 브랜드만 따로 보면 작년 판매량이 8495대로 여전히 2018년(1만6774대)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한국도요타자동차는 지난달 26일 중형 세단 하이브리드차(HEV) '캠리' 9세대 완전변경 모델을 국내 출시하고 판매확대에 나섰다.
신형 캠리는 망치 머리를 형상화한 '헤머헤드' 콘셉트 디자인을 전면부에 적용하고 현대적 감각의 실루엣을 강조하는 등 디자인 변경을 통해 작년 6월과 12월 각각 출시한 16세대 토요타 크라운, 5세대 프리우스와 패밀리룩을 이뤘다.
아울러 신형 캠리는 기존 기본 트림인 LE 트림을 삭제했다. 가격경쟁력보단 상품성을 강조하는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형 캠리는 5세대 도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하고 리터당 17.1km의 연비를 유지하면서 최고 시스템 총출력을 기존 210마력(ps)에서 227마력으로 높여 가속성능을 개선했다.
한국 수입차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고급 브랜드, 그중에서도 중형 이상 고급 모델들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장이다. 또 작년부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을 맞아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체 수입 신차 판매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절반(49.9%)을 차지했을 정도다.
이에 발맞춰 한국도요타는 지난해부터 플래그십 하이브리드 세단 크라운, 대형 하이브리드 미니밴 알파드, 준대형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하이랜더, 준중형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 렉서스 준대형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RX 등 준중형급 이상 하이브리드 신차를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는 지난해 1만3561대를 팔아 이미 2018년에 세웠던 한국 최다 판매량 이상을 회복했다. 올해 1~10월에도 1만1479대를 판매해 2년 연속 최다 판매실적 경신이 유력하다.
▲ 현대자동차의 캐스퍼 일렉트릭(수출명 인스터).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현대차는 내년 소형 전기 신차를 앞세워 토요타의 안방 일본 전기차시장을 파고든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JAIA)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1~10월 일본에서 526대의 자동차를 팔아 전년 동기(385대)보다 판매량이 36.6% 늘었다.
현대차는 2022년 4월 전기차 아이오닉5와 수소전기차 넥쏘 등 전기차 2종을 앞세워 일본 승용차 시장에 12년 만에 재진출했지만 그해 현지 판매량은 518대, 지난해엔 492대에 그쳤다. 올해 판매 성장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작년 11월 소형 전기 SUV 코나 일렉트릭까지 현지 판매에 합류한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마뜩잖은 판매량이다.
일본 자동차 시장은 자국 브랜드 점유율이 90%를 넘어 '수입차의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더욱이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3대 자동차 브랜드는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친환경차 전략을 펼치고 있어, 일본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은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가 차지한 비중은 2.2%로 유럽(14.6%)은 물론, 한국(9.2%), 미국(7.6%)에 한참 못 미쳤다.
현대차가 전기차 제품군만으로 일본 시장 재공략에 나선 만큼 초반의 부진은 어느정도 예견됐던 셈이다.
회사는 내년 1분기 자사 전기차 가장 작고 가격이 싼 캐스퍼 일렉트릭(수출명 인스터)을 일본에 내놓고 현지 승용차 시장 재진출 3년 만에 판매를 크게 늘릴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신차 판매 시장에서 경차 판매 비중이 40%에 이를 정도로 경차 인기가 높은 자동차 시장이다.
지난해 일본 전기차시장 베스트셀러 자리 역시 경차인 닛산 사쿠라가 차지했다.
업계에선 캐스퍼 일렉트릭이 일본 소비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끌만한 상품성을 갖춘 것으로 보고 있다.
닛산 사쿠라는 20kWh(킬로와트시) 배터리를 탑재하고 일본 기준 180km의 1회충전 주행거리를 제공한다. 49kWh급 배터리를 장착한 캐스퍼 일렉트릭은 한국에서 315km의 1회충전 주행거리를 인증받았다. 더욱이 보다 완화된 기준으로 인증 절차를 진행하는 일본에선 현지 경·소형 전기차들의 2배가 넘는 500km 가까운 1회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는 일본 재진출 시점부터 자국 브랜드 위주 현지 자동차 시장의 높은 벽을 고려해 빠른 판매 확대보단 전기차 브랜드로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갖추고 서서히 인지도를 높여가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애초 엔트리(진입) 전기차가 아닌 준중형급 아이오닉5와 중형급 넥쏘를 들고 일본에 재진입 한 것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현지 출시가 현대차가 일본에서 판매량을 본격 확대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대차 일본 법인(HMJ)은 지난 8일 내년 1분기 캐스퍼 일렉트릭 일본 출시 계획을 밝히며, 고객 서비스 강화와 라인업 확대 등을 통해 2029년까지 연간 판매량을 10배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