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호연 롯데백화점 VMD팀 팀장(사진)은 롯데백화점에 입사한지 17년이 넘었다. 롯데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기까지는 윤 팀장의 많은 고민이 있었다. <롯데백화점>
세 곳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이 가운데 롯데백화점 본점 크리스마스 장식은 2년 전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백화점 외벽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설치하는 정도였다면 2022년부터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부터 서울 중구 명동 영플라자 앞까지 100m 정도 되는 거리를 마치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꾸몄다.
롯데백화점 본점 크리스마스 장식이 이렇게 탈바꿈하기까지는 윤호연 롯데백화점 VMD팀 팀장의 많은 고민이 있었다. VMD는 ‘비주얼머천다이저’의 약자로 브랜드 콘셉트에 맞춰 제품을 전시하는 등 매장 전체를 꾸미는 직업이다.
19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윤호연 팀장을 만났다.
윤 팀장은 홍익대학교 00학번이다. 대학에서는 가구와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림은 어릴 때부터 그리기는 했는데 미대를 가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에요. 전공이랑 직업 등 여러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미대를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께 통보했어요.”
대학에서 가구와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백화점 VMD를 직업으로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스스로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가구랑 제품 디자인을 하다보니까 물건 하나하나를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것들을 예쁘게 보이게 하는 것, 쇼룸을 꾸미고 잘 노출되게 하는 것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가까운 선배가 백화점 VMD를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VMD가 하는 일들을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윤 팀장은 경쟁사 크리스마스 장식 VMD들과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경쟁사 VMD들이 다른 회사에서 이직을 한 것과는 달리 윤 팀장은 사회생활을 롯데백화점에서 시작했다. 입사한지도 벌써 17년이 넘었다.
윤 팀장의 말을 빌리면 윤 팀장은 운이 좋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롯데백화점이 해외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에는 해외 오픈 매장 VMD를 담당하기도 했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을 오픈할 때도 VMD를 맡았다.
다양한 매장 오픈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VMD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다고 생각했다. 이것보다 더 큰 프로젝트를 할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이라는 대형 프로젝트가 윤 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 윤호연 롯데백화점 VMD팀 팀장은 4년째 롯데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을 책임지고 있다. 첫 해에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위치나 공간 등에서 아쉬운 점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가족들의 지원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윤 팀장의 얼굴에도 ‘엄마미소’가 번졌다. 윤 팀장은 두 아들을 둔 엄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해 집중하는 시기가 되면 아이들과 남편이 제가 제일 바쁠 때라는걸 아니까 그때는 다 같이 대동단결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모드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윤 팀장이 1년 가까운 시간을 쏟아서 완성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공개되면 가족들과 함께 롯데백화점 본점을 찾는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는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신기해하죠. 엄마가 하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매일 그림보고 사진찾는 것 같고 한데 막상 크리스마스 장식이 공개되면 ‘와 진짜 저게 저렇게 나와’하면서 신기해하는 것 같아요.”
윤 팀장이 크리스마스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다. 윤 팀장은 아이들이 어릴 때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최대한 늦게 알리고 싶었다. 윤 팀장은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때 핀란드 산타마을에서 편지가 온 것처럼 영어로 써줬다고 한다.
아이들은 산타에게 답장도 보냈다. “산타할아버지 바쁘시죠? 저도 한국에서 많이 바빠요.”
윤 팀장은 쉴 때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다 찾아보는 편이에요. 장면을 통해 색감, 음악 등을 다 파악할 수 있으니까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영감도 많이 얻고요. 최근에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작품을 재미있게 봤어요. 연출 구성이 너무 인상깊었고 섬세한 배우들 연기, 배경으로 나오는 세트 연출이 정말 극이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영화 ‘크루엘라’도 윤 팀장이 좋아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VMD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꿈을 펼치는 일이라는 점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크루엘라에는 영국 런던 리버티백화점이 나오는데 윤 팀장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백화점이다.
“규모와 상관 없이 자기만의 색을 고수하고 가져가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리버티백화점을 좋아해요. 롯데백화점도 그런 헤리티지(전통)가 있는 백화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윤 팀장은 집에서는 다정한 엄마지만 일에서만큼은 완벽을 추구한다. 윤 팀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일에 대한 ‘집요함’이다.
“VMD는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집요함, 끈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을 시작해 놨는데 본인이 완성하지 못하면 그건 그 누구도 책임져 줄 수가 없잖아요. 올해만 하더라도 팀원들 가운데 외벽 불빛 연출을 담당했던 팀원을 외벽 박사님, 쇼윈도 마네킹 연출을 담당했던 친구는 마네킹 매니저님이라고 불렀어요. 본인이 담당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전문성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윤호연 롯데백화점 VMD팀 팀장은 올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준비하면서 쇼윈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올댓재즈’ 쇼윈도(왼쪽)에 있는 마네킹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걸그룹 블랙핑크 의상을 담당하는 정성우 디자이너와 명하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42번가 쇼윈도에 들어가는 네온은 윤여준 작가와 협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올댓재즈’ 쇼윈도에 있는 마네킹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걸그룹 블랙핑크 의상을 담당하는 정성우 디자이너와 명하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옷에 달려 있는 비즈도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42번가 쇼윈도에 들어가는 네온은 윤여준 작가와, 서커스 쇼윈도에 들어간 장식들은 파키 작가와 협업했다. 쇼윈도 하단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작가들이 작업한 영상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윤 팀장이 작가들에게 느낀 고마움을 엿볼 수 있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윤 팀장이 하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협의와 협조가 필요하다. 서울 중구청은 말할 것도 없고 지하상가를 관리하는 서울시 시설공단, 백화점 앞에 있는 노점상, 백화점 맞은 편에 있는 치과까지 많은 사람들의 배려가 있어야 완성된다.
윤 팀장은 4년째 롯데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을 책임지고 있다. 첫 해에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위치나 공간 등에서 아쉬운 점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
“100m짜리 크리스마스 장식을 선보이기 전이 가장 고민이 많았어요. 크리스마스 장식을 맡아보라고 했을 때 아쉬운 부분들을 극복은 해야겠고 한정된 자원 안에서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 2022년 크리스마스 장식이에요.”
신세계백화점은 전통적으로 미디어파사드가 유명했고 더현대서울에서는 넓은 공간을 활용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선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윤 팀장도 한 순간에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뀔 수 없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100m짜리 크리스마스 장식 아이디어를 내면서 윗 분들에게 드린 말씀이 있어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금방 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 최소한 3년은 지나야 고객들도 롯데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윤 팀장은 3년을 바라봤지만 내부에서는 반응이 바로 나타났다. 윤 팀장이 VMD로서 뿌듯했던 순간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2022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선보이고 나서 직원들 사이에서 올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라는 평가가 나왔어요. 직원들 스스로 롯데백화점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어라는 ‘어깨뽕’이 들어간거죠. 그 때부터 회사 내부에 직원들끼리 투표해서 상주는 시스템이 생겼는데 VMD팀이 1등을 했어요.”
윤 팀장은 롯데백화점 직원들이 가족들과 함께 나와 크리스마스 장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1년 동안 고생했던 것들이 보상받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윤 팀장에게서 롯데백화점 VMD라는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롯데백화점 VMD로서 목표가 궁금했다. 윤 팀장은 올해 팀장으로 승진했다.
“개인적으로 어디까지 올라가겠다 이런 것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롯데백화점하면 ‘VMD’라는 인식을 남기고 싶은 것이 목표입니다. 이 목표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업무 안에서 최선이자 최대치인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나중에 지금의 롯데백화점을 떠올렸을 때 ‘그 때 VMD 누가 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