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심상정은 정의당 상임대표다. 한국의 대표적 여성 노동운동가이며 진보정당 발전에 힘쓰고 있다.

1959년 2월20일에 경기 파주에서 태어났다. 교육자가 되기 위해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했다가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남성 중심의 학생운동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껴 서울대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만들기도 했다.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하다가 1985년 구로동맹파업 주동자로 지목돼 9년 동안 수배생활을 했으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 최초의 민주노조단체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지냈다. 또 최초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사무처장을 맡았다.

17대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출마했다가 권영길 후보에게 패했다.

진보신당을 만들어 대표를 맡았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이 실패로 돌아가자 진보신당을 나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에 책임을 지고 대표를 사퇴했다.

18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통합진보당 탈당파를 중심으로 ‘진보정의당’을 창당한 뒤 당 이름을 '정의당'으로 바꿨다.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 등을 통합했다. 정의당 당대표를 지내다 현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경기 고양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과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0년부터 1년 동안 구로3공단에 소재한 남성전기 노동조합의 교육부장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됐다.

1983년부터 2년 동안은 구로1공당에 위치한 대우어페럴 미싱사로 근무하다가 노조결성 및 쟁의로 수배당했다.

그 뒤 구로동맹파업 주모자로 지명수배됐다.

1985년부터 1년 동안 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을 주도하며 중앙위원장이 됐다.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부장 및 쟁의국장, 조직국장을 지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 사무처장을 맡았다.

2000년 4.13총선 때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국회 입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당대회 부의장을 거쳐 민주노동당 대의원 겸 중앙위원까지 맡았다.

2001년부터 2003년 9월까지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으로 재직했다.

2004년 5월 제17대 국회 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같은 해 6월 민주노동당 의원단 수석부대표로 선임됐다.

2008년 1월부터 한달 동안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했다.

2010년 '정치바로'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1년 9월 진보신당을 탈당하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어 공동대표가 됐다.

2012년 7월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2012년 10월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13년 7월 진보정의당이 정의당으로 당이름을 바꿨다.

2015년에는 정의당, 국민모임, 진보결집, 노동정치연대 4단체가 모여 정의당으로 재창당하고 7월부터 11월까지 대표를 역임했다. 11월부터는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2015년 5월 30일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마을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같은 해 6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도 지내고 있다.

2016년 대한뇌전중학회 명예고문에 올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 학력

1971년 대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충암중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명지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서울대 사범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남편 이승배씨와 사이에 아들 우균씨를 뒀다.

◆ 상훈

2004년부터 2006년 연속으로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됐다. 이후 2014년에도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04년 여야가 뽑은 최고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2005년 초선의원이 뽑은 베스트 의원 1위를 차지했다.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 BEST 5 안에 들었다.

2006년 바른사회 밝은 정치 시민연합 새천년 밝은정치인상을 받고 입법정책개발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07년 제9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입법대상을 받았다.

201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뽑혔다. 선플운동본부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을 받았다.

2015년 제1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6년 'INAK(대한인터넷신문협회) 사회공헌대상 시상식'에서 국회의정대상을 받았다.

◆ 상훈

2004년부터 2006년 연속으로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됐다. 이후 2014년에도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04년 여야가 뽑은 최고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2005년 초선의원이 뽑은 베스트 의원 1위를 차지했다.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 BEST 5 안에 들었다.

2006년 바른사회 밝은 정치 시민연합 새천년 밝은정치인상을 받고 입법정책개발 최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07년 제9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입법대상을 받았다.

201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뽑혔다. 선플운동본부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을 받았다.

2015년 제1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6년 'INAK(대한인터넷신문협회) 사회공헌대상 시상식'에서 국회의정대상을 받았다.

어록


“민주당 의총의 결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 "이제 야3당이 대통령 퇴진으로 입장이 통일됐다" "야3당이 국민의 명령대로 대통령 퇴진을 관철하는데 온 힘을 합치는 일만 남았다." “내일이라도 야2당 대표가 만나 대통령 퇴진 관철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방안을 논의하자.” (2016/11/14,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대일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철회한 것에 대해 페이스북에 자신의 견해를 올리며)

“단독 회담을 추진한 배경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얼마나 반갑겠나, 얼마나. 박 대통령이 어디 의지할 데가 없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1야당 대표가 맥락 없이 제안하니 얼마나 천군만마를 얻었다 하겠나”. “그것은 백만 촛불의 함성을 왜곡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요구할 때 추 대표가 조건을 걸어 반대하지 않았나. 아무런 조건도 없는데 역으로 회담을 제안하는 문법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2016/11/14,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이를 박 대통령이 받아들여 단독 회담을 가지기로 한 것에 대해)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이 인내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더 세고 더 강하게 앞장서기 위해서 하야투쟁을 전개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가장 책임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이 대통령 하야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2016/11/12,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촉구 정의당 사전결의대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면서)

"질서있는 하야를 강제하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민심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야당들도 더는 어정쩡하게 청와대와 국민 사이에서 서성일 수는 없을 것이다." "탄핵 소추를 할지 말지는 정치적,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

"이번 달 한·중·일 정상회담이 있는데 대통령이 가기 어려울 것이고 간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수치가 되지 않겠나. 기자들이 전부 최순실, 샤머니즘 물어볼 것이며 주요 정상들이 '식물 대통령'에게 주요한 외교 현안을 협의하지 않을 것이다."

"현 사태를 수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형식이 어떻든 간에 대통령이 사퇴하는 것이다." "본인 판단이나 주변 요구 때문에 못 한다면 결국 국민의 뜻을 받들어 강제 사퇴 수순을 밟는 게 옳다." (2016/11/09, 심상정의 제안으로 국회 당 대표실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회동을 가지면서)

"고(故) 백남기라는 이름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가 됐다.고인은 밭은 숨결을 이어가며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의 권리를 웅변하셨다. 어르신께서는 살인적은 위력의 물대포를 맞고도 버티셨다. 부당한 공권력에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쓰러지신 후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사투를 벌인 시간이 무려 317일이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하셨는가."

"박근혜정부는 참담한 끝을 보이고 있다. 온전한 생명 하나를 죽음으로 내몰고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정권이었고 최소한의 사과는커녕 유족과 시위대에 책임을 전가하던 정권이다. 그 파렴치한 정권이 파국에 치닫고 있다.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민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아간 정권을 단호히 끌어내리겠다." (2016/11/06.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故백남기씨의 영결식에 참석, 추도사를 통해)

“오늘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파 잠시나마 위로라도 건네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대통령의 고통보다 이를 지켜보는 참담한 국민들이 더 걱정된다.”

“오늘 대통령의 담화는 민심과 어긋난 책임회피 담화이며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통령의 자리보전을 위한 담화다. 자신이 재벌총수를 호텔로 불러들이면서 이뤄진 강제모금을 기업의 선의의 도움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모든 불법을 최순실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발뺌이다.”

“정치권도 국민과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려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켜 국민들의 불안과 국정혼란을 끝내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2016/11/04, 국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단언하건대 식물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오기 인사는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 "정국혼란만 키운 채 참사로 끝날 것이다. 지금 국회에 친박 의원 몇몇을 제외하고 민심무시 국회조롱 개각을 납득할 국회의원은 없다." (2016/11/02, 박근혜 대통령이 야권과 협의없이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후보자로 내정한 데 대해)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주범 최순실을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늘 소환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검찰을 국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게이트의 전모를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있는지 오늘 점검하겠다." (2016/10/30, 서울중앙지검에 최순실 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하기 위해 방문하면서)

"전경련 해체는 권력에 결탁한 강자만 행복한 '이권추구 경제'가 아니라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경제'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 (2016/10/16, 전경련에 대한 해체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기로 하면서)

“유한킴벌리는 미국 킴벌리가 70%, 유한양행이 30%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2012년 이사 선임권을 둘러싼 분쟁이 킴벌리 측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100년 전통의 유한양행 시대는 끝나고 사실상 미국계 기업이 됐다.” (2016/10/11, 국정감사에서 유한킴벌리가 몰래 생리대 가격을 올려왔다고 주장하며)

“오늘 저희가 공동선언을 통해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진보정치세력을 총결집해서 9월 전후까지 더 크고 강력한 진보정당으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말씀드리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저희 정의당은 창당 때부터 분열된 진보세력을 하나로 결집시켜서 명실상부한 진보대표정당의 위상을 갖추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동안에 뿌리가 같은 진보세력 결집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오늘 함께 공동선언을 하는 4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보정치를 지지하지만 동참을 유보해왔던 많은 세력들, 지지자들이 폭넓게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저희 정의당이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5/06/04, 별도로 조직화되어있는 노동세력을 총결집해서 정의당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강력하게 만들겠다고 밝히며)

“요즘 제 별명이 ‘심블리’다. ‘심블리’. 얼굴도 많이 예뻐졌다고 하는데 정치인의 얼굴이 예뻐지는 이유는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아서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구 주민들께 감사한다.”

(총선에 임하는 각오에 대해) “지난 4년 동안 고양시와 여의도를 하루에 3~4번씩도 돌아다녔다. 주민들께서 저에 대해 ‘일 잘하는 국회의원’, ‘정의로운 정치’ 이렇게들 평가해주신다.”

(반드시 당선되어야 하는 까닭에 대해) “고양시의 더 큰 발전을 위해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제가 꼭 3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6/04/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 안의 패배주의를 과감히 털어내고 승리하겠다.""서민과 중산층의 진보, 밥 먹여주는 진보, 민생 진보로서의 노선을 선명히 걷겠다.""확고한 당의 방침으로 진보 재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 (2015/07/20,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대안 사회를 향한 실천을 통해 대안적 전망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정파간의 갈등이 해소될 것." "민주노동당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다 보면 노선은 자연스럽게 통일될 것." (2014/03/19, 민주노동당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정책청문회에서 ‘민주노동당 내의 엔엘(NL: 민족해방)과 피디(PD: 민중 민주주의)간의 노선 대립을 어떻게 풀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노동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고맙지만 단기차익에 집착하는 투기자본 등 외자의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해 함께 풀어나갔으면 한다." (2004/05/19, 오벌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과 만나 한국노동문제에 대한 외국의 부정적 시각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 얘기하며)

"재벌경제 논리를 말하는 의원들 사이에서 서민경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기싸움에, 논리싸움까지 해야 할 상황이라 고민이 많다." (2004/05, 재정경제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배정되면서)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 이익 7조5500억 원의 5% 내외면 불법 파견 문제는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 (사내하청 고용으로) 값싸게 쓴 비용을 제 값 내고 쓰려고 하다 보니 아까운 것이다. 11년 동안 불법적으로 착취 당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2004/03/12, 한 라디오매체에 출연해)

“2007년 고리1호기 수명연장 근거서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1호기 계속운전의 경제성에 대한 분석 보고서’(2007년)를 최근 열람한 결과, 발전소 철거비용 등 원전 사후처리 비용이 누락되고 원전 평균이용률을 현실과 다르게 100%를 적용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수명연장으로 2120억원의 흑자가 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고리1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경제성 분석을 조작한 것이다.” (2003/05/08, 고리 1호기의 경제성 분석이 원전 사후처리비용을 누락하고 흑자로 과다계상됐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두산은 법과 원칙을 줄곧 내세우면서도 오직 돈벌이에만 매달려 노동법이 인정하는 노조와 파업을 거부해왔다. 파업으로 생산이 멈추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업장은 노조를 귀찮은 존재지만 그래도 파트너로 인정하고 타협하는데, 두산중공업은 한순간에 노조를 없애기 어려워지자 단계적으로 무력화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2003/03/14,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분신사망 사태가 벌어진 한달 뒤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서)

◆평가

노동계 '철의여인'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진보진영 정치인이다. 한국노동운동에서 여성 대표주자라는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심상정은 젊은 시절을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역사와 함께했다.

구해근 미국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는 심상정에 대해 “1980년대 노동운동의 산 증인”이라며 “목적의식을 갖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을 해온 대표적인 여성 노동운동가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뽑혔을 때 심상정은 조세개혁을 통한 복지 증진과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할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2004년 17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삼성의 불법 행위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를 비판하는 등 적극적인 의정활동으로 '한국 진보진영의 아이콘'로 성장했다.

스스로 운동권에서 주류로 활동한 적은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제로 단위 노조위원장이나 연맹 혹은 민주노총의 임원자리를 맡은 적은 없고 주로 투쟁을 기획하는 실무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노동활동가로 활동했다.

심상정은 전노협과 민주노총 결성을 주도했고, 대기업 중심의 전국금속노조에서 사무처장을 지냈다.

수퍼우먼으로 불린다. 노동자로 여성으로 어머니로 한가지 역할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배로 도피할 때 몸이 상해 술을 못하지만 노동자들의 술자리에는 늦게까지 남았다고 한다.

스스로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을 결혼이라고 꼽는다. 결혼한 뒤 삶으로서의 운동을 더 깊이 이해했다고 한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나는 왼쪽으로 치우친 사람도 아니고 다만 왼쪽과 중간 지점사이 그 어디에서 있는 어떤 이념에도 갇히지 않은 자유인'이라고 밝힌다.

심상정은 희생정신도 높이 평가된다. 2010년 경기지사 선거와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야권 단일화'를 위해 후보에서 물러난 것이 한 예다.

◆ 기타

저서로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2007), 자서전 '당당한 아름다움'(2008), '꿈꾸는 여대생에게 들려주는 여성리더들의 이야기'(2009), '인생기출문제집'(2009),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2010), '에르끼 아호의 핀란드교육개혁보고서'(2010),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2011), '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2011),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2011),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2013) 등이 있다.

한국갤럽이 2014년 8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매월 1회 실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후보군에 한 번이라도 이름을 올린 적 있는 18명의 가운데 포함됐다. 심상정은 29개월 동안 한차례 후보군에 들어갔었다.

운동권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사랑 때문이었다고 소개됐다. 심상정이 좋아한 남학생들은 모두 운동권 출신이다보니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위대를 따라다녔다고 2015년 심상정을 집중 소개한 한 TV 정치프로그램이 보도했다.

심상정의 남편 이승배씨는 적극적인 외조로 유명하다. 이승배씨 역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두 사람을 이어줬다고 한다.

심상정을 돕기위해 남편은 주부가 됐다. 이승배씨는 청년시절 노동운동을 함께 하며 심상정과 사랑을 키워왔기 때문에 노동운동가로서 아내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돕는다. 이씨는 심상정이 선거운동을 할 때는 출근길부터 퇴근길까지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민심을 적어두었다가 아내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씨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부인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사회적 기회비용의 낭비라고 생각한다”며 “집안일과 바깥일을 동시에 하는 슈퍼우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집안일은 내가 신경쓴다”고 밝혔다.

그를 따르는 팬클럽 '심크러쉬'가 있다. 2016년 7월 24일 팬클럽 창단식이 열렸고 심상정이 여기에 참석했다. 그는 당시 "어제 잠을 못 잤어요. 소개팅 앞둔 사람처럼 너무도 설레고 초조하고... 이렇게 많이 모이실 줄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들뜬 심경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