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송병준 게임빌 컴투스 대표
송병준 게임빌 대표 겸 컴투스 대표.


송병준은 게임빌과 컴투스 대표다. 모바일게임 전문회사인 게임빌과 컴투스를 함께 이끌고 있다.

휴대전화 초창기시절부터 모바일게임에만 매진했으며 국내모바일 게임의 해외진출을 선도했다.

1976년 1월8일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게임빌(당시 피츠넷)을 설립한 뒤 4화음 벨소리가 적용된 흑백 휴대전화 시절부터 모바일게임 한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외에서 모바일게임시장이 태동하는 단계였는데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사인 노키아와 협상을 벌여 모바일게임 공급계약을 맺었다. 그 뒤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등 여러 나라로 진출했다.

게임빌과 함께 모바일게임 ‘쌍두마차‘로 불리던 컴투스를 700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그 뒤 게임빌과 컴투스는 각각 ’별이되어라‘, ’크리티카: 천상의기사단‘, ’서머너즈워‘ 등 굵직굵직한 글로벌 흥행작을 내놓으며 글로벌 모바일게임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모바일게임 초기부터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왔는데 특히 다른 회사들보다 몇 발짝 앞서 글로벌에 진출해 큰 성과를 거뒀다.

사업 초기인 2002년부터 글로벌에 눈을 돌려 북미와 유럽을 비롯해 중동지역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오랜 경험을 통해 현지에서 익힌 마케팅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 게임빌과 컴투스의 글로벌 실적을 이끌고 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썼다. 임직원들이 서로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문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업 초기부터 수시로 사내 게임대회를 열었고 최근에도 매달 모든 직원이 모여 즐기는 '게임빌파티', 직원들이 지인들을 초청해서 함께 연극, 영화, 운동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게임빌데이' 등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책임감이 강하다.

직원들이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도 스스로는 여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만큼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고 종종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게임빌과 컴투스 대표를 겸임하면서 특정 회사에 큰 실무 권한을 가진 책임자를 두지 않고 두 회사를 직접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월요일에 게임빌로 출근하면 화요일은 컴투스로 출근하는 식으로 두 회사를 챙기고 있다.

후배들에게 창업의 길을 터주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0년 창업한 뒤 벤처 창업을 꿈꾸는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다.

2013년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길벗’의 운영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선정된 개발자나 개발사가 게임빌 사옥에 입주해 일할 수 있도록 했고 법인 설립도 도왔다. 특히 입주한 업체가 개발한 게임에 대해 유통(퍼블리싱) 우선협상권이나 수익분배 같은 조건을 전혀 달지 않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2000년 1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와 기계항공공학부 학부생 등과 함께 자바(JAVA) 게임개발 및 서비스회사인 피츠넷을 설립한 뒤 게임빌 사이트(www.gamevil.com)를 운영했다. 장기와 오목, 윳놀이, 고스톱 등의 게임을 서비스했다.

게임빌 사이트를 연 지 3개월 만에 가입자 10만 명을 넘어섰고 2000년 7월 당시 10여개 업체와 콘텐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01년 4월20일 회사이름을 피츠넷에서 게임빌로 바꿨다. 같은 해 8월 유료서비스를 시작했는데 4주 만에 매출 4천만 원을 넘겼다. 아바타를 꾸미는 아이템과 길드배너, 전광판 서비스, 선물 아이템 등을 유료로 판매했다.

2001년을 기점으로 당시 시장이 초기 상태였던 모바일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01년 8월 게임빌과 컴투스, 지오인터렉티브 등 15개 게임회사가 모바일게임협회를 발족했는데 송병준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02년 장수게임이자 게임빌의 성장을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인 ‘프로야구’ 시리즈를 내놓았다. 2009년 6월 ‘프로야구’ 시리즈는 국내 모바일게임 단일시리즈 가운데 처음으로 내려받기 1천만 건을 넘어섰고 2012년에 글로벌에서 누적 내려받기 4천만 건을 돌파했다.

‘2008 프로야구’와 ‘2009 프로야구’는 당시로서 드물게 시리즈 두 편이 잇달아 내려받기 100만 건을 넘어서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까지 100만 건 넘게 내려받기된 게임은 10개 내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유럽진출을 위해 세계에서 손꼽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와 협상을 벌였다. 5월 노키아와 모바일게임 6종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2003년 영국의 모바일게임회사인 매크로스페이스와 ‘날려날려 대포알’ ‘2002 프로야구’ ‘열혈파이터’ 등 5종의 게임을 유럽에서 서비스되는 15개 포털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밖에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나라의 모바일게임 포털사이트, 이동통신업체 등과 잇달아 모바일게임 공급계약을 맺었다. 레바논 업체와도 공급계약을 맺어 중동시장에 진출했다.

2006년 국내 게임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법인을 설립했다.

2008년 5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키패드를 활용하지 않고 화면을 터치해 즐길 수 있는 터치폰 전용 모바일게임을 내놨다.

2009년 2월 국내 게임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글로벌 구글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에 진출했다.

2009년 글로벌에 출시된 모바일게임 ‘제노니아‘와 ’베이스볼 슈퍼스타즈 2009‘가 모두 글로벌 구글과 애플 앱마켓에서 각각 매출 최상위권에 올랐다.

특히 두 게임은 글로벌 애플 앱마켓의 유료게임부문에서 매출 25위 안에 들었다. 당시 기준으로 2종 이상의 게임이 25위 안에 들어간 게임회사는 미국 게임회사 EA와 게임빌뿐이었다.

2010년 3월 ‘제노니아2’를 내놓았는데 출시된 뒤 하루 만에 글로벌 애플 앱마켓에서 매출 1위에 올랐다.

2009년 5월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뒤 7월30일 상장했다. 국내 모바일게임 전문회사로는 두번째 상장이었다. 공모가는 1만5천 원이었다.

2011년 말 일본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아시아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 뒤 제노니아 시리즈와 ‘카툰워즈’ 등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2013년 4월 개발력을 높이기 위해 개발자회사인 게임빌엔을 설립했다. 기존 게임빌과 별도로 팀별 개성을 살린 독립 스튜디오로 구성해 운영했다.

2013년 자금조달을 위해 928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개발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투자하고 글로벌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했지만 621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2013년 10월 컴투스를 자회사로 편입했고 같은 해 12월부터 컴투스 대표를 겸임하기 시작했다.

게임빌은 2014년 2월 ‘별이되어라’를 내놓았다. 별이되어라는 그 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게임빌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게임빌은 2014년 7월 PC온라인게임 ‘크리티카‘의 지적재산권(IP)을 바탕으로 한 ‘크리티카: 혼돈의서막’을 출시했고 그 뒤 지속적으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시해 ‘크리티카: 해적왕의분노’에 이어 2016년 현재 ‘크리티카: 천상의기사단’을 서비스하고 있다. 2016년 현재 크리티카: 천상의기사단은 해외에서 특히 크게 흥행하면서 게임빌 실적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컴투스는 2014년 4월 ‘낚시의신‘과 ’서머너즈워‘를 각각 글로벌에 내놓았는데 두 게임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서머너즈워는 최대시장으로 손꼽히는 미국을 비롯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흥행했다.

2016년 5월 기준으로 누적 내려받기 6천만 건을 넘어섰고 100개 넘는 나라에서 매출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누적매출 6천억 원을 돌파하는 등 2016년 현재까지 컴투스의 실적을 이끌고 있다.

◆ 학력

1998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했다.

200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을 수학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0년 ‘제 55회 정보통신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상훈

2010년 ‘제 55회 정보통신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어록


“2000년 창업 후 13년째 모바일게임만 개발하다보니 세계 어떤 회사와 경쟁해도 자신 있는 수준의 개발력을 갖췄다. 흑백폰 시절부터 휴대전화가 진화할 때마다 이에 발맞춰 게임을 내놓는 데 주력하노라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2012/03/2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현대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일까? 다소 과장일 수 있겠지만, 그 답을 스마트폰이라고 말한다 해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파고든 전자기기는 없었다.”

“모바일게임 산업 분야에서 '화난 새'가 등장하는 아주 단순하지만 창의적인 해외 스마트폰 게임이 세계를 뒤흔든 사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게임뿐 아니라 영화, 의류, 인형 등으로 확산돼 엄청난 경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의 우수한 모바일게임도 스마트폰 환경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에서 좋은 성과들을 하나 둘씩 거두고 있으며 앞으로 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젊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스마트 콘텐츠 산업으로 모인다. 또 크고 작은 회사들이 이 새로운 물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 참에 더욱 박차를 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012/02/13,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발췌)

"모바일게임은 마이너한 영역이고 PC온라인게임은 메이저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지 아무도 모르는 영역이며 그 미지의 영역을 위해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2011/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 이동통신사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넓혔다. 게임빌이라는 회사브랜드를 게임에 넣는 것조차 쉽게 협의하기 어려웠다.” (2011/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2006년 미국법인을 설립했던 때를 떠올리며)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모바일게임 이용자들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아 더욱 의미가 크다. ‘글로벌 모바일게임 1위’라는 게임빌의 목표가 가시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2010년 3월 내놓은 모바일게임 ‘제노니아2’가 출시된 뒤 하루 만에 글로벌 애플 앱마켓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한 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모바일게임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글로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모바일게임회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07/12/12, 모바일게임 ‘놈3’가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에서)

“올해부터 모바일게임시장에서 선두 업체들과 중하위 업체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그 격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2007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IT강국이라는 지위를 이어가기 위해 벤처정신을 되살리는 게 시급하다. 2000년대 초 전 세계를 휩쓸었던 벤처열풍이 꺼진 이후 한국의 경우 신사업에 도전하는 젊은 기업가들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면 성장동력을 잃고 IT강국에서 탈락할 수 있다." (2008/02/14,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2008'에서)

"‘놈투’의 출시에 앞서 가격 책정을 두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 2500원으로 가격을 인상한 것은 아이디어와 노력을 들인 고품질게임이 유저들에게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2005/07/04,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대부분 모바일게임의 내려받기 요금이 2천원이었는데 모바일게임 놈투의 가격을 2500원으로 책정한 데 대해)

“국내 모바일 게임 회사는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500여 개로 추산되고 있다. 모바일게임은 온라인 게임에 비해 개발 장벽이 낮아 소수의 인원과 적은 자본으로 무수한 개발사가 생겨났다. 이러다 보니 기업 경영의 경험은 물론 제대로 된 개발 기획조차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기업들로부터 양산된 게임은 독창성, 시장성 등에 대한 준비는 고사하고 돈을 버는 것에만 급급하여 만들어내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게임을 가지고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외국의 이동통신사로부터 한국의 게임은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을 개발하는 단계부터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잡고 시작할 수 있는 회사가 드물다. 더욱이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게임성보다 기한 맞추기에 급급해 제작과 마케팅에 체계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바일게임 자체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고급화하고 사용자 입맛에 맞게 상품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문자메세지를 대거 발송하거나 무작정 고가의 경품을 제공해 내려받기를 늘리는 식의 마케팅 방식에만 치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게임을 만드는 기업들은 자동차를 찍어내는 공장과는 다르다. 게임에 혼을 담아내고 게이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상업 예술의 공간이 돼야 한다. 전문화된 인력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2004/07/21,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라크전쟁의 후유증과 증시 불안으로 국내 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국내 게임회사가 외국으로 수출하는 건수는 늘고 있는 등 게임산업의 미래가 그 어느 때 보다 밝다." (2003/04/14, 모바일게임 수출에 대해)

"노키아의 컬러휴대전화가 아직 출시되지 않아 상용화단계는 아니지만 노키아의 세계적인 판매망을 이용해 국내 모바일게임이 서비스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2002/05/17, 노키아에 모바일게임 6종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뒤)

"아시아의 이름 모를 게임회사가 게임을 서비스하겠다고 하니 노키아가 처음부터 믿어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직접 우리 휴대전화를 들고 가 다운받은 게임을 보여 주면서 설득했다." (2002/05/0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모바일게임 유럽진출을 위해 휴대전화 제조회사인 노키아와 벌인 협상에 대해)

"유선에서만 가능했던 복잡하고 화려한 그래픽 게임들을 무선환경에서 구현할 정도로 기술이 성장했다. 앞으로 PDA를 비롯해 인터넷TV, 디지털TV 등 휴대전화 이외의 다양한 기기에서 작동하는 게임들이 늘어날 것이다. 엔씨소프트가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 선두라면, 피츠넷은 국내 최고의 자바 게임 업체가 되겠다.” (2001/01/25, PC와 휴대폰에서 데이터를 연동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내놓은 뒤)

“현대인들에게 게임은 30초 안에 이해되고 5분 안에 끝나야 한다. 기존 게임들이 매니아를 형성하는 데 비해 자바게임은 인터넷 사용자층을 넓힐 수 있는 범용게임으로 인터넷 기업들의 웹서비스 촉매제로 활용될 수 있다.” (2000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게임빌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에 대해)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회사를 만드는 방법 밖에 없었다. 누구도 하고 있지 않았던 자바네트워크 게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2000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피츠넷을 설립한 배경에 대해)

◆ 평가

모바일게임 초기부터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왔는데 특히 다른 회사들보다 몇 발짝 앞서 글로벌에 진출해 큰 성과를 거뒀다.

사업 초기인 2002년부터 글로벌에 눈을 돌려 북미와 유럽을 비롯해 중동지역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오랜 경험을 통해 현지에서 익힌 마케팅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 게임빌과 컴투스의 글로벌 실적을 이끌고 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썼다. 임직원들이 서로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문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업 초기부터 수시로 사내 게임대회를 열었고 최근에도 매달 모든 직원이 모여 즐기는 '게임빌파티', 직원들이 지인들을 초청해서 함께 연극, 영화, 운동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게임빌데이' 등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책임감이 강하다.

직원들이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도 스스로는 여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만큼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고 종종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게임빌과 컴투스 대표를 겸임하면서 특정 회사에 큰 실무 권한을 가진 책임자를 두지 않고 두 회사를 직접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월요일에 게임빌로 출근하면 화요일은 컴투스로 출근하는 식으로 두 회사를 챙기고 있다.

후배들에게 창업의 길을 터주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0년 창업한 뒤 벤처 창업을 꿈꾸는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다.

2013년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길벗’의 운영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선정된 개발자나 개발사가 게임빌 사옥에 입주해 일할 수 있도록 했고 법인 설립도 도왔다. 특히 입주한 업체가 개발한 게임에 대해 유통(퍼블리싱) 우선협상권이나 수익분배 같은 조건을 전혀 달지 않았다.

◆ 기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이민화 메디슨 사장의 강연을 듣고 벤처 창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내 벤처 동아리인 ‘벤처(Venture)’의 초대회장을 지냈다.

송병준은 2009년 게임빌이 상장하면서 526억 원(당시 기준) 상당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재벌닷컴은 2009년 말 그 해 상장한 기업을 통해 가장 많은 지분가치를 얻은 인물 가운데 하나로 송병준을 꼽았다.

2013년 재벌닷컴은 30~40대 자수성가형 부자로 송병준을 꼽았다. 당시 기준으로 1540억 원 상당의 지분을 보유했다.

게임빌은 2014년 9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LA다저스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가 진행한 자선행사를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