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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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근 신성그룹 회장.
이완근은 신성그룹 회장이다. 신성그룹을 국내 반도체클린룸장비시장의 강자로 키웠다. 태양광으로 사업을 확장해 태양전지사업에 주력하고 있어 ‘태양광 전도사’로 불린다.
1941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했다.
제대 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교사에 도전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커튼, 책 등 잡화를 파는 외판 일을 하다 1970년 경원세기(현 센추리)에 입사해 에어컨을 팔았다.
그때 얻은 경험을 살려 냉동공조사업을 벌이는 신성기업사를 설립했다.
신성기업사는 냉동공조사업을 시작으로 항온항습기, 제습기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히다 삼성전자의 의뢰로 반도체클린룸장비 개발에 성공하며 반도체장비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뒤 패널사업과 공정자동화시스템사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신성그룹을 중견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신성그룹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태양광사업에 새롭게 진출했으나 중국의 물량공세에 따른 업황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꾸준한 투자로 적자를 보던 태양광사업을 흑자로 돌려놓은 뒤 태양광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일흔여섯의 고령에도 경영활동에 활발히 참여해 태양광산업의 발전에 힘쓰고 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장도 맡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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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정직과 신뢰, 절제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선생님 같은 인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환경과 미래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집무실 곳곳에 환경과 미래 관련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관련 책들을 선물한다고 한다.
소설 상록수를 읽고 교사를 꿈꿔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에 들어갔다.
집무실 책상 너머 벽면에 커다란 중국 지도와 일본 지도를 붙여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도를 보며 파트너이자 경쟁상대인 중국과 일본에 밀리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한다고 한다.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반도체분야의 핵심역량을 지닌 우수한 협력사를 골라 ‘하이닉스협력사협의회’를 구성했는데 당시 회장을 맡아 하이닉스 매각에 강력히 반대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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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외판원으로 와이셔츠, 책, 카펫 등을 판매하다가 1970년 경원세기(현 센추리)에 입사했다.
1973년 동료와 에어컨 판매회사를 설립하며 첫 창업에 나섰으나 3년 만에 사업을 정리했다.
1977년 신성기업사를 설립한 뒤 2008년까지 신성이엔지(옛 신성기업사)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2008년 8월 신성이엔지를 신성솔라에너지, 신성이엔지, 신성에프에이로 분할한 뒤 신성솔라에너지 대표이사 겸 회장, 신성이엔지 회장, 신성에프에이 회장 등을 맡아 신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신성그룹의 계열사인 우리기술투자의 대표이사도 맡았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설비기술협회장, 1998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공기청정협회 부회장,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2004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냉동공조공업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학교법인 원석학원 재단이사장을 지냈으며 2008년 제31대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장으로 선출돼 2010년까지 동창회를 이끌었다.
2015년부터 한국태양광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 학력
1959년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학사학위를 땄다.
2001년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 가족관계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인 이정선씨는 신성그룹의 계열사 에스에이치씨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차녀인 이지선씨는 1975년생으로 신성솔라에너지 부사장, 장남인 이정훈씨는 1977년생으로 신성그룹의 계열사인 우리기술투자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 상훈
1991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5년 LCD스토커를 개발해 국산화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7년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 성남중고등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성남인’ 상을 받았다.
2011년 자랑스러운 성균인상을 받았다.
신성이엔지는 1998년 우수수출상품대상, 2008년 제1회 중소기업문화대상을 받았다.
2010년 고용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2014년 제51회 무역의 날 5천만 불 수출의 탑, 2015년 제52회 무역의 날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 상훈
1991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5년 LCD스토커를 개발해 국산화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7년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 성남중고등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성남인’ 상을 받았다.
2011년 자랑스러운 성균인상을 받았다.
신성이엔지는 1998년 우수수출상품대상, 2008년 제1회 중소기업문화대상을 받았다.
2010년 고용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2014년 제51회 무역의 날 5천만 불 수출의 탑, 2015년 제52회 무역의 날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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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선언한다. 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방패를 갖춘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는 오염된 지구 환경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2016년 7월 출간한 저서 ‘태양광 선언’에서)
“투자를 안 하면 기술경쟁력에서도 중국업체에 따라잡힐 절박한 상황이었다. 신규차입과 대출이 막힌 상황이라 보유주식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8%의 고금리로 50억 원을 빌려 증자에 참여해 투자를 진행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 지금은 365일, 24시간 잠깐도 쉬지 않고 모든 장비가 100% 가동되고 있다.” (2016/06/1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공대를 나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교육학을 전공했다. 해당 분야 책을 많이 읽으면서 공부했고 지인들에게 하나하나 물어 배우면서 사업을 꾸려왔다.” (2015/08/3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태양광을 단순한 일개 사업분야로 보지 말아 달라. 태양광은 후손을 위한 환경보존 노력이며 전 지구적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2015/05/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태양광산업은 정책적인 관심을 받아야 한다. 특히 태양광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전 세계에서 높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정책적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2015/03/26, 태양광협회장 취임사에서)
“이제 우리도 바뀔 때가 됐다. 태양광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우리는 준비가 부족하다. 가령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 손쉽게 태양광으로 전기 생산과 저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전기를 직접 쓸 수 없다. 생산된 전기는 반드시 한국전력을 거쳐서 다른 곳으로 송출해야 한다. 이런 법을 바꿔야 한다.” (2015/03/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나는 교사를 꿈꿨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이 2년이나 미뤄졌지만 형설지공(螢雪之功)의 노력으로 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지방 교사로 발령받은 나는 갑작스럽게 발령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서울 출신이 지방에 오면 금방 그만둘 것이라 발령을 취소한다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발령을 기다리느니 일선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업가의 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2012/04/20,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올해 사훈으로 충무공의 임전훈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를 내걸었다. 모든 역량을 집중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종합적인 태양광 전문기업이 될 때까지 이 사훈은 계속 걸려 있을 것이다.” (2012/04/20.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중국정부가 태양광산업 규모를 크게 키우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회사들이 힘을 합치고 있지만 우리는 손 놓고 있는 모습이라 안타깝다.” (2011/07/06, ‘한국 태양광컨퍼런스 2011’에서 ‘한국 태양광산업이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당장은 어렵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다. 어차피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보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미래 후손들에게 좀 더 나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2009/06/28,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태양전지사업에서 2012년 1조 원 매출을 달성할 것이다. 나아가 2015년에 전 세계 10대 태양전지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최고의 양산기술을 보유한 세계적인 태양전지 전문회사로 성장하겠다.” (2008/10/28, 충북 증평산업단지에서 열린 태양전지공장 준공식에서)
“기회가 오기만 기다린 적은 없다. 언제나 도전을 했을 뿐이다.” (2007/11/1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데 늘 변수가 있다. 하지만 고객에게 신뢰를 얻으면 늘 승산이 있다고 본다. 자중과 겸손을 바탕으로 신뢰를 얻고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 앞선 정보를 얻기 위해 늘 공부해야만 한다.” (2007/10/25,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경영철학에 대해 묻자)
“그동안 반도체와 LCD설비사업을 통해 태양전지 제조 과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 기존 사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2007/08/17, 태양전지사업에 진출하며)
“글로벌 경쟁시대에 앞서 있다는 자만이나 두렵다는 공포를 가질 틈이 없다. 언제나 경쟁사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제 막 출발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야 앞서나갈 수 있다.” (2007/06/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난 30년 반도체코리아 건설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세계최강 반도체·디스플레이코리아가 영원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2007/01/18, 창립 30주년을 맞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정직과 신뢰, 절제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선생님 같은 인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환경과 미래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집무실 곳곳에 환경과 미래 관련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관련 책들을 선물한다고 한다.
소설 상록수를 읽고 교사를 꿈꿔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에 들어갔다.
집무실 책상 너머 벽면에 커다란 중국 지도와 일본 지도를 붙여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도를 보며 파트너이자 경쟁상대인 중국과 일본에 밀리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한다고 한다.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반도체분야의 핵심역량을 지닌 우수한 협력사를 골라 ‘하이닉스협력사협의회’를 구성했는데 당시 회장을 맡아 하이닉스 매각에 강력히 반대했다.
◆ 기타
2003년 9월 태풍 매미 수해성금으로 신성이엔지 임직원들과 함께 1400만 원을 냈다.
2005년 5월 성균관대학교 출신 사업가 2명과 함께 후배들의 벤처창업을 위해 돕기 위해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2008년 12월 태양전지연구조합의 초대 이사장에 선출됐다.
태양전지연구조합은 태양전지 관련 기술과 정보를 공유할 목적으로 2008년 12월 정부의 설립승인을 받고 공식출범했는데 2009년 하반기 태양광산업협회와 사무국을 합친 뒤 하나가 됐다.
2010년 3월 자신의 호를 딴 '석담(昔潭)장학금' 1억 원을 성균관대학교에 기부했다.
태양광사업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아 2014년 6월 중앙아시아, 2015년 4월 남미, 2015년 10월 미국 등 여러 차례 대통령 순방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외국을 방문했다.
2015년 초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성균관대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신성솔라에너지 등이 ‘이완구 테마주’에 분류돼 주가가 요동쳤다. 하지만 정작 이 전 총리와 어느 정도 깊은 친분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2016년 6월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설립된 상주시장학회에 장학금 500만원을 기탁했다.
2016년 7월 저서 ‘태양광 선언’을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