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규제 가시화, 한국 HBM 대중 수출 새우등 터지나

▲ 미국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강화된 대중 반도체 규제를 동맹국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규제 합의에 가까워 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도 결국 규제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일본이 강화된 중국 반도체 규제에 거의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도 미국 규제에 결국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중국에 반도체를 대량 수출하고 있는 국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맞서 희토류, 갈륨 등 광물 수출 규제라는 강력 대응을 고려하고 있는 데다, 미 규제에 동참하면 인공지능(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의 중국 수출 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은 한국, 일본, 네덜란드, 대만 등 주요 동맹 국가들에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 규제의 핵심은 미국 기술이 포함된 제품을 특정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의 확대 적용이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잠재적 보복 가능성에도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합의에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중국 반도체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미국의 압박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6주가 채 남지 않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암시장 등을 통해 중국의 방산 관련 기업들까지 미국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를 손에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규제는 더욱 빠르고 강력해질 전망이다.

실제 미국은 세계 최대 포토리소그래피(웨이퍼에 집적회로를 프린팅하는 장비) 기업인 ASML이 위치한 네덜란드와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회사인 TSMC가 있는 대만에도 대중 반도체 규제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라는 세계 최대 HBM 기업 두 곳을 보유한 한국도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차관은 지난 10일 “HBM은 동맹국들을 위해 생산돼야 한다”며 중국에 수출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아직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중 반도체 규제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요청한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규제 가시화, 한국 HBM 대중 수출 새우등 터지나

▲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를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종의 '당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정 본부장이 지난 13일 미국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본사에서 열린 한미 경제협력 세미나에서 축사하는 모습. <산업통상자원부>


다만 한국은 미국 규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 본부장은 지난 2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정책을 더 쉽게 수용하기 위해선 일종의 ‘당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한국의 대중규제 참여 가능성과 그에 맞는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한국은 미국이 HBM을 포함한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국가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미국 규제에 맞서 중국은 강력하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 정부가 ASML이 중국에 판매한 심자외선(DUV) 리소그래피 장비의 유지보수를 중단시킬 계획이라고 밝히자, 중국 당국은 “중국 수출을 제한할 경우 ‘영구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올해 매출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 ASML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다. 실제 독일 도이치뱅크는 18일(현지시각) 내년 ASML의 중국 매출이 22%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며 목표주가를 13.6% 낮췄다.

일본도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은 FDPR 규칙을 직접 적용받지 않도록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상 중이지만, 중국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배터리 등 전자제품 생산에 필수인 희토류를 포함해 갈륨, 흑연 등 천연광물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는 자원 강국이기 때문에 광물 수출을 금지하면 세계 전자 산업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규제 가시화, 한국 HBM 대중 수출 새우등 터지나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두 회사의 올해 상반기 중국 반도체 매출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수출 증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가량 늘었다. 사진은 두 회사의 HBM 이미지.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두 회사의 올해 상반기 중국 반도체 매출은 각각 32조3452억 원, 8조6061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같은 매출 상승은 HBM 등 반도체 중국 수출액 증가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중국 반도체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 늘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HBM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이 막히면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규제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보복 조치로 피해를 볼 수 있어 진퇴양난의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핵심광물 수입 의존도는 99.9%이며, 이 가운데 중국 의존도는 80% 가량이다.

홍콩 경제매체 아시아파이낸셜은 “서울과 워싱턴은 아직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을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