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온과 포드 합작사 블루오벌SK이 진행하고 있는 테네시누 스탠턴 공장. 2025년 연말 제품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블루오벌SK > |
[비즈니스포스트] 포드가 중저가 차량으로 전기차 사업 무게중심을 옮기겠다고 결정하면서 고가 픽업트럭용 배터리를 납품하던 SK온의 입지가 불확실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포드가 다른 협력사인 중국 CATL과의 파트너십을 높이 평가하면서 SK온이 아닌 다른 업체에서 중저가 배터리를 공급받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26일 인사이드EV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포드가 중저가 차량 중심으로 전기차 사업 방향을 재조정하면서 배터리 협력사 SK온이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떠오른다.
인사이드EV에 따르면 포드는 고가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사업을 축소하고, 3~4만 달러 수준 가격대의 차량을 개발해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F-150 라이트닝은 미국에서 시작가격이 6만5천 달러(약 9천만 원)에 육박한다. SK온은 F-150 라이트닝용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데 포드의 선택으로 공급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반대로 포드는 CATL과는 배터리 관련 협업을 강화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꺼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현지시각으로 24일 연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중국 업체와 협업해서 중저가 전기차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CATL과 맺고 있는 파트너십은 상징적(signature)”이라고 답했다.
CATL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이미 시장에 출시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두었기 때문이다. SK온은 2026년에서야 LFP 배터리 양산에 들어갈 방침이다.
포드가 CATL로부터 기술 라이선스를 받아 건설하는 미국 미시간주 마샬 공장도 LFP 생산을 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
이에 포드가 준비하는 중저가 전기차도 제조 단가를 맞추기 위해 CATL산 LFP 배터리가 들어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 짐 팔리 포드 CEO가 2023년 2월13일 미시간주 로물루스에 위치한 포드 이온파크에서 CATL과 협업해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안을 발표하고 있다. 뒤쪽 화면에 LFP(Lithium ion phosphate) 배터리가 니켈코발트 배터리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방사형 그래프가 보인다. <포드> |
포드가 CATL과 협업을 강화할수록 ‘비상경영’ 체제에 직면한 SK온으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적자 행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SK온에게 포드가 중요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SK온이 포드와 미국 합작사 블루오벌SK를 설립하고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10조 원을 들여 공장 3곳을 신설한 것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포드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선택을 하면서 SK온과 ‘엇박자’를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한편에서 나온다.
SK온 입장에서는 설비투자를 늘린 상황에서 포드가 당초 예상만큼 배터리 구매를 하지 않는다면 고정비용만 들이는 선택지로 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증권가에서도 SK온 2분기 실적이 수천억 원대 적자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신증권의 위정원 연구원은 SK온 모기업 SK이노베이션 실적 전망에서 “정제 마진 하락과 SK온 실적 부진(판매량 예상치 하회, 평균판매가격 하락)에 기인해 영업이익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정했다.
SK온은 미국 시장 개선 전망에 근거해 올해 하반기 흑자 전환 목표를 세워뒀지만 포드의 수주 물량이 예상만큼 받쳐주지 않는다면 실적 개선에 여의치 않을 수 있다.
포드가 SK온과의 켄터키주 두 곳 공장 가운데 2공장 양산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는 점도 변수다. 현지매체 포드어쏘리티에 따르면 포드와 SK온은 테네시주 스탠튼에 짓고 있는 공장도 전기차 수요 둔화로 당초 예상보다 수개월 뒤인 2025년 연말에 가동한다.
물론 포드는 CATL과의 공장 투자 규모 또한 일부 축소 조정하기도 했다.
허나 저가형 전기차를 위해서는 CATL과 협업이 중요하다고 CEO가 직접 나서 강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CATL로 수주 물량이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SK온이 포드의 중저가 차량으로 선회하는 전략에 맞춰 가격 경쟁력을 높인 배터리를 성공적으로 준비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SK온의 비상경영을 다룬 기사를 통해 “SK온은 전기차 수요 확대 예상에 근거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등지에 공격적인 투자를 여러 차례 단행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분석가들 발언을 인용해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 등 경쟁사들 또한 배터리 설비 투자를 축소하긴 했지만 SK온은 이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