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스파크플러스 세미나실에서 고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의 유언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상속과 관련한 가장 큰 이슈는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기자간담회 내용이다.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이 상속받을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한국의 상속세 제도와 관련해 살펴보자.
효성그룹의 고
조석래 명예회장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세 아들은 모두 효성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중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2014년 효성그룹을 떠나면서 당시 효성 사장을 맡고 있던 형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주요 임원진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이는 효성그룹 형제의 난이라고 불렸다. 사실 한국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는 2세들 간의 갈등이 종종 발생하고, 이를 ‘OO 그룹 형제의 난’이라는 식으로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24년 3월 효성그룹의
조석래 명예회장이 별세하며 유언장에 “부모 형제의 인연은 천륜이다. 형은 형이고 동생은 동생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형제간 우애를 지켜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조현문 전 부사장에게도 법정 상속인의 최소 상속분인 유류분을 웃도는 재산을 물려주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정에 따르면
조현문 전 부사장이 상속받을 재산은 1천억 원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2024년 7월 조 전 부사장은 “상속재산 전부를 공익재단 설립에 출연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런 조 전 부사장의 행보와 관련해 이러한 결정이 순수한 사회 환원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상속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상속받은 재산을 공익재단에 출연하면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언론에서는 '상속세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익법인을 통한 기업승계: 해외 파타고니아 사례와 한국의 현실
해외에서는 공익법인을 이용한 기업승계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공익법인으로 기업 지분을 출연해 경영권을 안정화하고 기업을 승계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공익법인을 활용한 기업승계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파타고니아(Patagonia)’라는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회사 가치의 98%에 해당하는 의결권 없는 주식을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다. 그리고 나머지 2%의 의결권 있는 주식은 '파타고니아 목적 신탁'에 귀속시켰다.
이를 통해 파타고니아는 회사의 경영권은 유지하면서도 수익의 대부분을 환경보호에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상속세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보면 모두 칭찬 일색이다.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언론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그런데 이번 조 전 부사장 상속재산의 환원과 관련해서 언론은 꽤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많은 언론사가 ‘상속세의 절감’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기사를 내보냈다.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 과거에 일부 대기업에서 공익법인을 통해 유리한 절세효과만 얻고 실제로는 대주주 등의 이익을 위해서 악용해 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주식 취득과 보유, 의결권 행사 등에 강력한 제한을 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때 상속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후술하는 여러 제한 조건 때문에 파타고니아와 같은 대규모 주식 출연과 경영권 유지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그런 이유로 실제로 기업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는 데 소극적으로 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6조는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하면 상속세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않는 조건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주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기본 원칙 및 출연 방법
- 종교, 자선, 학술 관련 사업 등 공익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을 하는 공익법인 등에 출연한 재산일 것
- 상속세 신고 기한까지 출연해야 함 (부득이한 사유로 지연 가능)
- 부득이한 사유 : 법령상 또는 행정상의 이유로 소유권 이전 지연, 공익법인 설립 허가 지연 등
2. 출연 요건
상속인의 의사(2명 이상인 경우 합의)에 따라 출연할 것
상속인은 출연된 공익법인 이사 현원의 1/5 초과할 수 없음
상속인은 공익법인 사업 운영 관련 중요사항 결정 권한 보유 불가능
3. 주식 출연 시 특별 규정
공익법인이 보유할 수 있는 주식은 원칙적으로 회사 전체 주식의 10% 이내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의 경우에는 해당 회사 주식의 5% 이내만 보유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주식의 의결권을 포기하거나 자선, 장학, 사회복지를 주로 하는 공익법인일 때는 20%까지도 보유할 수 있다. |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한다면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을 상속세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않아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러한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사후 관리 의무를 위반하면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파타고니아의 사례는 기업이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을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러한 모델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법처럼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에는 어느 정도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잘 운용된다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