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전탑과 전선이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스톤리지에 건설중인 데이터센터 인근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배터리 3사는 산업 초기 수요 둔화, 이른바 ‘캐즘’을 겪은 전기차 대신 최근 ESS용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려 한다. 이에 ESS 시장에도 유사한 '수요 리스크'가 드리워질지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18일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내 ESS 사업 다수가 포화 상태에 놓인 전력망과의 연결 지연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 연구소가 지난 6월에 펴낸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말 기준 '계통 연계'를 기다리는 ESS 프로젝트 규모가 발전 용량 기준 749기가와트(GW)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700개의 발전 용량에 해당한다. 계통 연계는 대규모 전력 사용 시설을 전력망에 안전하게 연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승인 절차를 뜻한다.
ESS 프로젝트가 건설 및 시험 가동을 마치고 가동을 시작해 상업적으로 전력을 판매하기까지 걸리는 대기 시간의 중앙값은 2015년 1년6개월에서 지난해 5년으로 늘어났다.
변압기와 차단기 등 전력망 설비의 긴 조달 기간과 송전망과 변전소 증설 지연 및 숙련 인력 부족 등이 ESS 프로젝트의 전력망 연결을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로렌스버클리 연구소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계통 연계를 요청한 사업 가운데 2025년 말까지 상업 운전에 도달한 설비는 13%에 불과했다”며 “현재 연결을 요청한 설비 대부분도 건설될지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할 때 전기를 저장한 뒤 수요가 증가할 때 방출하는 설비인 ESS는 최근 미국 전력 수요 급증에 따라 핵심 설비로 부상하고 있다.
ESS가 전기 요금을 절감하고 전력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줄이며 전력망 부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인데 정작 전력망 연결이 밀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 ESS 시장은 당분간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시장 조사업체 우드맥킨지는 지난 6월23일 펴낸 보고서를 통해 올해부터 2031년까지 미국 ESS 시장은 현재보다 네 배 증가한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ESS 시장 성장 전망에 맞춰 한국 배터리 3사는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설비 일부를 ESS용으로 돌리며 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17일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있는 완성차 기업 GM과 합작공장 설비 일부를 전기차에서 ESS 배터리용으로 전환해 생산을 시작했다.
이 외에 미시간 랜싱과 홀랜드 및 오하이오 혼다 합작공장까지 미국에 4곳의 ESS 생산망을 구축했다.
▲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배터리 단독 공장 앞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GM이 보유했던 합작 지분 49.99%를 전량 인수해 삼성SDI가 공장을 100% 보유·운영하게 된다.
또한 삼성SDI는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지은 배터리 합작공장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지난해 10월부터 일부 가동을 시작했다.
SK온도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 중인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일부를 ESS용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전력망 접속 지연은 ESS 수요 자체를 직접 약화하는 요인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배터리를 생산해 ESS를 설치하고 전력망에 연결해 상업 운전으로 이어지는 사이클 뒷부분에 병목이 발생하면 생산능력 확대와 실제 출하 및 매출 증가 사이에 시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충전소 부족과 같은 이유로 수요가 예상보다 둔화하는 ‘캐즘’을 겪었는데 ESS 시장에도 유사한 수요 리스크를 안을 수 있는 셈이다.
중장기 관점에서 전력망 병목으로 전체 미국 ESS 시장 규모 증가 속도가 줄어들면 배터리 시장의 성장 속도 자체도 둔화해 설비 가동률에 타격도 불가피하다.
더구나 GM과 포드 등 완성차 기업까지 미국 시장을 노리고 최근 ESS용 배터리 사업부를 설립해 생산에 뛰어들었다.
ESS를 전력망에 연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신규 업체 진출까지 맞물리면 K배터리에 경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국내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연결 문제는 에너지 개발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면서도 “연결이 늦어지다 보면 공급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통계 분석 기관인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 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부터 2년 반 동안 54GW 규모의 배터리 저장 시설이 추가로 가동될 예정이다.
결국 ESS의 전력망 연결 대기 시간이 계속 지연될 수록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및 SK온 등은 중장기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환경 에너지 산업 협회인 어드밴스드 에너지유나이티드는 지난 6월22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ESS와 같이 새롭고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경우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