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2024년 1분기 말 기준 4대 은행 IRP 최근 1년 동안의 수익률. <금융감독원 자료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택하는 주요한 바로미터는 수익률 관리능력이 될 것이다.”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주로 판매기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앞으로 수익률에 초점을 둔 운용기관으로 기능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11일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시중은행 퇴직연금사업 담당부서 실무자들은 한국 퇴직연금시장의 미래를 이렇게 바라봤다.
한국은 여전히 퇴직연금을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는 비중이 현저히 높지만 퇴직연금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중은행 일선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느껴졌다.
이들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등 제도적 노력과 투자시장 활성화 등이 맞물려 한국 퇴직연금 시장도 점차 수익률과 운용관리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퇴직연금시장은 이미 400조 원을 바라보고 있다. 2033년에는 940조 원 규모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금융업계의 거대한 먹거리 시장이다.
▲ KB국민은행은 2024년 1월 연금사업 추진력 강화를 위해 기존 자산관리(WM)고객그룹 산하에 있던 연금사업본부를 독립본부로 전환했다. < KB국민은행 퇴직연금사업 페이지 갈무리>
이에 4대 은행들은 이미 퇴직연금사업 조직과 전략 재정비에 돌입하며 치열한 각축전을 준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24년 1월 연금사업 추진력 강화를 위해 기존 자산관리(WM)고객그룹 산하에 있던 연금사업본부를 독립본부로 전환했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 디폴트옵션 컨설팅센터도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올해 기존 연금사업본부 조직을 각각 연금사업단과 연금사업그룹으로 격상했다.
하나은행은 2024년도 조직개편에서 퇴직연금 상품과 수익률 관리를 위한 연금상품지원부를 신설했다. 우리은행은 2021년 12월 연금사업부 외 연금지원부를 구성했고 지난해 말에는 연금지원부 안에 연금개발팀을 만들었다.
우리은행 연금사업그룹 관계자는 “기존 기업금융 강점에 바탕한 기업고객 위주 확정급여형(DB) 연말 영업에서 개인 DC, IRP 중심의 상시 영업으로 연금고객 관리사업 구조를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DC와 IRP 적립금 증가 규모가 가장 컸던 신한은행은 퇴직연금사업 조직 약 140명 규모에서 고객관리팀 인력이 40명가량을 차지한다.
4대 은행은 퇴직연금 투자상품 라인업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은행은 은행권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최대로 보유하겠다는 목표 아래 퇴직연금 ETF 상품 수를 지난해 50개 수준에서 현재 107개 수준으로 대폭 늘렸다.
신한은행은 ETF를 포함 증권사 수준으로 퇴직연금 상품 수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 신한은행은 고객들이 투자상품에 관심이 높아지는 데 따라 상장지수펀드(ETF) 등 퇴직연금 상품 수를 확대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신한은행 퇴직연금사업 페이지 갈무리>
신한은행 연금사업부 관계자는 “퇴직연금에 대한 인식이 퇴직금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에서 최근 안정적 노후를 위해 불리는 자산으로 바뀌면서 은행권에서도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타깃데이트펀드(TDF), ETF 등 투자상품 적립금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 시장에서도 점차 원금형에서 투자상품으로 가입금액이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도입 1년이 지나면서 수익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제도 도입 초기 다수의 고객이 원리금보장상품인 초저위험 중심으로 가입했다면 앞으로는 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퇴직연금 전체시장의 투자상품 비중 확대로 연결될 것이다”고 바라봤다.
은행권 퇴직연금사업 실무자들은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시장이 2000년대 이후 미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퇴직연금시장은 생명보험회사에 이어 1970년대까지는 은행이, 1990년대에는 종합컨설팅 능력을 갖춘 대형 금융기관이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다 2000년대 뒤 퇴직연금 수익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경쟁력 높은 자산운용사의 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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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은행은 올해 기존 연금사업본부를 연금사업단으로 격상하고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상품 라인업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은행 퇴직연금사업 페이지 갈무리>
이처럼 한국도 점차 많은 고객들이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은 그동안 원리금보장형상품 중심 시장에서 ‘안정성’과 ‘신뢰성’을 무기로 대표 사업자로 군림했지만 앞으로는 수익률 중심의 투자상품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4대 은행이 퇴직연금사업 최우선 목표를 묻는 질문에 정한 듯이 ‘수익률 제고’와 ‘고객관리’를 대답으로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이 호주와 미국 같은 퇴직연금 선진국들처럼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퇴직연금 관리와 연금 방식 수령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데는 은행권도 입을 모았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직장인이 은퇴해 소득이 없는 기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제도지만 한국에서는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당장 소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며 “더 많은 퇴직연금 계좌가 연금수령으로 개시될 수 있도록 세제혜택 강화 등 인센티브를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우리은행은 퇴직연금 수익률 관리 강화를 통해 은행의 장기 충성고객을 확보와 고객의 안정적 노후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우리은행 퇴직연금사업 페이지 갈무리>
퇴직연금의 투자 활성화 등을 위한 거래 편의성 개선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재 대부분 시중은행에서 퇴직연금 ETF 상품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증권업은 실시간 ETF 매매거래가 가능한 반면 은행은 실시간이 아닌 장중 분할매매 방식의 지연매매를 통해야 한다.
올해 들어 은행권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기준 은행권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조3522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퇴직연금 시장 적립금(385조7천억 원)의 약 52% 수준이다.
2024년 1분기 기준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에 맡겨진 퇴직연금 적립금은 138조1592억 원 규모로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4대 시중은행 퇴직연금사업 담당부서 실무자들은 안정적 노후를 위한 고객 서비스에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사업에서 양적성장뿐 아니라 수익률 관리 등 질적성장으로 전환을 위해 선제적, 능동적으로 전략적 마케팅을 활성화하고 고객 관리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퇴직연금 시장 변화와 고객의 자산관리 요구에 발맞춰 ‘수익률 향상을 목표로 한 고객관리’에 방점을 두고 사업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자산관리부터 퇴직금 수령, 연금 수급에 이르는 ‘생애주기별 통합 연금관리’를 핵심 사업모델로 고객의 ‘연금자산에 대한 균형성장’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 퇴직연금은 ‘손님이 평생 믿고 맡길 수 있는 세심하고 종합적인 연금관리’라는 사업 철학을 바탕으로 퇴직연금 자산의 수익률 관리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며 “퇴직연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꾸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 수익률 관리 강화를 통해 은행의 장기 충성고객을 확보와 고객의 안정적 노후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겠다"며 “이를 위한 상품 경쟁력 강화, 차별화한 고객관리로 고객의 실질적 자산증대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