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안 팔리고 보조금 남아돈다, "보조금 재인상과 충전료 할인" 요구 커져

▲ 서울의 한 주차장에서 충전중인 전기차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전기차 시장이 캐즘(대중화 이전 일시적 수요 감소)에 빠진 가운데 국내에선 전기차 판매가 둔화를 넘어 두자릿수 역성장을 기록하는 등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심각한 위축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전기차 대당 구매 보조금은 전기차 판매 활성화와 함께 2017년 이후 계속 축소돼왔는데, 최근엔 전기차 판매량이 급격히 줄면서 지방자치단체별로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이 남아도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중장기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전기차 전환 동력을 지원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규모를 다시 올리고, 충전료를 할인하는 등 적극적인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은 11일 서울 서초구 협회에서 '전기차 수요 확대를 위한 소비자 인식개선 방안'을 주제로 친환경차분과 전문위원회를 열고 "앞으로 2~3년 동안 한시적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2022년 보조금 수준(승용 기준 700만 원)으로 3년간 유지하고, 충전요금 할인 특례를 부활하는 등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세계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국내 전기차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판매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6만2593대로 2022년보다 1.1% 줄었다.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 가운데 전기차 시장이 역성장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더욱이 올해 들어 5월까지 국내 전기차 누적 판매량은 5만157대로 전년 동기보다 26.7%나 감소했다.

정부는 앞서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420만 대로 제시했다. 올해부터 작년 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의 약 3.4배에 달하는 55만 대를 매년 추가로 판매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다. 

KAMA, 국토교통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 등에 따르면 전기차 통계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54만3900대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 전기차 관련 대당 최대 국고 보조금(전기 승용차 기준)을 2017년 1400만 원에서 2022년 700만 원, 지난해 680만 원, 올해 650만 원으로 해마다 줄여왔다.

또 2016년 기본요금의 100%, 사용량 요금의 50%를 할인하는 것을 뼈대로 도입됐던 전기차 충전요금 특례 할인도 할인 규모를 줄여오다 2022년 6월을 끝으로 종료했다.

전기차 관련 혜택이 줄어드는 동안 2020년 6월까지 1kWh(킬로와트시)당 173.8원이었던 환경부 급속충전기 요금은 현재 100kW(킬로와트) 이상 충전기 1kWh 당 347.2원, 50kW 충전기 324.4원으로 배 가까이 올랐다.

대당 전기차 보조금 축소로 차량 실구매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전기차 보유자가 연료비 절감으로 누릴 수 있는 장점도 크게 줄어든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차질없이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구매와 유지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가 지난해 말 이볼루션과 함께 전기차 보유자 128명, 비보유자 401명 등 총 5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는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데는 보조금 등 금전적 혜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전기차 비보유자 중 가장 많은 37.8%가 전기차 구매를 고려한 이유로 '보조금 등 금전적 혜택이 있어서'라고 답했다. 전기차 보유자는 전기차를 구매하는 이유로 가장 많은 61.7%가 '충전 비용이 경제적이라서(유류비 절감)'를 꼽았다.
전기차 안 팔리고 보조금 남아돈다, "보조금 재인상과 충전료 할인" 요구 커져

▲ 국내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고려한 이유.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김성태 전기차사용자협회장은 "전기차 비보유자의 구매고려 요인 중 보조금 등 금전적 혜택이 가장 큰 요인으로 조사됐다"며 "보조금 정책이 전기차 보급 확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꾸준히 두자릿수 이상을 기록했던 2022년까지 지방자치단체별로 배정된 보조금이 대부분 소진됐다.

하지만 전기차 판매가 역성장한 지난해 서울의 보조금 소진율(출고대수/2023년 공고 대수*100)은 67.3%에 그쳤다. 인천은 45.3%로 절반에도 못미쳤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지급한 전체 160개 지자체 가운데 100곳이 넘는 지역에서 보조금을 모두 소진하지 못했다. 

국내 전기차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가운데 전기차 대당 구매 보조금이 실질적 전기차 구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액수로 낮아지면서 정책 실효성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기존보다 더 낮은 가격대에 상품성도 갖춘 보급형 전기차를 출시하며, 침체기를 돌파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날 7월 양산에 들어가는 경형 전기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티저 이미지를 처음 공개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이날 처음 공개한 캐스퍼 일렉트릭의 1회 충전 주행거리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기존 내연기관차 모델보다 전장을 25cm 늘리고,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315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작년 출시된 동급의 기아 레이 EV(205km)보다 무려 100km 이상 개선됐다.

이에 따라 당초 가격도 레이 EV(2775~2955만 원)보다 오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내 시판 전기차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표가 붙을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도 최근 보급형 전기차 EV3 가격을 공개하고 전국 지점에서 계약을 개시했다. 동급의 전기차 니로 EV보다 100km가량 크게 늘린 501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했지만, 시작 가격은 니로 EV보다 1천만 원 가까이 낮췄다.

이같은 신차 출시에 전기차 구매 보조금 확대 등 정책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급격히 얼어붙은 국내 전기차시장이 빠르게 수요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2021년 기준 전기차의 총운영 비용은 내연기관차보다 약 650만 원 낮았지만, 매년 보조금이 줄었고, 충전요금 할인특례 일몰 등으로 전기차의 경제성 우위 효과가 약화되고 있다"며 "전기차 캐즘 극복을 위해서는 전기차 보조금 증액, 충전요금 할인 등 경제성의 확실한 우위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