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지속해서 그룹 지주사인 HD현대 주식을 사들이며 지분율을 확대하는 배경에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몽준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상속세 등 자금 마련과 함께 최근 잇따른 자회사 상장에 따라 HD현대 기업가치가 하락한다는 일부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1석2조'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기선 HD현대 지분 폭풍 매입 왜, 주주 불만 잠재우며 승계자금 마련한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지속해서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지분율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회사의 미래가치와 기대 배당수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0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 부회장이 단기간에 HD현대 주식을 집중 매입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배당을 비롯한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HD현대는 5월부터 여덟 차례 공시를 통해 정 부회장이 회사 주식을 매수해 주식 수가 455만5968주(5.77%)로 늘었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의 주식 수는 3월 말 기준 415만5485주(5.26%)였는데 최근 40만 주 넘게 매입한 것이다. 현재 주가 수준을 고려하면 약 270억 원 규모다. 

HD현대그룹이 정기선 부회장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인 만큼, 정 부회장의 지분 매입은 당연히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HD현대그룹은 지주사 HD현대를 정점으로 조선, 정유, 건설기계, 전력기계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HD현대 지분 2101만1330주(26.6%)를 넘겨받는 일은 HD현대그룹의 경영 승계를 매듭짓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정 이사장의 지분 가치는 최근 HD현대 주가 수준에 견줘볼 때 약 1조3천억 원 수준인데, 증여·상속세율 50%를 적용하면 적어도 6500억 원의 승계 재원이 필요한 셈이다. 

현재 정 부회장의 승계 재원은 HD현대와 계열사에서 나오는 급여, HD현대의 배당금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HD현대 지분을 늘리는 것은 더 많은 배당 수익을 확보해 승계 재원을 마련하려는 장기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회사 지분을 매입하지 않고 순수하게 현금을 확보해두는 게 정 부회장으로선 증여·상속 재원을 마련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억 원으로 HD현대 지분을 매입한 뒤 매년 배당 수익률이 10%의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해도 10년이 지나야 100억 원의 배당 현금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HD현대 자회사들의 이익 수준이 지속해 상승해 배당수익이 증가세를 보이고, 단기간 내 증여·상속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가정한다면 현금 보유 대신 HD현대 지분 매입이 훨씬 유리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HD현대의 주력사업인 조선 부문은 지난해 흑자로 전환한 데 이어 3년치 이상의 일감을 기반으로 꾸준히 실적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기기 사업도 사상 최대 실적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HD현대의 기업가치가 높아진다는 가정에선 현금보다는 회사 주식 매입이 더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회사 주가가 상승하면 증여·상속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지만, 현금보다는 주식을 담보로 설정해 대출을 받아 승계 재원으로 활용하는 게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의 지분 매입은 소액주주들과 시장에 책임경영 의지를 강력하게 표시하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경영 승계 과정에서는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다소 엇갈리는 경향이 있다. 기업가치가 높아져 주가가 상승하면 주주 자산 가치도 불어나게 되지만, 대주주는 증여·상속세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주가 상승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HD현대 일부 소액주주들은 대주주의 존재가 주가 상승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HD현대그룹은 여러 차례 계열사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기선 HD현대 지분 폭풍 매입 왜, 주주 불만 잠재우며 승계자금 마련한다

▲  8일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열린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기념식에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왼쪽 다섯번째),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왼쪽 여섯번째), 이기동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왼쪽 일곱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최근 상장된 HD현대 자회사 HD현대마린솔루션과 관련해서도 HD현대 일부 주주들은 HD현대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주사에서 자회사가 분리돼 상장되는 경우, 대개 지주사의 영업가치가 할인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주사와 자회사 영업실적이 각각의 장부에 중복 기록된다. 

앞서 HD현대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도 핵심 자회사인 HD현대중공업이 상장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HD현대 주식의 주된 저평가 이유는 산하에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조선)과 HD현대사이트솔루션(건설기계)을 두고 있는 옥상옥 지배구조 때문인 만큼, 중복 상장에 따른 할인 해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올해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마린솔루션, 조선 계열사 실적 개선으로 지주사가 취할 배당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증가한 배당 수익을 주주 환원 확대에 사용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