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다. 목표를 정하면 완고하게 밀어붙이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1958년 10월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유아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며 한양대 법대에 합격했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추미애는 판사로 법조계에서 이름을 알린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며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추미애는 38세의 나이로 서울 광진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판사출신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대선에서 김대중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아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며 유세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희망돼지저금통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로 불리기도 했다.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않았다. 추미애는 민주당 분당사태 당시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았다. 다음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가 역풍에 부딪혀 17대 총선에서 낙마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재기의 발걸음을 뗐다.

20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여성 첫 지역구 5선’이라는 고지에도 올랐다.

추미애는 8월27일 더불어민주당의 당권을 거머쥐면서 TK(대구, 경상북도) 출신의 첫 여성 당수가 됐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추 대표는 ‘원칙과 소신’을 최고의 정치덕목으로 꼽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 ‘강기(剛氣)로 똘똘 뭉친 여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만큼 타협이 없다는 뜻이다.

화법이 직선적이고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정치적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5선 의원이지만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의원은 안규백 신창현 더민주 의원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의원은 추 대표가 취임한 뒤 각각 사무총장과 당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추미애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계파정치를 하지 않아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8월27일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계파의 곁불조차 쬐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생을 21년간 의롭고 외롭게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미애는 당권 경쟁에서 친문재인계로 분류됐지만 친문 의원들조차 “사실 추 대표가 언제부터 친문이었냐”는 말을 할 정도라고 알려졌다. 추미애 스스로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라고 인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취임 직후 단행한 당직 인선에 대해선 ‘실무형 인선’이라는 분석과 함께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추미애가 당대표 취임 이후 ‘선명하고 강한 야당’을 앞세워 ‘좌클릭’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사드 문제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결정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예상과 달리 중도, 보수층 공략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평을 듣는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2년 제24회 사법험에 합격했다.

1985년~199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 인천지방법원 판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쳤다.

1996년 서울 광진구 을에서 43.77%의 득표율로 당선돼 판사 출신의 최초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1997년 제15대 대선 김대중 후보 ‘유세단장’으로 활동했다. 이때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을 맡았다. 25명 인수위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서 행정자치위원이 됐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에서 김대중 당 총재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 총재 겸 대통령이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약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참여운동본부를 공동본부장으로서 이끌었다.

2004년 ~200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초빙연구원, 2006년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거쳤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일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최고위원,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거쳤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다시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광진구 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거쳤다.

2016년 8월27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당선됐다. 현재 외교통일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 학력

1977년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8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과정에 수학했다.

2004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2남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남편은 변호사인 서성환씨다. 서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20 번의 수술 끝에 생명을 건졌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다고 알려졌다.

서씨와 사이에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 상훈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여성권익디딤돌’을 수상했다.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됐다.

1999년 한국유권자운동연합에서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2000년 국민화합운동연합으로부터‘국민화합상’을 받았다.

2000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으로 선정됐다.

2000년 바른사회 밝은정치 시민연합으로부터 새천년 밝은정치인상을 수상했다.

2003년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감 1위로 꼽혔다.

2012년 국회도서관에서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로부터 안중근 평화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14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을 받았다.

2015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꼽혔다.

2015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 상훈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여성권익디딤돌’을 수상했다.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 홍콩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 ASIAWEEK에서 새천년을 이끌 ‘아시아 밀레니엄 정치지도자’로 선정됐다.

1999년 한국유권자운동연합에서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2000년 국민화합운동연합으로부터‘국민화합상’을 받았다.

2000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으로 선정됐다.

2000년 바른사회 밝은정치 시민연합으로부터 새천년 밝은정치인상을 수상했다.

2003년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감 1위로 꼽혔다.

2012년 국회도서관에서 전자도서관 이용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로부터 안중근 평화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14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을 받았다.

2015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꼽혔다.

2015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서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어록


“제1야당 대표와 정책위의장, 대변인을 한꺼번에 기소한 것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이는 비선실세 최순실과 우병우 민정수석 사건을 덮기 위한 치졸한 보복성 정치공작이다.” (2016/10/13, 검찰이 추미애 등 야당 의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무더기 기소하자, 편파 기소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비리도 역대 없었던 창조적 행태다. 불공정 대한민국의 끝을 보는 것 같다” (2016/10/07,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세균 의장은 헌법과 국회법에따라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대검 공안부에 배당하더니 대통령 측근과 대통령 연루여부를 따져야하는 권력부패형 미르사건은 형사부에 배당했다. 국민들이 참 웃기다고 할 것이다” (2016/10/07, 페이스북에서)

“태풍 휩쓸고 난 다음에 사후약방문식의 당정 대책회의라니 정부의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 (2016/10/05, 페이스북에서 태풍 ‘차바’와 관련한 정부 대책에 대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전경련이 두 재단을 공중분해시키고 통합한다고 한다. 그동안 모르쇠로 대응하더니 청와대 기획설 등 권력형 비리로 의혹이 번지자 군사 작전하듯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꼬리 자르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 (2016/10/04, 페이스북에서)

“우병우 문제를 가리기 위해 엉뚱하게 화살을 정세균 의장에게 돌린 것이다. 정 의장의 문제로 자꾸 우기지 말고 민심을 봐야 한다” (2016/10/03,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348주년 개천절 경축식에서)

“국민에게 찬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정치 집단으로서 나라의 미래와 안보위협에 대해 제대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2016/10/02, 국회에서 사드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외교 안보 정책 간담회’를 열고)

“세상 어느나라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합작해 국감 파업을 벌이고 헌법이 보장한 국회 권리 막을 수 있나. 대통령도 집권여당도 ‘터널시야’를 갖고 있다. 국민도, 헌법도, 법률도, 부끄러움도 없고 대통령 지키기, 게이트 감추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2016/09/30,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의 국정감사 거부에 대해)

“사드만으로 북핵을 막을 수 없다. 정부 사드로 북핵을 막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국민에게 줘서는 안 된다. 핵을 군사적으로 푼 나라가 있나. 공멸할 우려가 있다.” (2016/09/29,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당대표 초청토론회에서)

“군주가 어리석고 용렬해서 나라의 도가 안 선다.” (2016/09/29,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당대표 초청토론회에서 미르 의혹에 대해)

“이해찬 의원이 울타리를 넓게 치는 역할을 해주실 것이다. 그분은 역할을 맡기지 않아도 알아서 너무나 잘하실 것 같은데 꼭 이야기해야 하나. 두고 보자." (2016/09/29, 국회도서관에서 기자들이 이해찬 무소속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복당 결정과 관련해 이 의원의 역할을 묻자)

“이정현 대표의 단식농성은 대통령에게 그냥 잘 보이고 싶은 거 뿐이어서 대통령이 장하다, 잘했다고 하면 끝날 것이다.” (2016/09/27,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실제로 이 대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방문해 단식 중단을 재차 요청하자 바로 단식을 그만뒀다.)

“쌀값은 식량 주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량 주권은 못 챙기면서 측근들만 챙기는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의무도 사라진 밥쌀 수입을 계속 추진하면서 쌀값 대폭락을 초래했다. 특히 쌀 생산 과잉을 우려해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쌀 자급자족 기반마저 붕괴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2016/09/27, 전북 김제에서 쌀값 폭락 대책마련 현장 간담회를 열고)

“유가족이 반대하는 부검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과는 고사하고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까지 막아서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가의 품격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고, 국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가시는 길 만큼은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반드시 지켜드리겠다. 진실을 규명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묻겠다.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농민 백남기 부검 신청에 대해)

“새누리당의 국정감사 파업은 민생 파업이고 민생의 포기다. 새누리당이 살펴야 할 것은 대통령의 심기가 아니라 국민의 심기다. 장벽에 가로막힌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해야 할 집권당이 대통령의 심기 관리나 하고 있어서야 되겠나”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이 국정감사 일정 보이콧을 선언한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가결한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이 됐다. 해임건의안은 실체적·절차적 사유를 갖췄는데 대통령은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청와대의 망가진 인사 시스템이 문제다.” (2016/09/26,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박 대통령이 거부한 것에 대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은 청와대와 대통령에 보내는 국민의 경고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보여드린 것이다. 민심을 이기려 하지 말고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돌아가 절박한 민생에 집중해주시면 좋겠다.” (2016/09/26,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뒤 박근혜 대통령에 이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며)

“사드로 핵을 막겠다는 것은 왜란 때 화살로 조총에 맞서는 격이다.” (2016/09/24,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제7회 노무현대통령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떠나가신 한 분, 한 분을 큰 울타리를 쳐서 잘 모시겠다. 우리 모두가 정권교체의 희망이 되고 전사가 되게 하겠다. 며칠 전 존경하는 이해찬 전 총리를 우리 당에 복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오늘 바로 옆자리에 앉으니 더 기분이 좋다” (2016/09/24,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제7회 노무현대통령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지진대비가 미흡했던 것을 국민에게 즉각 사과하라. 재난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가 컨트롤 타워로서 유명무실하면 가장 큰 재앙이다.” (2016/09/21, 국회에서 열린 안전비상대책 최고위에서 경북 경주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 피해와 관련해)

“긴급재난 문자는 추첨식으로 보내주는 것이냐며 여론이 들끓고 있다. 세월호 이후 변한 것은 국민이지 정부 시스템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쏟아진다.정부는 빠르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이 위험상황을 대비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2016/09/13,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지진과 관련해 정부의 대응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비판하며)

“수년째 세수 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고 국민 10명 중 9명이 세금 부과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법인세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낙수효과도 수명을 다했으니 법인세 정상화를 적극 검토해달라” (2016/09/12,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가 참석한 영수회담에서 박 대통령에게 법인세 인상을 촉구하며)

“대통령께서 많은 관료에게 둘러싸여 계시다보니 민생에 대한 현실 인식에 굉장히 문제가 있다. 나라의 경제 방향, 특히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향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자주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2016/09/12, 청와대에서 열린 영수회담 뒤 회담을 평가하며)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남긴 말이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다.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는 급격이 하락하고 있어 공영방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대선 당시 했던 공공성 강화 약속을 지켜달라.” (2016/09/12,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글’에서)

“북한 핵이 점점 더 고삐풀린 괴물처럼 돼가는 건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풍정책’으로 간 결과다. 나라가 궁지로 내몰리는 상황을 만드는 큰 실수를 했다” (2016/09/1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겠다고 공언하며)

“점쟁이가 아니니 대세론이 계속될지 예측하는건 의미가 없다. 대세는 그냥 인기가 아니고 대의가 있어야 한다. 그 대의는 민생이다. 민생에서 국민의 동의를 가장 많이 받는 분이 대세를 가져가는 분이 될 것이다.” (2016/09/1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계속될까’를 묻자)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으로 한진해운 사태는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국제적 문제가 돼버렸다” (2016/09/07,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 문제에 대해)

“지금 우리 경제 현실은 한가하게 경제수장이 외국을 다닐 때가 아니다” (2016/09/02, 20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국회의장의 개원사에 대해 어디가 틀렸고 잘못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속이 터지고 답답해 잠도 잘 오지않았다.” (2016/09/02, 국회에서 열린 ‘2016 정기국회 대비 의원 워크숍’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원사에 반발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을 점거한 것에 대해)

“법인세 정상화는 기업과 국민이 상생 하는 길이다. 지난 10년 동안 부족한 세수를 채운 것은 서민과 국민이다. 법인세 정상화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민생경제 위기 탈출의 첫 신호가 될 것이다. (2016/09/06,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도 절박한 민생을 향해 가슴 아파하시던 대통령님, 대통령님께서 후보 시절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라는 약속으로 국민께 희망을 주셨던 것 아직도 기억이 뚜렷하다.” (2016/08/31,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이제 온전히 하나 되어 민생을 위한 정권교체를 해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힘을 주십시오” (2016/08/31,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박근혜 대통령이 3년이나 내리 불참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이명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단 한번도 방문 안 한 제주 4·3추모제에 참석해줄 것을 당부드린다” (2016/08/29,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한 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자매정당 같다. 자매 같은 마음으로 손잡자.” (2016/08/29,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만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찰떡 공조’를 강조하며)

“박근혜 정부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법통 임시정부를 부정하려 한다.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고 현재를 부정하는 일이며 헌법을 부정하는 일이다.” (2016/08/29,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히 회의에서 건국절 법제화를 반대한다고 밝히며)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이 꼭 통합하라는 말씀인데, 통합해야만 힘이 생기고 통합해야만 국민에 대해 책임을 다 할 수 있다는 깊은 뜻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읽을 줄 아는 박 위원장이 있는 만큼 국민께 희망을 드리는 장정이 시작돼야 할 것이다.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합쳐야 할 건 합쳐야 한다.”(2016/08/29,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취임 인사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하고)

“대통령이 국민이 가라는 길을 외면하면 단호히 맞서겠다. 고난과 탄압이 있어도 그 길을 가야 선명하고 강한 야당이 되고 수권 비전을 마련할 수 있다.” (2016/08/27,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된 뒤 기자회견에서)

“내 출생이 영남이냐 호남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입당한 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당과 고난을 함께했고, 호남 민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6/08/27,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된 뒤 기자회견에서, 호남 민심 복원에 대한 질문에)

“찜통더위가 사라지고 추풍이 불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당에도 분열주의, 패배주의, 지역주의의 악령을 몰아낼 추풍이 왔다. 이제 당을 가을 전어처럼 통통하게 살찌워서 집나간 당원이 다시 올 수 있도록 하겠다”(2016/08/27,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오늘은 운명같은 날이다. 21년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입당원서를 쓴 날이 오늘이다.” (2016/08/27,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의 마지막 정견발표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 마음의 빚을 당대표가 돼 대선승리로 갚겠다.” (2016/08/27,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정견발표에서)

“21년 동안 계파정치를 해본 적이 없고 계파나 지역에 상관없이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계파와 지역적 이해관계에 갇히지 않고 공정하게 대선경선을 준비해 나가겠다.” (2016/08/23, 언론과 인터뷰에서 친문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그분은 생물학적 호남 출생일 뿐이다.” (2016/08/12,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호남 대표야말로 정권 재창출의 보증수표’라며 호남 20% 득표를 공약으로 내걸자,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과 당원이 지지하는 1등을 억지로 쓰러뜨리는 건 자멸하는 길이다. 대선 1등 후보를 흠집 내고 상처내서 흔드는 것은 흥행도 아니고 공정도 아니다.” (2016/08/09, 제주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주도대의원대회 합동연설회에서)

“박원순 시장이 추진한 청년수당은 지난 2년간 많은 토론과 연구 끝에 만든 꼭 필요한 정책이다. 절대로 포퓰리즘이 아니기 때문에 당 대표가 되면 당 차원에서 직접 지원하겠다.” (2016/08/04,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원순 서울 시장이 추진하는 ‘청년수당 지급’논란과 관련해)

“새만금은 호남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단언한다. 새만금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새만금은 대한민국을 글로벌 강국으로 만들 가치와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2016/07/01, 새만금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광주는 분당과 분열의 정치를 종식할 심장이자 민주정부 10년의 근원이다. 광주에서부터 분열을 수습하고 통합을 이뤄 새로운 10년을 열겠다. 대선 승리를 이끌 준비된 정당을 만들겠다.” (2016/06/12, 광주 동구에서 열린 ‘추미애 톡 콘서트’에서 당권 도전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호남 참패를 가져온 지금의 비상대책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더민주의 심장인 호남을 포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동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제1당의 지위도 일시적인 허세가 될 뿐이다.” (2016/05/01,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루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판사로 재직한 제 경험에 비추어 이 법(테러방지법)은 말이 되지 않는다.” (2016/02/27,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주자로 발언대에 올라)

“이희호 여사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반려자이시고 대통령과 함께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전국에 유세 다니신 분이다. 당을 안에서 흔들고 밖에서 파괴하려는 세력에게 절대로 힘을 실어줄 리가 없다.”(2016/01/06,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새해를 맞아 자신을 예방한 문재인 대표를 홀대하고 안철수 의원은 환대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낡은 진보를 청산하자고 하면서 호남 지역주의를 파고 들어가고 있다. 분열의 깃발을 들고선 정권교체도 할 수 없고 대한민국도 바꿀 수 없다.” (2015/12/23, 탈당 후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을 향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 역사교과서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폭거다.” (2015/10/12, 광화문에서 역사왜곡 교과서 반대 시위를 하며)

“대통령이 홍보 설정에만 능하고 근본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가뭄현장 사진에도 설정만 보인다. 막 모내기를 한 어린 벼포기에 소방호스로 고압 살수를 하는 물대기는 본 적이 없다. 설정이 지나치다.” (2015/06/22,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천시 강화군 가뭄피해지역을 방문한 것을 언급하며)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은 미리 계산된 것이다. 금방 탄로날 거짓말로 이 사안을 진실게임으로 몰고가 국민 관심을 성 전 회장 개인비리로 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2012년 대선자금이다. (2015/04/22,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연이은 거짓말 등으로 낙마한 이완구 국무총리를 놓고)

“바위처럼 살았다. 파도를 버티는 바위가 부딪히고 깨지며 때론 살을 도려내지만 바위가 지켜주지 않으면 육지가 허물어지듯, 정치도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아픔을 겪어야한다.” (2014/09/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정치는 과정이고 선거는 결과인데, 과정에 개입하면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 결과에 개입한 것 아닌가. 원세훈 무죄 판결 대로라면 앞으로 국정원은 정치개입은 해선 안 되지만, 최고 권력이 바뀌는 대선개입은 해도 위법이 아니게 된다. 앞뒤가 안 맞는 판결이다.” (2014/09/12, 트위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포장’인 홍보는 이제 그만하고 ‘제품’인 강령, 정책, 인물들을 보여줘야 한다.” (2014/01/20, 전주에서 ‘물러서지 않는 진심’ 전북 북 콘서트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의 인식은 옳다고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지 않는 정보는 차단함으로써 생기는 확신인 ‘확증편향’에 가깝다. 사법체계에 대해 무지하며 도덕적이지 않다.” (2012/09/12, 인혁당 사건에 대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역사 인식을 문제삼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2005년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에서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력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내리자 이를 ‘한 마디로 가치없는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안철수 교수에게 제일 유리한 룰이다. 현장투표와 모바일투표를 결합한 권역별 순회투표 방식이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경선 참여가 가능하다.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시면 결단력, 용기를 보이실 필요가 있다.” (2012/07/10,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 완전국민경선의 룰에 안 교수가 참여할 것을 촉구하며)

“피땀 흘려 가꾼 민주주의를 유신의 딸에게 맡길 수 없지 않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꿩처럼 우아하게 살아왔다면 나는 매처럼 도전하며 당당하게 살아왔다. 꿩을 잡는 게 매다. 박 전 위원장을 확실히 잡겠다.” (2012/06/09,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중산층의 붕괴를 막으려면 보수 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임무 교대를 해야 한다. 외형 성장을 강조하는 식은 중산층 기반이 없어 미래가 없다. 보수 정권이 대기업 위주의 외형 성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가계 중심의 성장을 해야 한다.” (2011/10/12,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산층 붕괴 문제에 대해)

“시민이 행복한 진짜 서울을 만들겠다. 진짜 서울은 시민이 주인인 서울,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실현하는 서울이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 전시행정, 토목예산을 줄이고 복지예산, 교육예산을 늘리겠다.” (2011/09/18, 서울시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위한 합동연설회에서)

“국민은 정치도 바꾸고 서울시도 바꾸라고 한다. 변화의 열망을 담는 새로운 그릇이 되겠다.” (2011/09/16,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함께 뛰는 동행정치로 2012년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 (2010/09/07, 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며)

“4대강 사업 강행은 군사정부보다 더 불도저식이다.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2010/04/28, 블로그에 올린 ‘4대강사업 현장인 여주 삼합리를 다녀와서’라는 글에서)

“마치 태백산맥이 무너지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도 당신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는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다.”(2009/08/09,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도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슬픔이나 분노나 절박함, 그런 고통이 없는 곳에 가셔서 편히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등대지기같은 역할을 먼 곳에서나마 해주시기를 빌어본다.” (2009/05/24,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내 마지막 꿈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고 다수의 국민들을 끌고 나갈 힘이 있다면 성별과 나이에 구분 없이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11/13, 영남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 정치인으로서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경솔하게 결정해 성난 민심이 촛불을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대운하 추진만 봐도 끝까지 책임지는 지도력은 없고 한건주의와 과시주의에만 빠져있다.” (2008/06/18, 광주 빛고을시민포럼 초청으로 상무리츠컨벤션홀에서 ‘세계화 시대의 리더십’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열고)

“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되면 대통합 추풍(秋風)이 불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역전승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어떤 대통합 후보가 나와야 한나라당을 이기느냐’가 초점이다. 내가 대선후보가 돼야 민주당 당원 및 지지세력들이 합류하고 민주, 진보세력의 대통합이 이뤄져 대선에서 승리한다.” (2007/09/02, 전주시 중화산동 민주신당 전북도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역사적 책임이 있다. 대북송금특검은 한나라당이 정략적인 의도에서 발의했고 노 대통령은 정권 초기 허니문 조성을 위해 정략적으로 접근했다. 정권초기의 국정 실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2007/08/24, 부산지역 기자간담회에서 대북송금특검 사과논란과 관련해)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성과와 비전을 창조적으로 통합하고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남북통합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겠다. 영남의 딸 호남의 며느리로서 지역통합의 기수가 되고 세탁소집 둘째딸로서 양극화를 해소해 계층통합에 앞장서겠다.” (2007/08/22, 17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영남 후보를 선택한 것은 지역구도 탈피를 위한 진전이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분당을 선택해 민주세력이 분열됐다. 호남과 영남의 민주세력이 하나로 통합해 역사를 진전시켜 온 민주세력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다시 세워야 한다.” (2006/12/05, 부산대 초청 특강에 앞서 배포한 강연문에서)

“귀국하려고하니 2년 가량의 미국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눈물로 지새운 날이 많았다” (2006/08/21, 17대 총선에서 낙마한 뒤 미국 컬럼비아 대학으로 2년 동안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을 결정하고,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내가 등을 돌린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을 버린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선된 뒤에는 당을 국정운영에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귀찮게 하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과거정권 사람들은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2003/07/02, 기자들과 만나)

“얼굴마담용, 장식용으로 접근하지 마라. 능력대로 인사를 하면 그만이지 왜 남녀를 구분하느냐. 당 논의 구조에 여성을 거의 참여시키지 않으면서 여성을 총재 옆에 갖다 놓는다고 여성표가 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지역구를 선택하고 험하다는 내무위에 간것도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싫었기 때문이다."(1996/06/27, 당이 추미애에게 유세를 다닐 김대중 총재 수행을 맡기려는 방안을 검토하자)

◆ 평가

추 대표는 ‘원칙과 소신’을 최고의 정치덕목으로 꼽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 ‘강기(剛氣)로 똘똘 뭉친 여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만큼 타협이 없다는 뜻이다.

화법이 직선적이고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정치적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5선 의원이지만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의원은 안규백 신창현 더민주 의원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의원은 추 대표가 취임한 뒤 각각 사무총장과 당대표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추미애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계파정치를 하지 않아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8월27일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계파의 곁불조차 쬐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생을 21년간 의롭고 외롭게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미애는 당권 경쟁에서 친문재인계로 분류됐지만 친문 의원들조차 “사실 추 대표가 언제부터 친문이었냐”는 말을 할 정도라고 알려졌다. 추미애 스스로도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라고 인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찬성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취임 직후 단행한 당직 인선에 대해선 ‘실무형 인선’이라는 분석과 함께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추미애가 당대표 취임 이후 ‘선명하고 강한 야당’을 앞세워 ‘좌클릭’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사드 문제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결정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예상과 달리 중도, 보수층 공략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평을 듣는다.

◆ 기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종교는 불교, 존경하는 인물은 마가렛 대처와 김구다.

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 여행이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삼국지'를 꼽는다.

'내가 만일', '만남'이 애창곡이다.

3권의 저서를 냈다. 2008년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 2011년 '중산층 빅뱅', 2013년에 '물러서지 않는 진심'을 출판했다.

모범생이었던 그는 학창시절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흉본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자 바로 교실을 나왔다.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책가방에 책을 넣고 교실을 박차고 나왔고 한다.

부모님은 세탁소를 운영했다. 어려서 겨우 세 살의 나이에 외가집으로 보내졌다.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집이 빈털터리가 된 데다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나자 넉넉치 않았던 가정형편이 더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말 처음 사법고시 1차를 통과했고 고시공부를 위해 해인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동기동창이자 이후 남편이 된 서성환씨로부터 편지를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가 2차 시험에 낙방했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영남 출신인 추미애와 달리 호남 출신인 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점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한다. 서성환씨는 추미애가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3년 뒤 사법시헙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