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호주 글 싣는 순서
① ‘유어 퓨처, 유어 슈퍼’, 연 9%대 수익률로 '질 좋은 노후' 신뢰 쌓아
② 매튜 린든 SMC 전략총괄대표 “장기운용 시스템이 마법의 수익률 낸다”
③ 커스틴 사무엘스 FSC 정책이사 “치열한 퇴직연금 운용경쟁, 정부 2번 퇴짜 땐 시장 퇴출”
④ 크리스 브라이키 스탁스팟 CEO “퇴직연금 투자의 새 트렌드 ETF, 자산운용 다양화 계속된다”
⑤ 로스 클레어 ASFA 리서치부문 이사 “호주 은퇴자 30% 안락한 노후, DC형의 롤모델”
⑥ 연금 개혁은 계속된다, 퇴직연금협회 웨비나 “다음 과제는 성별 격차 해소”
⑦ “우리는 행운아! 은퇴생활도 햇살 쨍쨍",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호주③] 커스틴 사무엘스 FSC 정책이사 “치열한 운용경쟁, 정부 2번 퇴짜 땐 시장 퇴출”

▲ 커스틴 사무엘스 호주자산운용협회 연금&혁신부문 정책이사는 16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에 관한 정부의 관리와 규제가 업계 경쟁을 이끌며 가입자 중심의 시스템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호주자산운용협회>

[시드니(호주)=비즈니스포스트] “슈퍼애뉴에이션(퇴직연금) 펀드는 투자 대상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수준의 성과를 보장해야 한다.”

16일 시드니 시내를 도는 트램이 다니는 윈야드역 인근 호주자산운용협회(FSC, Financial Services Council) 사무실에서 만난 커스틴 사무엘스 연금&혁신부문 정책이사는 퇴직연금은 은퇴를 위한 자산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가입자 중심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제도의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금융당국의 엄격한 관리와 규제가 가입자들에게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정부가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들의 ‘성능 테스트’를 통해 업계 경쟁을 이끌면서 수익률과 수수료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FSC는 한국의 금융투자협회와 같은 기관이다. 슈퍼애뉴에이션 사업자로는 소매형기금을 운영하는 은행, 생명보험회사, 자산운용회사 등 금융자문기업들이 소속돼 있다. 

고객 200만 명을 보유한 호주 ING은행, 글로벌 투자은행 UBS부터 뱅가드, 블랙록, 맥쿼리, 머서의 호주법인 등이 FSC의 대표 회원사다.

사무엘스 이사는 “호주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은 정부의 성능 테스트에 2번 실패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며 “이에 따라 최근 몇 년 동안에만 퇴직연금 펀드 약 27개가 합병됐는데 이는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말했다.

그는 “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소규모 펀드 등이 경쟁에서 밀려났지만 경쟁은 고객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고 덧붙였다.

호주 정부는 정기적으로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의 성능 테스트를 한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상품에 관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견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수수료가 적절한지 등을 심사해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한다. 

호주 정부가 슈퍼애뉴에이션 펀드들에 요구하는 강력한 기준들은 제도와 시장 상품들에 관한 사회적 신뢰를 쌓는 데도 긍정적 역할을 한다.

정부가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 옥석 가리기에 앞장서면서 각 개인은 어떤 퇴직연금 펀드를 선택하든 일정 수준의 투자성과를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백만장자’가 늘고 있다는 호주에서도 슈퍼애뉴에이션 펀드의 구체적 상품 포트폴리오까지 직접 개별적으로 선택해 운용하는 사람의 비중은 크지 않다. 대부분은 어떤 회사 펀드에 가입할지만 고르는 ‘기본’ 옵션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사무엘스 이사는 “호주 슈퍼애뉴에이션은 확정기여(DC)형을 바탕으로 개인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점이 큰 장점인데 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만 선택해도 되는 제도의 안정성이 뒷받침되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호주③] 커스틴 사무엘스 FSC 정책이사 “치열한 운용경쟁, 정부 2번 퇴짜 땐 시장 퇴출”

▲ 호주자산운용협회(FSC) 사무실이 자리잡은 16스프링스트리트 인근 모습. 이곳에는 슈퍼애뉴에이션 펀드 상품들을 제공하는 은행과 자산운용사 등 다양한 금융기업들이 모여있다. <비즈니스포스트>

FSC는 호주 디폴트옵션 상품인 '마이슈퍼'도 규제를 통한 합병 등으로 가입자에 효율적 포트폴리오와 낮은 수수료 등 규모의 혜택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호주의 또다른 슈퍼애뉴에이션 기금협회인 호주산업형기금협회(SMC)는 최근 그들이 제공하는 마이슈퍼 상품의 80%가 성능 테스트를 통해 실적이 저조한 상품을 내보내고 연간 수수료를 10억 달러 가까이 절감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호주 정부의 슈퍼애뉴에이션 경쟁 제도도 완벽하지는 않다. 

환경과 지속가능성 등 새로운 투자분야 펀드 상품에는 적합한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투자를 허용하지 않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성능 테스트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커스틴 사무엘스 이사는 성능 테스트를 변경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신중한 견해를 보였다.

사무엘스 이사는 “사람들은 정부가 나중에 규칙을 바꿀지 모른 채 현재의 슈퍼애뉴에이션 규제와 규칙에 따라 투자한다”며 “슈퍼애뉴에이션은 특히 오늘의 변화가 30년 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규제의 확실성,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능 테스트를 더 적합하게 만들 방안들을 찾아야겠지만 큰 변화는 오히려 가입자에 불이익을 줄 수 있고 나아가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무엘스 이사는 바로 전날 캔버라 출장에서 돌아왔다고 했다. 연방정부의 예산 발표로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었지만 슈퍼애뉴에이션 제도의 성공요인 등을 묻는 질문에는 미리 준비한 자료들을 펼치면서 열정적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사무엘스 이사는 인터뷰 말미 “호주는 정말 강력한 슈퍼애뉴에이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퇴직연금은 은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호주 정부가 추진하는 ‘유어 퓨처, 유어 슈퍼’ 정책도 결국 투자 수익률이 좋아야 사람들의 은퇴자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슈퍼애뉴에이션의 궁극적 정책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사무엘스 이사는 경영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시드니를 주도로 하는 호주 동남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정부 장관 고문, 지방의회 정책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호주의 결제시스템을 감독하는 호주페이먼츠네트워크 등 여러 비영리단체에서도 활동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