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산업계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확산 조짐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중 갈등은 미래 성장 잠재력이 높은 친환경 그린산업에서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린산업 가운데 배터리와 태양광 분야는 중국과 경쟁 강도가 높은 업종으로 꼽히는 만큼, 이들 업계는 미국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강화 등 중국 배제 기조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북미 시장 입지를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산업'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 중심에, K-배터리·태양광 북미 입지 강해진다

▲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고조되며 국내 배터리, 태양광 업계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16일 재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정부가 중국산 일부 수입품목에 대한 관세를 큰 폭으로 인상한 배경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적 고려와 함께 미래 핵심산업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국 노동자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따라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산 수입품 180억 달러(약 24조6천억 원) 규모를 대상으로 관세 인상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중국산 전기차에 적용되는 관세는 기존 25%에서 올해 100%로 4배 인상된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관세는 7.5%에서 올해 25%로, 비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 관세는 7.5%에서 2026년 25%로 뛴다. 배터리 부품 관세는 0%에서 올해 25%로 높아진다. 천연흑연과 영구자석 관세는 0%에서 2026년 25%로 오른다. 

반도체는 현행 25%에서 내년 50%로 인상된다. 

태양광 셀에 적용되는 관세는 기존 25%에서 올해 50%로 높아지며, 모듈로 조립됐는지와 무관하게 이같은 관세가 부가된다.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매겨지는 관세도 7.5%에서 올해 25%로 오른다. 

중국 정부는 미국 측 관세 인상을 놓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입장문을 통해 “미국이 국내 정치를 이유로 경제와 무역 문제를 정치적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이번에 관세 인상을 적용하게 된 품목들이 당초 미국 시장에서 낮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들이라 단기 실질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의 북미 시장 진출을 차단한다는 정책기조를 다시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북미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을 꾀하는 국내 기업들에게는 이번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중국과 경쟁 강도가 높은 배터리와 태양광 제품은 국내 기업들이 북미시장을 선점하는 데 더 유리해질 수 있는 업종으로 꼽힌다. 

배터리는 이번에 관세 인상을 적용하는 품목 가운데 중국의 미국 수출 비중이 비교적 큰 편이다. 2023년 기준으로 중국의 배터리 수출액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9%로 유럽연합(36.0%) 다음으로 크다.

중국 기업의 배터리는 이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해외우려집단(FEoC) 지정에 따라 상당 부분 차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 기업과 기술제휴와 같은 우회 진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또 북미에 속하는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설립해 미국으로 우회 수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강경한 중국 배제기조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이런 우회적 시도를 용인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로 중국에 타격이 큰 품목은 배터리(2차전지)”라며 “중국이 우회 수출을 시도할 계획을 세웠지만,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한 강구책을 마련하고 있어 이마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업계에는 어느 정도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중국 업체들을 제외하면 사업역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북미에서 가장 많은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내 연산 60GWh체제를 구축하며, 북미에서 가장 높은 생산능력을 지닌 업체가 됐다. 회사의 설비투자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되면 2025~2026년에는 북미에서만 연산 300GWh 넘는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60kW 용량의 배터리 기준으로 연간 전기차 50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양이다.

SK온은 2025년 북미에서 연간 185.5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2027년까지 북미에서 연산 100GWh에 가까운 생산시설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전기차 공급망의 핵심인 배터리 최적 조달 국가로 한국 외 대안이 없다. 

중국 기업과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는 태양광 분야에서도 한국기업의 북미시장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린산업'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 중심에, K-배터리·태양광 북미 입지 강해진다

▲ 미국 모하비사막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연합뉴스>


태양광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저가 제품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기업들의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대신 에너지밀도 등 성능에서 앞서는 것과 달리 태양광 시장에서는 중국기업의 태양광 셀·모듈은 성능 면에서 국내기업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 가격은 더 저렴하다. 

현재 중국 기업들은 앞서 시행된 미국의 수출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미국시장에 태양광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오는 6월부터 동남아에서 수입되는 중국산 부품을 적용한 태양광 제품에도 관세를 적용한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 직접 생산시설을 구축해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론지솔라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6억 달러(약 8100억 원)를 투자해 태양광 모듈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공개했다. 

다만 중국산 제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 정부 기조 탓에 이런 계획이 뜻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국내 기업 한화큐셀은 미국에 태양광 공장을 설립하며, 중국 기업의 태양광 소재를 일부 공급받은 일을 두고 미국 정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존 바라소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최근 성명을 통해 “중국 기업과 중국 공산당은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을 단 한 푼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주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6월부터 동남아 우회 태양광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며, 중국이 주로 생산하는 양면형 태양광 모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는 만큼, 차후 미국 내 중국산 제품 유입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