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쓰듯이 한다'는 옛말, 기후변화로 세계에 가정용수 사용 규제 퍼진다

▲ 1일(현지시각) 스페인 남부 캄피요스에서 촬영된 구다텔바 저수지. 해당 지역은 최근 대서양 폭풍 '넬슨'이 한 차례 비를 내리고 갔음에도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 영향으로 극심한 가뭄 현상이 빈번해지며 주기적으로 물 부족을 겪는 국가가 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향후 다가올 수자원 부족에 대비해 가정용 물 사용량까지 제한하는 규제 도입이 활발히 논의된다.

2일(현지시각) 가디언은 영국 정부가 올해 가정용 물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환경청은 최근 2050년까지 수자원 보유량을 예측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조사 결과 2050년까지 영국에서 사용 가능한 일일 수자원은 지난해와 비교해 50억 리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영국에서 농업과 산업 등 공공 분야에 사용되는 수자원은 140억 리터 안팎인데 3분의1 가까운 물 양이 줄어드는 셈이다.

가디언이 입수한 영국 정부 수자원 관리계획 초안에 따르면 2050년에 공공 분야에서만 매일 48억 리터의 물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전망치였던 40억 리터에서 증가한 것이다.

제이미 한나포드 영국 생태수문학센터 연구원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만약 앞으로 몇 개월 동안 강수량이 평년 수준을 밑돌고 기온 상승도 겹친다면 많은 지역에서 수자원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이는 해마다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이러한 전망에 따라 앞으로 가정에서 세차 또는 정원을 가꿀 때 사용하는 물 사용량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영국은 연중 많은 비가 내리는 국가인 만큼 그동안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폭우와 극심한 가뭄이 번갈아 찾아오며 강수량이 불균등해져 물 부족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나포드 연구원은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실제로 홍수가 발생한 뒤 극심한 물 부족이 번갈아 찾아오는 모습이 종종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영국이 충분한 저수 시설을 확보됐다면 수자원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정부에서 그동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시설 확충을 미룬 탓에 물 부족을 이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 쓰듯이 한다'는 옛말, 기후변화로 세계에 가정용수 사용 규제 퍼진다

▲ 3월15일 수위가 낮아져 바닥이 드러난 캐나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올드맨 강. 3월 동안 강 수위는 30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주 정부 차원에서 물 사용량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역언론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수자원 통제 위원회는 최근 주 산하 지방자치단체들이 물 사용을 제한도록 하는 규정을 발의했다.

지역별로 편차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수자원 사용량은 3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가장 목표가 높게 잡힌 지역은 앳워터시로 2025년까지 수자원 사용을 48% 감축해야 한다.

수자원 통제 위원회는 주 전체에 걸쳐 2040년까지 가용 수자원이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측돼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에릭 오펜하이머 수자원 통제 위원회 대표 디렉터는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와 인터뷰에서 “기후 현실이 바뀌고 있는 데 따라 갈수록 줄어드는 수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수자원 관리국도 올해 다가올 극한 가뭄 가능성을 경고하며 지역별로 물 사용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네바다 등 여러 주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가뭄이 발생할 때 가정에서 수영장 사용과 물청소, 세차 등을 금지하거나 자제하도록 하는 조치를 내놓고 있다.

이번에는 주 정부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물 사용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수자원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유럽 본토에서도 이미 물 부족 위기가 현실화됐다.

BBC에 따르면 스페인 카탈루냐주 당국은 2월1부터 주 전체에 걸쳐 저수량이 전체 수용량의 16%까지 줄었다며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사실상 자체적으로 필요한 물을 공급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카탈루냐주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 '사우'가 저수용량 1%를 기록해 사실상 소멸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1일 기준 주 전체의 저수용량은 14%까지 떨어졌다.

현재 카탈루냐주 가정에서 세차, 수영장, 정원에 물을 사용하는 일이 적발되면 최대 50유로(약 7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카탈루냐주는 그동안 자국 내 다른 지역에서 수자원을 끌어다 썼지만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외국에서 물을 수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BBC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경고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와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필요한 조치를 취해 물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