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실제 배상 과정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홍콩 ELS 손실 관련 책임요인을 세분화하고 배상비율 범위를 넓혀 다양한 사례를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홍콩 ELS 가입자 규모와 유형 등을 고려할 때 책임비율 산정 과정에서 판매사와 투자자 사이 갈등이 커질 수 있다.
 
홍콩ELS 넓은 배상범위 ‘양날의 검’ 되나, 은행권 '투자자 책임' 산정 험로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증권사 등 홍콩 H지수 ELS 상품 판매사들은 금감원의 손실 배상비율 기준을 고려해 배상에 관한 본격적 논의와 준비를 위한 검토를 시작한다.

홍콩 ELS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홍콩 ELS는 가입자만 해도 수십만 명이다 보니 판매사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단기간에 배상안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이론적으로는 (배상기준에 맞춰서) 손실비율을 정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각 판매사, 투자자별로 모두 입장이 다를 수 있어서 현재로서는 모든 걸 열어놓고 검토하는 단계다”고 말했다.

판매사 입장에서는 이번 홍콩 ELS 배상안이 또 하나의 선례로 남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홍콩 ELS 사태는 과거 파생결합펀드(DLF)나 라임펀드 손실사태와 비교해 상품 자체에 결함이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배상기준이 더욱 다양해질 수도 있다.

홍콩 ELS 투자자들도 이날 금감원의 배상비율 가이드라인 발표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금감원이 배상비율에서 은행 등 판매사의 책임요인에 따른 손실 배상비율(23~50%포인트)과 투자자 책임 추가, 감경요인(최대 45%포인트)을 대등한 수준으로 반영하면서 책임 입증에 관한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대형 포털사이트의 홍콩 H지수 ELS 피해자모임 카페의 한 누리꾼은 “안전한 상품에 가입하러 갔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증명하냐”며 “결국 은행이랑 개별로 소송하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재가입자 횟수, 투자이익 여부, 투자금액 기준 등 투자자의 책임요소 등 배상안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질문과 반발의 글도 이어졌다.

홍콩 ELS 피해자모임은 금감원의 배상비율 기준 발표 이전부터 계획했던 15일 서울 서대문 농협본점 규탄 집회도 그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과 금감원 등을 향한 민원 등 반발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눈에 띈다.

은행 등 판매사와 투자자 사이 책임 여부를 둔 공방이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나온다. 
 
홍콩ELS 넓은 배상범위 ‘양날의 검’ 되나, 은행권 '투자자 책임' 산정 험로

▲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2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감사청구서와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때를 봐도 피해자들은 금감원 배상비율을 수용할 수 없다며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은행의 배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반발했다.

당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금감원의 최대 80% 배상비율 결정을 곧바로 수용하고 신속한 배상절차 진행을 약속했지만 갈등 봉합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이번 홍콩 ELS 손실 사태는 금감원의 배상비율 범위는 0~100%까지로 더 세부적으로 나뉘었다. 똑같이 50% 손실을 봐도 책임요소에 따라 누구는 전부를 배상받고 누구는 하나도 배상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투자자 대다수의 배상비율(20~60%)도 과거 파생결합펀드(40~80%)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배상비율 가이드라인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금융당국의 취지와 달리 판매사와 투자자 사이 배상 관련 갈등과 법적공방 등 후폭풍이 계속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홍콩 ELS 손실사태를 라임펀드, 파생결합펀드 사태보다 2008년 금융위기 뒤 발생했던 ‘키코(KIKO)’ 사태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키코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은행에서 외환파생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이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사건이다.

키코사태 배상문제는 2013년 대법원 재판까지 갔다. 그 뒤 2018년 금감원에서 분쟁조정을 추진했지만 은행들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오랫동안 배상문제에 매듭을 짓지 못했었다.

이날 열린 금감원 가이드라인 발표 기자간담회에서도 배상비율 범위가 크다보니 각 소비자 사례에 어떻게 적용될지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배상 관련 안내는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소비자 측에 어떤 기준에 따라 배상금액이 어느 정도라고 제시할 것”이라며 “그 제시안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서로 주장하고 입증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고 분쟁조정위원회가 끝나면 세부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답변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홍콩 H지수 ELS 판매잔액은 모두 39만6천 계좌, 18조8천억 원에 이른다. 판매사별로는 은행 판매잔액이 15조4천억 원, 증권사가 3조4천억 원 수준이다.

2024년 2월까지 홍콩 ELS 만기도래액(2조2천억 원) 가운데 손실금액은 1조2천억 원가량으로 누적 손실률은 53.5%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