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기업 밸류업' 일침, "ESG 자본주의 실천이 더 중요"

▲ 19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가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이 밸류업을 통해 일본을 따라가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자본시장을 보면 일본은 130%, 우리는 30% 올랐다. 일본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ESG 자본주의를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을까를 십수 년 고민했기 때문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는 비즈니스포스트 인터뷰에서 저평가된 한국 경제가 일명 ‘거품경제’ 시절을 넘어선 일본의 선례를 따르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자본주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서스틴베스트의 창립자로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국내 유일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 운영위원,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안을 공개했다. 그동안 저평가되어온 한국 증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계획이다.

이번 세부안에는 상장기업 기업가치 제고 계획 자율공시, 기업가치 우수기업 세제지원, 코리아 밸류업 지수·상장지수펀드(ETF) 개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등이 포함됐다.

류 대표는 이번 계획을 놓고 "기업 가치 제고 방안의 자율적 공시 유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그보다는 섹터별로 일정 수준 이하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들은 의무공시하는 방향으로 정해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밸류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관투자자들의 인식 변화이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즉 연금의 운용사 선정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및 성과 항목 배점을 크게 높이는 것이 실효적 수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기업들의 자율공시 참여율을 높일 수 있도록 5월에 2차 세미나를 열어 종합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한 의견을 모으고 6월 안에 최종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일본은 자본 시장 제도 및 기업 거버넌스 개선만 해온 것 아니라 실질임금을 올렸고 이를 통해 소비를 진작하는 경제 선순환 고리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는 결국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을 늘렸고 주주들이 기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기시다 총리가 최근 2년 전부터 새로운 자본주의를 발표했다고 일본이 갑자기 ESG 자본주의를 잘 실천하며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2년 6월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발표 현장에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 회복을 통해 신자유주의 성장 일변도 노선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인재, 과학기술과 혁신, 스타트업, 녹색 전환(GX), 디지털 전환(DX)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류 대표는 “일본은 현금이나 은행에 2천조 엔이라는 막대한 금융자산이 축적돼 있다”며 “여기서 3%만이라도 자본시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NISA(일본 개인 저축계좌)의 세제혜택을 대폭 확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 시절부터 이 부분을 계속 고민해왔고 결국 지금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기업 밸류업' 일침, "ESG 자본주의 실천이 더 중요"

▲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전문가 149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기반해 리스크별 위험수준을 시각화한 도표. 동그라미가 클수록 더 높은 위험요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큰 것들은 지나치게 고평가된 자산 가치 폭락, 사회 양극화이고 그 다음으로 크게 평가된 것은 허위정보 폐해, 실업, 자원고갈 등이다. <세계경제포럼>

◆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위기에 직면한 ESG 투자  패시브 전략 뜨는 이유

블룸버그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지난달 ESG 시장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서비스 업체 모닝스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그동안 성장세를 이어오던 ESG펀드에 투자된 자본금이 순유출(net outflow)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모닝스타 1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지속가능성 펀드에서 빠져나간 투자금 규모는 약 51억 달러(약 6조7799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로 확대하면 합계 130억 달러(약 17조 원)가 유출됐다.

미국에서 ESG 시장 현황을 나타내는 S&P(스탠더드앤푸어스)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지수(Global Clean Energy Index)는 23일 기준 지난 1년 동안 28.28% 감소했다. 통상적 자본 흐름을 보여주는 S&P500지수가 같은 기간 26.83% 증가한 것과는 대조된다.

류 대표는 "지난해 ESG시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패권 경쟁 지속 등의 지정학적 위기, 경제적 불확실성 확대로 조정기를 거친 셈"이라며 "특히 레거시 에너지 섹터, 무기산업 등과 같이 非ESG관련 섹터들이 부상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상대적 약세를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은 특정 펀드든 특정 섹터이든 시장 속에서 고정불변의 원리는 통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시장 현상일 뿐"이라며 "ESG 투자 규모가 줄었다고는 해도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위기 등으로 투자 시장이 위축된 것과 비교하면 그 감소폭이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공화당을 필두로 하는 보수진영에서는 ESG경영을 놓고 '깨어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영향을 줬다"며 "이들은 ESG진영이 ESG성과를 위해 재무적 경영성과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ESG에 있어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지난해 4분기 유럽에서는 오히려 지속가능성 펀드로 33억 달러(약 4조3870억 원)가 유입됐다. 그걸 세계 전체로 확대해보면 지속가능성 펀드들에서 빠져나간 자금 규모는 약 25억 달러(약 3조3277억 원)로 제한됐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2022년과 비교해 ESG 펀드들의 자산 규모는 약 평균 8% 성장했다.

세계 최대 ESG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가장 크게 성장해 자산 규모가 53% 증가했다. 블랙록은 올해 1월 기준 약 3200억 달러(약 425조 원)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에 블랙록이 패시브 ESG 투자전략(passive ESG investment strategy)에 주력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블랙록은 전체 자산 가운데 2700억 달러(약 358조 원)를 패시브 전략으로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액티브 ESG 투자전략(active ESG investment strategy)에 주력한 ESG펀드들은 180억 달러(약 23조 원)가 넘는 투자금이 유출됐다.

류 대표는 "ESG패시브 전략은 간단하게 말하면 지수를 추종하는 수동적 스탠스를 유지하면서도 ESG관련 리스크나 논란거리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투자전략"이라며 "관련 리스크가 투자한 기업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서한을 보내거나 미팅을 요구하는 등 관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현재 ESG 시장은 조정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ESRS, ISSB 등과 같은 공시 가이드라인,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FDR) 등의 등장을 통해 ESG시장은 조정과 자정과정을 거쳐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SG를 향한 투자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의 근거로 류 대표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경제 전문가 14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를 들었다.

류 대표는 "설문조사에서 향후 2년과 10년 내로 가장 큰 리스크가 무엇이냐고 전문가들에게 물었을 때 단기 리스크로는 경기 침체, 인플레이션, 사이버 보안, 경제적 기회 감소 등이 나왔다"며 "하지만 장기 리스크로는 기상이변, 생태계 변화, 생물 다양성 훼손, 오염, 허위정보 폐해, 인공지능 역기능, 사회적 양극화 등 모두가 ESG에 해당하는 이슈들이 언급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것들이 모두 ESG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ESG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기업 밸류업' 일침, "ESG 자본주의 실천이 더 중요"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 글로벌 연기금의 아이돌 CPPI, 국민연금도 장기 투자전략 따라야 

ESG 투자를 가장 잘 시행하고 있는 예로 류 대표는 캐나다 국민연금투자사(CPPI)를 언급했다.

그는 “CPPI는 세계 연기금의 아이돌로 국민연금이 꼭 따라야 할 모델”이라며 “ESG는 그 성격상 장기적 투자에 따른 미래를 봐야 하는데 현재 국민연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현 누적 적립금이 1000조 원을 넘어 일본 공적 연금,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세계 3위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에서 지난해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10년 동안 국민연금은 연평균 수익률이 4.7%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국민연금이 이처럼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은 정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장기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전략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라며 “CPPI를 보면 75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 전략을 세운다”고 지적했다.

CPPI는 2013년부터 10년 동안 9.8% 수익률을 올려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두 배가 넘는 성과를 거뒀다.

류 대표는 “국민연금이 해외 기금처럼 스튜어드십(stewardship)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20년 동안 해온 얘기이고 그렇게 될 거라는 얘기도 계속 들려왔다”며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은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류 대표는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도 제대로 실행을 해오지 않았다며 꾸준히 지적해왔다.

류 대표는 "스튜어드십이란 타인의 자산을 관리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해당 기업을 모니터링하고 관여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 "ESG 투자는 스쿨버스 같은 것, 투자이지 ESG 그 자체가 아니다" 

서스틴베스트는 국내 최초 ESG평가 및 의결권 자문사로 2006년 9월 설립됐다. 국민연금 등 대형 연기금 위탁 운용 자금에 ESG 벤치마크 정보를 제공하고 운용 성과를 제고할 수 있는 맞춤형 ESG 평가모델을 개발하는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전략 개발 자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류 대표는 “우리나라는 특정 주제가 유행을 타면 거기에 너도나도 빠르게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로 지난해까지 ESG 관련해서 발간된 서적만 해도 지난해 100여 권이 넘지만 대부분 비전문가들이 책을 저술함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많아 독자들에게 잘못된 확증편향을 심어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ESG가 계속해서 이렇게 논란이 생기는 것도 자본시장의 주류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진통이라 생각한다”며 "또 흔히들 ESG에서 친환경적이나 사회적 가치를 침소봉대하고 상대적으로 경영이나 투자 측면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ESG 관련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기업 경영이나 자본시장 경험이 거의 없고 환경이나 시민운동을 하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류 대표는 "ESG 투자는 결국 스쿨버스와도 같다"며 "스쿨버스가 스쿨이 아니고 버스이듯 ESG투자나 경영도 ESG 자체가 아니라 투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자본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을 때 류 대표는 “최근 한국이 일본사례를 단편적 편의적으로 벤치마크하는 것 같다"며 "최근 일본 주식시장의 성과는 지난 10년동안 ESG, 스튜어드십 투자,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꾸준히 시행해 온 때문이지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때문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전의 아베노믹스, 최근의 기시다 정책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