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금리인하 선긋기에도 누그러진 매파 본색, 커지는 인하 기대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금융통화위원들은 금리 인하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새해 들어 처음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로 8번째 연속 동결하면서도 금리 인하와 관련해서 선을 긋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지만 이 총재의 매파적 발언에도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의 여러 장면에서 통화정책의 매파적 기조가 과거와 비교해 옅어지는 모습이 확인됐다.

우선 ‘한국판 점도표’로 볼 수 있는 금융통화위원의 향후 기준금리 전망에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사라졌다.

직전 열렸던 지난해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융통화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연 3.75%까지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파적 성향이 크게 약화한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에는 금통위원 모두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전망 경로에 큰 변화가 없다면 기준금리를 3.50%로 충분히 장기간 유지해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개인 의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다”며 하반기부터 통화정책이 변화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누그러진 매파적 성향은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도 엿보였다.

금통위는 그동안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결정문에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가겠다”는 문구를 넣어왔는데 이날 결정문에서는 이 문구가 삭제됐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 문구는 추가 인상의 가능성을 남겨놓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다”며 “추가 인상이냐 동결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이 그간의 초점이었다면 문구 삭제로 향후 정책 방향성이 동결 혹은 인하로 시선을 옮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은 금리인하 선긋기에도 누그러진 매파 본색, 커지는 인하 기대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이 총재와 금융통화위원의 매파적 기조가 과거와 달리 약화한 데는 대내외적 상황의 변화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도 이날 “기준금리를 3.75%까지 열어두자는 견해를 바꾼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적으로 물가 둔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난해 11월에 비해 유가 상승 가능성,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대외 경제 불안 위험이 많이 완화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은행의 예상대로 물가 상승률이 둔화세를 유지하고 있고 고금리 탓에 국내 건설사와 관련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불거지고 있어 통화긴축 기조를 장기간 끌고 갈 필요성이 약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지난해 11월 점도표를 통해 예고했듯 올해부터 2~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가량 인하할 것으로 예상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에 여유가 생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시장의 기대감 역시 한층 커지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3분기부터 올해 안에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해 연말 기준금리는 2.75% 수준에 이를 것이다”며 “물가 둔화와 PF 리스크 등으로 추가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가운데 앞으로는 물가 둔화 속에 인하 시점에 대한 논의가 부각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물가목표치에 부합하는 시기와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이라는 두 가지 재료가 충족되는 시점인 7~8월 중 한국은행에서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