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박진회는 1957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영국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들어갔다가 씨티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증권을 거쳐 한미은행에 입행했는데,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매각되면서 한국씨티은행에 수석부행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한국개발연구원, 씨티은행, 삼성증권 등을 거친 금융전략가다. 씨티은행에서 ‘살림꾼’ 역할을 했다고 평가됐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의 ‘오른팔’격 인사로 꼽힌다. 하영구 회장과 같은 전라남도 출신이자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무역학과 동문이며 씨티은행과 한미은행에서 함께 일했다.

하영구 회장이 2001년 6월에 최연소 한미은행장으로 일할 때 영입한 40대 임원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하영구 당시 행장은 박진회 등을 영입하면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됐다.

한국씨티은행이 2004년에 한미은행을 인수합병할 때 수석부행장으로 선임됐다. 노사투쟁에서 회사 측 대표를 종종 맡았으며 2005년 11월에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변화추진전담반 수석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영구 당시 한국씨티은행장이 2013년 4월에 다섯차례 연속 연임에 성공했을 때 박진회도 부행장으로 연임하면서 12년 동안 부행장을 맡는 기록을 세웠다.

하영구 행장이 2014년 10월에 KB금융지주 회장직에 출마할 의사를 밝히면서 박진회가 유력한 차기 한국씨티은행장후보로 떠올랐다. 당시 박진회는 조엘 코른라이히 소비자금융책임 수석부행장과 함께 한국씨티은행의 업무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2014년 10월 말에 차기 씨티은행장 후보로 선임됐다. 당시 씨티은행이 2014년 2분기 기준으로 순손실 749억 원을 입으면서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모기업 씨티그룹의 방침에 따라 소매금융과 기업금융에 집중할 방침을 세웠다.

현장경영을 강조하며 영업점과 부서를 방문해 직원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잦다. 점심시간에 직원들에게 직접 배식을 하거나 함께 맛집에 가는 등 소통을 강화했다.

2014년 11월에 한국씨티은행 노조에서 1년에 두차례씩 개최하는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 김지현 SK플래닛 상무가 쓴 책인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를 소개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씨티은행이 사물인터넷(IoT)과 온오프라인 연계서비스(O2O) 등의 보편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1월 말에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업금융·자산관리(WM)·카드사업에 집중할 계획을 제시했다. 씨티은행의 기술금융 실적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에 대해서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5년의 경영목표로 ‘민원없는 은행’을 제시했다. 연초에 고객서비스와 디지털뱅킹을 담당하는 고객프랜차이즈본부를 신설해 익발 싱 부행장을 담당 본부장으로 선임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5년 4월 기준으로 2014년 같은 기간보다 민원이 40% 이상 줄어들었다.

2015년 9월에 청년고용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지주사 회장과 다른 시중은행장들과 함께 연봉의 20%를 자진해 반납하는 행렬에 동참했다.

2015년 11월에 한국씨티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고액자산가 위주로 전면 개편했다. 한국씨티은행이 이전부터 고액자산관리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자산관리에 특화된 스마트 허브지점인 ‘씨티골드 반포지점’을 개점하는 등 영업점 체계도 자산관리사업 위주로 재편했다.

2015년 12월에 한국씨티은행의 자회사였던 씨티캐피탈을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매각하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국씨티은행이 2015년에 순이익 2257억 원을 냈는데 2014년보다 95.3% 늘어났다. 그러나 이자수익과 비이자수익이 모두 2014년보다 줄어든 반면 인건비 등의 비용감소로 순이익이 증가한 점에 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6년 들어 저금리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순이익 감소를 겪고 있다.

2016년 7월에 종합자산관리상담시스템인 ‘토탈웰스어드바이저(TWA)’을 직접 선보이면서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사업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0년 1월에 한국개발연구원에 들어가 1981년 5월까지 일했다.

1984년 10월 씨티은행에 입사해 1987년 1월까지 근무했다.

1987년 2월~1990년 11월 씨티은행 외환거래책임자를 맡았다.

1990년 11월~1993년 4월 씨티은행에서 자금마케팅책임자로 일했다.

1993년 4월~1995년 4월 씨티은행 글로벌금융책임자를 역임했다.

1995년 4월~2000년 4월 씨티은행 자금담당본부장을 맡았다.

2000년에 삼성증권 운용사업부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겨 2001년 6월까지 일했다.

2001년 6월 한미은행 자금운용담당 본부장으로 영입됐다.

2002년 3월 한미은행 상임이사로 선임됐다.

2004년에 한미은행이 한국씨티은행에 매각되자 한국씨티은행 최고운영책임자(COO) 수석부행장으로 임명돼 2006년까지 일했다.

2007년 1월~2014년 10월 동안 한국씨티은행 기업금융그룹장을 맡았다.

2014년 10월부터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학력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2월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3월 미국 시카고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 6월에 영국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박세정 대선제분 창업주의 아들이다. 형제로 박관회 대선제분 대표와 박내회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이 있다.

◆ 상훈

◆ 상훈

어록


“2분기 실적은 계속되는 어려운 영업환경이 반영된 것이며 이런 상황이 당분간 은행업 전체에 걸쳐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개선된 경영지표 및 자산관리(WM)부문의 영업력 회복 등 고무적인 신호를 감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자산관리·디지털뱅킹·기업금융 부문에서 차별화된 영업전략을 계속 추진하겠다.” (2016/08/16, 한국씨티은행이 2분기에 순이익 558억 원을 내 2015년 같은 기간보다 35.1% 줄어든 결과를 발표한 뒤)

“한국씨티은행은 자산관리 분야 선도은행이 되기 위해 지난해 자산관리 허브 영업점을 신설하고 기존 영업망에 새로운 영업점 전략 모델을 구축했다. 올해 성장 구심점을 확대하고 내부통제와 디지털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두겠다.” (2016/03/30, 한국씨티은행의 2015년 실적 발표 직후)

“한두 명의 개인자산관리사에 의존해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면 단순투자에 따른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산관리점포를 대형화하고 팀 기반으로 고객의 소중한 재산을 관리하겠다. 자산관리 모델 포트폴리오를 도입하고 스마트 허브점포를 만들어 눈앞의 수익보다 자산을 쌓고 있는 20~30대 고객들이 주요한 자산관리 고객이 됐을 때 어떤 뱅킹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을지 내다보겠다.” (2015/11/25, 차세대 자산관리 전문지점인 씨티골드 반포지점 개점행사에서)

“한국씨티은행은 1980년대에 원조 개인자산관리(PB)사업을 한국에 뿌리내린 은행이다. 앞으로는 좀 더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WM) 사업영역에 집중하겠다. 우리가 잘 하는 것을 잘 하겠다는 의미로 그동안 자산관리 사업의 초점이 제대로 안 잡혀 있었는데 이 부분을 더욱 강화하겠다.” (2015/08/19,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지속적인 조직 및 업무 간소화와 더불어 자산관리·디지털뱅킹·기업금융 등에 중점을 두고 씨티그룹의 글로벌 영업망을 활용해 견실한 재무성과를 내겠다.” (2015/08/18, 한국씨티은행이 2분기에 순이익 859억 원을 내 흑자전환하자)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당장 다른 채널을 구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뱅킹 등 기존에 보유한 채널을 확장해 나가겠다. 당분간 추이를 지켜본 뒤 인터넷전문은행 시장이 커지는 추세라고 판단될 때 적극 대응하겠다.” (2015/01/05, 서울 롯데호텔 2층에서 열린 ‘2015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한 매체의 기자에게)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대출뿐만 아니라 외국에 진출하는 기업과 수출입 기업 지원 등 기업금융 서비스 확충에 주력하겠다. 이를 위해 최근 기업심사역은 본사에서 담당하고 기업금융서비스는 지점에서 하도록 조직을 이원화했다.” (2014/11/28,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6년도 한국씨티은행의 경영전략을 밝히며)

“2015년 6월 말에 실시한 희망퇴직과 점포통폐합 이후 항간에 구조조정에 대한 헛소문과 근거 없는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이런 풍문에 현혹될 이유도 없거니와 여유도 없다. 남들이 헛소문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면 된다.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없다.” (2014/10/28, 한국씨티은행장에 취임한 직후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설과 추가 구조조정설 등에 대해)

“직접 소비자금융을 담당해서 해본 적이 없으니 노동조합의 주장도 절반은 사실이다. 그러나 능력 문제는 경영을 해보면 곧 드러날 것이다. 해보면 알 수 있다. 리더십이라는 게 반드시 모든 업무를 해봐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4/10/28, 한국씨티은행장으로 내정된 뒤 씨티은행 노조에서 소비자금융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박진회의 선임을 반대하자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해명하며)

“차기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선임되는 일이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금융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한국씨티은행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2014/10/26, 한국씨티은행장 후보로 추천받기 하루 전에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국내 은행산업은 눈을 감고 위기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비용 절감에 대한 사회적 용인과 구성원들의 합의 없이는, 즉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위기가 올 것이다.” (2013/10/30,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2013년 금융동향과 2014년 전망’ 세미나에서)

“한국씨티은행은 전 세계 108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글로벌 은행이다. 전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은행은 지구 상에서 씨티은행이 유일하다.” (2011/05/2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씨티은행의 성공비결에 대해 말하며)

“각 국가별로 산업발전의 수준이 다르고 금융의 위치도 다르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획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은 무리다.” (2010/08/03, 미래기획원회가 주최한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 비전’ 세미나에서)

“한국씨티은행은 선진금융기법과 상품을 국내에 제공해 우량한 시중은행으로 거듭나려 한다.” (2004/11/01,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의 합병법인인 한국씨티은행의 공식 출범식에서 한 인터뷰에서)

“단기적인 비용을 들이더라도 경영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데 주력했다.” (2004/07/12, 한미은행 노동조합이 씨티은행에 인수합병된 뒤 벌였던 파업투쟁을 끝내자)

◆ 평가

한국개발연구원, 씨티은행, 삼성증권 등을 거친 금융전략가다. 씨티은행에서 ‘살림꾼’ 역할을 했다고 평가됐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의 ‘오른팔’격 인사로 꼽힌다. 하영구 회장과 같은 전라남도 출신이자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무역학과 동문이며 씨티은행과 한미은행에서 함께 일했다.

하영구 회장이 2001년 6월에 최연소 한미은행장으로 일할 때 영입한 40대 임원들 가운데 한 명이다. 하영구 당시 행장은 박진회 등을 영입하면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됐다.

한국씨티은행이 2004년에 한미은행을 인수합병할 때 수석부행장으로 선임됐다. 노사투쟁에서 회사 측 대표를 종종 맡았으며 2005년 11월에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변화추진전담반 수석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영구 당시 한국씨티은행장이 2013년 4월에 다섯차례 연속 연임에 성공했을 때 박진회도 부행장으로 연임하면서 12년 동안 부행장을 맡는 기록을 세웠다.

하영구 행장이 2014년 10월에 KB금융지주 회장직에 출마할 의사를 밝히면서 박진회가 유력한 차기 한국씨티은행장후보로 떠올랐다. 당시 박진회는 조엘 코른라이히 소비자금융책임 수석부행장과 함께 한국씨티은행의 업무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2014년 10월 말에 차기 씨티은행장 후보로 선임됐다. 당시 씨티은행이 2014년 2분기 기준으로 순손실 749억 원을 입으면서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모기업 씨티그룹의 방침에 따라 소매금융과 기업금융에 집중할 방침을 세웠다.

현장경영을 강조하며 영업점과 부서를 방문해 직원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잦다. 점심시간에 직원들에게 직접 배식을 하거나 함께 맛집에 가는 등 소통을 강화했다.

2014년 11월에 한국씨티은행 노조에서 1년에 두차례씩 개최하는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 김지현 SK플래닛 상무가 쓴 책인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를 소개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씨티은행이 사물인터넷(IoT)과 온오프라인 연계서비스(O2O) 등의 보편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1월 말에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업금융·자산관리(WM)·카드사업에 집중할 계획을 제시했다. 씨티은행의 기술금융 실적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에 대해서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5년의 경영목표로 ‘민원없는 은행’을 제시했다. 연초에 고객서비스와 디지털뱅킹을 담당하는 고객프랜차이즈본부를 신설해 익발 싱 부행장을 담당 본부장으로 선임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5년 4월 기준으로 2014년 같은 기간보다 민원이 40% 이상 줄어들었다.

2015년 9월에 청년고용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지주사 회장과 다른 시중은행장들과 함께 연봉의 20%를 자진해 반납하는 행렬에 동참했다.

2015년 11월에 한국씨티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고액자산가 위주로 전면 개편했다. 한국씨티은행이 이전부터 고액자산관리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자산관리에 특화된 스마트 허브지점인 ‘씨티골드 반포지점’을 개점하는 등 영업점 체계도 자산관리사업 위주로 재편했다.

2015년 12월에 한국씨티은행의 자회사였던 씨티캐피탈을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매각하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국씨티은행이 2015년에 순이익 2257억 원을 냈는데 2014년보다 95.3% 늘어났다. 그러나 이자수익과 비이자수익이 모두 2014년보다 줄어든 반면 인건비 등의 비용감소로 순이익이 증가한 점에 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6년 들어 저금리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순이익 감소를 겪고 있다.

2016년 7월에 종합자산관리상담시스템인 ‘토탈웰스어드바이저(TWA)’을 직접 선보이면서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사업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기타

한국씨티은행의 아마추어 악기연주자 모임인 ‘앙상블’의 고문을 맡고 있다.

한국씨티은행 디지털뱅킹부 직원인 안재균씨가 2015년 3월31일에 영국의 금융시장분석가 크리스 스키너가 쓴 ‘디지털뱅크 은행의 종말을 고하다’를 번역해 출간했는데 이 책에 “스마트폰이 기존의 삶을 바꿨듯 핀테크도 기존의 은행에 대한 개념을 뿌리째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2016년 상반기에 급여 7억5100만 원을 받았다. 급여는 1억9200만 원이었지만 상여금으로 5억5900만 원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