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대로는 제가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거 같아 노욕이 아니냐는 질타에도 염치불구 나섰다. 태영건설과 함께 온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도와 달라."

만 90세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태영건설을 살려야 한다며 워크아웃 승인을 강하게 요청했지만 채권단의 반응은 냉랭했다. 태영건설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 채권단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90세 태영건설 창업회장 호소에도 채권단 반응 싸늘, 워크아웃 열쇠는 SBS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의 호소에도 채권단의 반응은 싸늘하다.


태영그룹은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가 가진 우량 자산들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채권단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결국 태영그룹이 보유한 SBS 지분 매각 결단이 채권단의 워크아웃 승인을 얻어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란 시선이 고개를 든다.
 
4일 금융권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11일 1차 채권자협의회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여부가 확정되지만 아직 태영그룹이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지난 3일 열린 채권자 설명회에서 사력을 다해 흑자부도를 막고 채무를 상환하겠다는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채권단 반응은 신통찮았다. 더욱이 구체적 자구안도 발표되지 않아 일부 채권단들은 설명회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열린 설명회에서 “대주주가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 있는 자세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채권단의 원만한 협조와 시장 신뢰회복을 이끌어낼지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태영그룹의 자구책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려면 오너일가가 SBS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매각에 나서 진성성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티와이홀딩스는 SBS 지분 36.92%를 보유하고 있다. 장부가액 기준 지분가치는 2380억 원이다.

다만 양윤석 티와이홀딩스 미디어정책실장 전무는 전날 “SBS 매각에는 법적 제약이 있다는 점을 채권단에게 말하고 있다"면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기가 나온다면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꼭 그런(매각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방송업계 관계자는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자에 관한 제한이 까다롭고 담보대출이든 매각이든 방송통신위원회와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절차상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설령 매수자가 나온다고 해도 방통위로부터 최다출자자 변경 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매각이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여러가지 요인을 봤을 때 채권단에서 기대하는 금액 이상의 가치를 받지 못할 공산도 크다”고 바라봤다.

태영그룹이 말하는 법적 제약의 대표적 사례는 방송법 8조에 따른 소유제한이다. 우선 자산 10조 원이 넘어 대기업으로 분류되면 지상파방송 지분 1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태영그룹도 자산 10조 원을 넘겨 소유제한에 해당하지만 방송법 제정 이전 허가를 받은 경우 지분을 인정하는 부칙 제9조를 근거로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밖에 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시장 점유율, 사업자수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를 초과해 방송채널사용업을 경염하거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도 방송법 8조에 포함돼 있다. 또한 지상파방송사업을 할 때는 방송법 제9조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고려하면 SBS 지분 매각이 간단치 않다는 태영그룹의 주장에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다만 채권단은 SBS 매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오너일가의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1549억 원에 환경사업을 맡은 에코비트, 골프·레저사업을 영위하는 블루원, 양곡화물 보관사업체 평택싸이로 매각이다.

태영그룹은 이를 통해 1조5천억 원에서 1조6천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태영인더스트리 1549억 원, 에코비트 지분 1조 원, 블루원 3천억 원, 평택싸이로 1천억 원 등이다. 여기에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강력한 구조조정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태영인더스트리는 글로벌 사모펀드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에 2400억 원에 매각됐다. 태영인더스트리는 티와이홀딩스 40%, 윤석민 회장 32.34%, 창업회장 차녀 윤재연씨가 27.66% 지분을 들고 있는 물류기업이다. 윤재연씨가 가져가는 금액을 제외한 금액을 자구안에 포함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블루원은 티와이홀딩스가 87.74%, 오너일가가 12.26%를 쥐고 있다. 평택싸이로는 이미 KKR이 앞서 지분 37.5%를 600억 원에 인수했다. 남은 지분도 매각하겠다는 것인데 KKR이 가져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에코비트는 티와이홀딩스와 KKR이 지분 각각 50%씩을 쥐고 있다. 전체 가치를 2조 원으로 평가하고 50% 지분을 1조 원으로 본 셈이다. 

태영그룹 자구안에는 채권단이 기대한 3천억 원 수준의 오너일가 사재출연과 SBS 매각 등이 포함되지 않아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1조6천억 원의 자구안이 현실화할지 여부도 미지수라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전망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는다. 

티와이홀딩스가 가지고 있는 에코비트 지분 50%는 KKR이 이미 담보를 잡고 4천억 원을 대출해줬다. 이는 태영건설에 대여금 형태로 수혈됐다.

시멘트회사들의 적극적 환경사업 투자로 경쟁이 격화돼 에코비트가 수익성이 정체된 상황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에코비트는 올해 상반기 누적 매출 3344억 원, 영업이익 528억 원을 거둬 지난해 상반기와 견줘 각각 3.6%, 22.6% 감소했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2400억 원도 태영건설 지원에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진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빌미가 됐다.
 
90세 태영건설 창업회장 호소에도 채권단 반응 싸늘, 워크아웃 열쇠는 SBS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3일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티와이홀딩스는 매각대금에서 자구안에 포함된 1549억 중 890억 원을 태영건설 사업장에 설정된 티와이홀딩스의 연대채무를 갚는데 먼저 사용하고 태영건설에는 400억 원만 지급했다. 산업은행이 부족분인 1149억 원을 지급하라고 요청했지만 티와이홀딩스는 290억 원만 추가로 납부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블루원을 매각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 역시 티와이홀딩스의 연대채무 상환에 먼저 쓰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워크아웃에 관한 오너일가의 진정성을 채권단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윤세영 창업회장이 주장하는 실제 문제 우발채무 규모가 2조5천억 원 정도라는 점도 채권단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태영건설은 보증채무 현황을 두고 유위험보증 채무를 2조5259억 원(브릿지 1조2193억 원, 본PF 분양률 75% 미만 1조3066억 원), 무위험보증 채무는 6조9785억 원(본PF 분양률 75% 이상 1조769억 원, 수분양자 중도금 보증 1조3142억 원, 사회간접자본사업 1조304억 원, 책임준공확약 3조5570억 원)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이 CCC(투기등급)으로 강등된 이상 무위험보증 채무 역시 위험도가 높다고 보고 있다.

박경민 DB투자증권 연구원은 “11일 제1차 채권자협의회에서 일부 선순위 금융사가 워크아웃에 반대해 채권매수 청구권을 행사하면 워크아웃 무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 채권단이 납득할 만한 자구계획 여부가 중요하다”며 “채권단과 태영그룹 사이 의견차이가 확인돼 합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