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산업 영국 뜨고 스페인 이탈리아 지고, 기후변화에 와인 종주국 지형 변화

▲ 영국 홀름퍼스 포도원의 전경. 인근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로제와인이 난간에 세워져 있다. <위키미디아 커먼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생산지를 꼽으라면 대부분 프랑스의 ‘보르도’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와인을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 스페인, 칠레 정도의 국가를 언급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영국이 새로운 와인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3일 외신 보도와 국제기관 통계를 종합하면 영국은 지난해 이미 세계 주요 와인 생산국으로 등극했다. 

영국 와인협회 와인GB(그레이트브리튼)에 따르면 영국 와인 생산량은 2023년 1억 리터를 넘어섰고 2030년에는 1억6천만 리터를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3대 와인 생산국보다는 약간 적지만 비유럽 주요 와인 생산국인 호주, 칠레와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생산량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영국 각지의 와이너리가 끌어모은 투자금은 4억8000만 파운드(약 7900억 원)가 넘었다.

포도 재배면적도 크게 늘어 2018년 2138헥타르에서 2023년 12월 기준 3230헥타르로 약 51% 증가했다.

품종도 다변화됐다. 기존에는 추운 기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화이트와인용 청포도 품종 생산에 주력했던 반면 현재는 까베르네 소비뇽과 피노누아 등 대표적 적포도 품종들이 영국 내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재배면적당 포도 수확량도 크게 늘어 2022년 기준 1헥타르당 약 4톤이었던 수확량이 지난해 기준 8톤을 넘어섰다.

니콜라 베이츠 와인GB 대표는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영국 와인 생산업자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프랑스 와인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프랑스를 향한 경쟁심리와 역사적 배경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와인을 향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중세시대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52년 영국 왕으로 등극한 헨리 2세는 프랑스 아키텐 여공작 엘레오노르와 결혼했다. 프랑스인이 왕비로 등극하자 영국 귀족 사회에서는 프랑스 문화가 크게 확산됐는데 이때 와인의 인기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만 당시에는 영국의 기후 여건상 와인을 자국내에서 생산할 방법이 없어 영국은 왕비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 영지, '보르도'에 와인산업을 집중육성했다.

이때 와인산업을 크게 일으킨 보르도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고급 와인 브랜드를 보유해 세계 와인 시장에서 막강한 프리미엄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의 이번 와인 붐이 '제2의 보르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해 볼만 하다.

영국이 이처럼 와인산업 붐을 맞이한 반면 전통 와인산업 강국들은 지난해 이상기후 영향으로 생산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산업 영국 뜨고 스페인 이탈리아 지고, 기후변화에 와인 종주국 지형 변화

▲ 이탈리아 피에몬테 로에로(Roero) 지역에서 생산된 로에로 와인. <위키미디아 커먼스>

국제포도주기구(OIV)에 따르면 프랑스와 함께 ‘와인 종주국’으로 이름이 높은 이탈리아는 올해 생산량이 12% 떨어졌다.

유럽 3대 와인 생산국에 속하는 스페인도 지난해와 비교해 생산량이 14% 감소했다. 지난 5년 평균과 비교하면 19% 떨어진 수치였다.

그 외에도 헝가리, 그리스,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몰타 등 일부 유럽국가들도 일제히 와인 생산량이 감소했다.

유럽은 전 세계 와인의 60% 이상을 생산하고 있어 유럽의 생산이 떨어졌다는 것은 곧 세계 와인 생산 감소로도 이어진다.

국제포도주기구는 지난해 11월 ‘세계 와인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국가들은 포도작물 생장 기간 동안 발생한 이상기후 영향으로 생산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이상기후는 변화한 조건에 따른 곰팡이 등 병충해를 동반했다”고 말했다.

유럽의 뒤를 이어 세계 와인의 19%를 생산하는 남반구 국가들도 지난해 생산이 유럽 국가들보다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대표적 남반구 와인 생산국 칠레와 호주는 지난해 생산량이 각각 18%, 2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포도주기구는 “홍수와 가뭄 등 극단기후 현상은 세계 와인 농가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국가들만이 이와 같은 극단기후 현상의 악영향을 피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