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보조금 문턱 높아져, 현대차 기아 ‘기울어진 운동장’ 탈출 기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11월17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GM의 전기차 생산공장 '제로'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재무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규정한 해외우려단체(FEOC)를 확정하면서 현대차와 기아의 가격 경쟁력이 2024년부터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근거해 세액공제를 받았던 다른 전기차 기업들이 규정 강화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해 소비자들이 체감할 차량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차와 기아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세액공제 혜택이 없다는 핸디캡을 가지고도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한 현대차와 기아 앞에 ‘평평한 경기장’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19일 뉴욕타임스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2024년부터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세액공제를 받는 전기차 모델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16일자 기사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규정 때문에 1월1일부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바라봤다. 

대다수의 전기차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하는 리튬 등 필수 광물 및 배터리 부품 공급을 해외우려단체로 규정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우려단체에서 생산한 배터리 부품을 사용할 경우엔 2024년부터, 그리고 핵심 광물을 사용할 경우엔 2025년부터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쓸 경우 차량 한 대당 3750달러(약 490만 원), 그리고 미국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을 사용하면 3750달러를 각각 지급하는데 이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투자전문지 더스트리트는 현지시각으로 11일자 보도를 통해 2024년부터 7500달러(약 980만 원)의 세액공제를 전부 받는 차종은 고작 10종류라고 적었다.

뉴욕타임스는 주요 자동차기업들에서 주력으로 판매하는 전기차 모델들이 세액공제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테슬라와 포드의 일부 차종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GM은 세액공제 가능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최근 자사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모델3’의 후륜구동 및 롱레인지(주행거리를 늘린 제품)등 일부 옵션 차량은 12월31일까지 구입해야 세액공제를 모두 받을 수 있다고 공지했다. 

미국에서 4번째로 인기 있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SUV) 모델인 포드의 머스탱 마하-E도 인플레이션 감축법 혜택을 받지 못한다. 

뉴욕타임스는 “손에 꼽을 만큼 소수의 모델만이 세액공제를 전액 받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기차 보조금 문턱 높아져, 현대차 기아 ‘기울어진 운동장’ 탈출 기대

▲ 현대차의 아이오닉 7이 2022년 10월25일에 열린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 기공식에 전시돼 있다. 아이오닉 7은 2024년에 출시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새로 적용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현대차와 기아에 반사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까지는 미국에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해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쪽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현대차와 기아가 제품 경쟁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현대차의 아이오닉과 기아의 EV 시리즈 등 두 기업의 전기차는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던 불리한 상황에도 미국 전기차 점유율 상위권에 올라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인 켈리블루북(KBB)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기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를 합한 점유율은 7.8%다. 테슬라에 이은 2위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점유율 순위와 비교해 한 계단 올랐다. 

경쟁사들 차량의 체감 가격이 오를수록 현대차와 기아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져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차량을 직접 판매하는 대신 리스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세웠던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는 리스 생산으로 불리함을 극복한 방식을 두고 “현대차 등 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국에서 전기차와 배터리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2024년에 미국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을 가동한다는 점도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판매에 유리함을 더하는 요소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전기차 전용 생산설비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짓고 있다. 2024년 10월에 차량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세액공제 대상에 들 수 있도록 배터리 공급 업체들과 논의해 소재 등 공급망 개편을 준비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뉴욕타임스 또한 “자동차 제조업체가 보조금을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량을 늘리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세액공제를 받는 대상에 새로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최근 미국 최대 유통기업인 아마존과 협업해 판매채널을 확대한 점도 마케팅과 판매 측면에 긍정적이다. 

결국 경쟁기업들은 전기차 보조금이 줄거나 없어지면서 타격을 받는 반면 현대차와 기아는 오히려 이를 성장 기회로 삼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다만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될 차량이 세액공제 요건을 갖추도록 배터리 부품 공급망을 조정하는지 묻는 비즈니스포스트의 질문에 “인플레이션 감축법 세액공제와 관련해 2023년 12월 현재 시점에서는 확정된 사안이 없다”고 유선상으로 답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