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배터리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의 둔화 영향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전방 전기차산업의 성장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된 것은 아닌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업체들은 북미 생산능력을 차질없이 확대하고 중저가 제품군을 넓혀 전기차 수요가 회복될 2025년 이후 재도약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K배터리 수요둔화 대응 부심, 북미시장 다지고 중저가 제품 늘려 재도약 준비

▲ K배터리 업체들이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조절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13일 배터리 셀·소재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며 후방 배터리산업의 성장 속도 역시 일시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포드가 LG에너지솔루션, 튀르키예 코치그룹과 추진하던 튀르키예 배터리 셀 생산시설 구축 계획이 철회된 것도 유럽 내 전기차 수요가 기대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후속조치 성격이 짙다. 

포드와 코치그룹은 튀르키예에서 합작사 ‘포드 오토산Ford-Otosan)’을 설립해 매년 45만 대 규모 상용차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 물량의 상당수는 유럽시장에서 소비된다. 

애초 포드는 유럽 상용 전기차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코치그룹, LG에너지솔루션 등과 손잡고 현지 배터리 생산시설까지 구축하려 했다. 전기차 제조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40%를 넘는 만큼 배터리 내재화가 유럽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 속도가 기대보다 더딘 탓에 유럽 내 배터리 생산시설 구축은 무산되고 말았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현재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튀르키예에 건설 예정이던 배터리 셀 생산시설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에 3사가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의 협력관계가 유지되고 LG에너지솔루션이 기존 생산시설을 통해 포드에 배터리 셀을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는 만큼 합작법인 설립 무산이 당장의 영업 가치를 훼손하는 중대 악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생산시설을 구축할 때 드는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전기차 수요의 둔화세와 이에 따라 완성차업체의 전기차 전환이 늦춰지고 있다는 점도 함께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포드는 SK온과 추진하는 북미 합작공장의 증설 시점도 늦추고 있다. SK온 측은 3분기 실적설명회에서 포드와 추진하는 테네시공장과 켄터키1공장 건설계획은 그대로 진행해 2025년부터 양산을 시작하지만 켄터키2공장은 연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또 다른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도 3분기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생산 목표치를 대폭 낮추며 전기차 생산의 속도조절을 예고했다.

GM은 2024년 중반까지 2년 동안 4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폐기했다. 미시간주에 건설해 내년 가동 예정이었던 전기차공장의 가동 시점도 1년 연기했다. 

원료 금속의 가격 하락도 배터리업종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셀과 소재의 제품 가격은 원료 가격을 반영하고 있는데 원료 가격이 떨어져 제품 가격도 같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비싼 가격에 원료를 사서 지금 싼 가격에 제품을 파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환경은 더 치열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자국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미 중국 CATL은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세계 선두 셀 제조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BYD에도 최근 점유율 격차에 뒤처지고 있다.  
LG엔솔 가파른 성장에도 안심 못해, <a  data-cke-saved-href='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30173' href='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30173' class='human_link' style='text-decoration:underline' target='_blank'>권영수</a> 북미 선점효과 가시화 학수고대

▲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건주 배터리공장 모습. < LG에너지솔루션 >



그나마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서는 그 격차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배터리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9월 판매된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사용량 가운데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사용량 64.1GWh으로 28.1%의 점유율을 보였다. 다만 2위 CATL의 사용량은 그보다 불과 0.1GWh 적은 64.0GWh(점유율 28.1%)로 LG에너지솔루션과 점유율 격차가 거의 없었다. 

이런 K배터리의 어려움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최근 국내 배터리 셀·소재업종 주가는 매우 가파른 낙폭을 보이고 있다.     
 
다만 배터리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전기차시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일시적 어려움을 견디고 나면 다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원료 금속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본질적 경쟁력 훼손으로 보기는 어렵다. 2차전지 원료가 되는 리튬과 니켈 등의 금속은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품목인 만큼 외부 환경에 따라 원료 가격의 변동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원료 가격이 하락할 때는 지금처럼 마진 폭이 축소되지만 반대로 원료 가격이 상승하는 구간에서는 마진 폭이 되레 확대되며 셀·소재사들이 많은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원료 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셀·소재사 영업이익률은 5% 안팎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K배터리업체들로서는 전방 전기차시장의 수요 감속이 보다 본질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혁신 산업이 거쳐야 하는 성장통의 과정이란 시각이 많다. 

증권업계에서는 전기차시장의 현재 성장 둔화를 두고 초기시장에서 주류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수요 공백기가 발생하는 ‘캐즘’ 국면으로 보고 있다. 

초기시장은 인구의 16% 정도의 혁신수용가(이노베이터)와 초기구매자(얼리어답터)로 구성되는데 초기시장에서 주류시장(비중 84%)로 넘어갈 때 수요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전기차 보급률이 90%에 이르는 노르웨이에서도 일시적 수요 공백이 발생한 적이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이 80%에 이르며 전기차산업이 주류시장으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노르웨이도 2015년 전기차 전환율 17%에 이르렀다 2016년 수요 공백기를 거쳐 2017년 본격 성장기로 넘어간 적이 있다. 

주민우 NH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전기차시장도 노르웨이 사례처럼 2024년 잠시 둔화기를 거친 뒤 2025년 인프라 구축 확대와 가격과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 본격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K배터리기업들은 글로벌 각지에 생산시설 구축하고 생산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다가올 전기차 본격 성장기에 대응할 역량을 갖춰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K배터리기업들은 글로벌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북미에서 압도적 생산능력을 구축해 뒀고 가장 공격적으로 증설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내 연산 60GWh 체제를 구축했고 2025~2026년에는 북미에서만 연산 342GWh 체제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재 북미 지역에서 연산 21.5GWh 체제를 갖춘 SK온도 2025년 연간 185.5GWh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아직 북미에 생산시설을 가동하지 않고 있는 삼성SDI도 2026년까지 연산 100GWh에 육박하는 생산시설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반면 K배터리의 최대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미국정부의 강력한 견제로 북미 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북미에 생산시설을 갖춘 국내 셀 제조사들이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는 데 반해 중국업체들은 아직 북미에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북미에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앞서 포드는 CATL와 협력해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가 이를 중단한 바 있다. 포드는 생산비용 문제를 이유로 계획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포드가 정치적 부담을 느껴 CATL과 협력을 중단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미국 정가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을 불문하고 반중국 정서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정부가 해외우려집단(FEOC) 지정을 통해 중국기업의 북미시장 진출을 더 강하게 차단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북미시장에서 K배터리업체의 독보적 지위는 보다 공고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현재 국내 셀 제조사 3사의 누적 수주잔고는 1천조 원이 넘는 규모로 최근 매출을 기준으로 각 회사가 십 년 이상 일감을 쌓아뒀다고 볼 수도 있다.

K배터리업체들은 현재 직면한 수요 감속기를 실력을 축적하는 시기로 삼을 준비를 하고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1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3회 배터리산업의 날 기념식’에서 “국내 셀 제조사 3사가 예외 없이 수요 감소를 겪고 있을 텐데 잘 됐다”며 “원래대로 갔으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장 지을 인력이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을 텐데 급히 성장하다보니 간과한 여러 가지를 다지다보면 K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동섭 SK온 대표이사 사장도 같은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업황 악화와 관련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숨을 고르며 필요한 준비들을 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지 사장은 “단기적으로 2024년까지 출렁임이 있을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세는 꾸준하다”며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나 전동화의 중장기 계획에 아직 수정된 부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K배터리업체들이 수요 감속기에 실력을 기를 분야로는 리튬인산철(LFP)배터리를 비롯한 저가형 모델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일이 꼽힌다.  
 
국내 셀 제조사 3사 모두 올해 3분기 실적설명회를 통해 리튬인산철 등 저가형 모델 확장 계획을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을 예로 들면 파우치형 셀의 무게, 공간 활용률 등의 강점을 결합한 전기차용 리튬인산철, 망간리치, 리튬인산망간철 등의 신규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중저가형(어포더블) 시장 대응을 위해 망간리치와 함께 리튬인산철 제품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며 “이들 제품은 2026, 2027년 연속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고 이를 위해 저가형 전기차 시장 대응을 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민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공격적 증설에 따라 한국 배터리 기업의 시장 장악력은 당분간 하락할 것”이라면서도 “2025년부터 다시 K배터리 생산능력 비중이 상승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유 연구원은 “한국 배터리기업의 대규모 미국 신증설 상업가동, 중국기업의 공급과잉에 따른 신규 증설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