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환경계획(UNEP)은 3일 ‘2023 기후적응 격차 보고서(AGP)’를 발간하고 기후적응 관련 투자를 10~18배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9월 태풍 다니엘로 발생한 폭우에 댐이 무너져 침수된 리비아 데르나시. 이때 홍수 피해 사망자만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으로 '기후적응'에 사용하는 자금이 적어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으로 기후피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필요한 기후적응기금과 실제로 투입되는 금액 사이의 ‘격차(갭)’가 커 기후적응을 제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현지시각으로 3일 ‘2023 기후적응 격차 보고서(AGP)’를 발간했다. 기후적응이란 기후변화로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는 "기후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건강피해와 자연재해에 대한 적응역량과 회복력을 높이는 등 현재 나타나고 있거나 미래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위기의 파급효과와 영향을 최소화하거나 유익한 기회로 촉진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기후적응책과 관련해 유엔환경계획이 든 대표적 예가 해수면 상승에 따른 해안 침수 방지 대책이다.
해안 침수 방지에 세계 각국이 10억 달러(약 1조3315억 원)를 투자하면 미래에 발생할 피해액을 140억 달러(약 18조6410억 원) 이상 줄일 수 있다고 유엔환경계획은 분석했다. 투자 대비 효과가 14배인 셈이다.
기후적응은 투입되는 자금 규모에 비해 혜택 받는 인구도 클 것으로 파악됐다.
유엔환경계획은 세계 각국이 가뭄과 홍수 대책 등 농업 분야 기후적응에
연간 160억 달러(약 21조3152억 원)만 투자해도 세계적으로 기아를 겪는 인구를 7800만 명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데도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의 기후적응기금에 투입되는 금액은 최근 몇 년 동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엔환경계획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의 기후적응에 필요한 자금은 2030년까지 매년 연간 3870억 달러(약 515조1357억 원)인 것으로로 집계됐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에 지원되는 기후적응기금 규모는 2021년 15% 감소해 2022년에는 연간 213억 달러(약 28조3481억 원) 규모로 줄었다. 지원자금은 실제로 필요한 자금의 약 5.5% 수준에 머물렀다.
유엔환경계획은 투입하는 자금을 현재와 비교해 최소 10배, 최대 18배까지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연간 기후적응기금(가장 왼쪽 파란색 지표)과 실제로 운용되고 있는 기금(붉은색). <유엔환경계획> |
기후적응기금이 이렇게 계속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기금을 필요로 하는 주요 지역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아닌 개발도상국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데도 자력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경제적 능력도 부족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이에 ”우리는 지금 기후적응 능력에 비상이 걸렸다“며 ”각국 정부는 행동을 미룰 것이 아니라 이 격차를 메꾸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환경계획은 선진국들이 주도해 기후적응기금을 큰 폭으로 증액하지 않는다면 20년 내로 연간 격차가 9750억 달러(약 1289조5359억 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헨리 노이펠트 유엔환경계획 상임연구원은 ”기후위기에 직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기에 가장 크게 주범인 화석연료 기업들은 여전히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들에게 세금을 매겨 일부 기금을 충당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은 유엔환경계획의 이번 보고서를 보도하며 기후적응기금 증액 필요성을 피력했다.
가디언은 유엔환경계획의 보고서를 보도하면서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가 9월 자사에 기고한 칼럼을 재인용했다.
브라운 전 총리는 자신의 칼럼에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충분히 후진국들의 기후적응을 지원할 여력이 있다”며 ”그런데도 우리가 얻은 이익의 극히 일부를 이들을 위해 다시 환원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