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수율을 높여 흑자전환의 토대는 마련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SK온이 영업적자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은 그동안 이익개선의 큰 걸림돌이 됐던 해외 생산시설의 낮은 수율을 상당 부분 개선하며 흑자구조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전방 전기차업종의 성장 둔화가 겹친 탓에 분기 기준 흑자 전환이 계속 늦춰지는 아쉬운 상황을 맞게 됐다.
18일 증권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SK온의 수익성 개선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올해 안에 분기 기준으로 흑자전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수그러들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SK온이 분기 기준으로는 3분기에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시각이 제법 있었다. 미국 내 증설 효과가 본격화해 북미 출하량이 늘어나며 매출 증가와 함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수취액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SK온의 올해 2분기에 영업손실은 1322억 원에 이르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영업손실이 58.1%나 줄어든 수치다. 직전 1분기와 비교해도 영업손실은 61.7%나 감소했다.
적자 폭이 감소하는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안에 분기 기준으로는 흑자 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현재 시점에서는 올해 안에 분기 흑자전환이 어렵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SK온의 3분기 영업손실이 2분기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적자 규모가 더 확대됐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대차증권은 SK온의 3분기 영업손실을 1400억 원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2분기 영업손실(1322억 원)보다 5.9% 늘어난 수치다. 유진투자증권이 추산한 영업손실 규모는 이보다 더 큰 1410억 원 수준이다.
SK온의 부진은 이미 흑자 구조에 안착한 뒤 선전하고 있는 국내 배터리 경쟁사들의 모습과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7312억 원을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1%나 늘었다.
삼성SDI도 5천억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동공구 등에 탑재되는 소형전지 부문에서는 다소 부진한 실적을 낸 것으로 파악되지만 전기차용 중대형전지 부문에서는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삼성SDI는 비교적 양호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안정적 이익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SK온의 실적 개선이 더뎌지는 이유로는 전방산업인 전기차시장의 성장세 둔화가 꼽힌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전기차시장이 감속 국면에 진입하며 2차전지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의 수요도 따라서 둔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SK온이 배터리를 공급하는 주요 고객사들의 판매 부진이 두드러져 SK온이 경쟁사들보다 전기차시장 성장 둔화의 영향을 더 많이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SK온은 고객사인 포드와 폭스바겐의 판매 부진으로 직전 분기보다 3분기 적자 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최근 폭스바겐의 미국 ID.4 판매는 점진적으로 회복 중이지만 포드의 F-150 라이트닝트럭 판매는 기대보다 부진하다”고 파악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으로서는 SK온이 미국 공장 수율을 어느 정도 정상화하며 북미시장에서 입지 확대를 위한 토대를 구축한 시점에 전방 수요 위축에 따른 실적 부진을 겪게 된 점이 적잖이 아쉬울 것으로 보인다.
SK온이 북미사업에서 약점으로 지목돼왔던 낮은 수율을 상당 부분 개선한 만큼 전방 산업의 수요만 꾸준히 뒷받침됐다면 분기 흑자 전환도 노려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SK온은 국내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와 비교하면 전기차용 2차전지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가 늦은 후발주자라 할 수 있다. 앞서 있는 경쟁사들을 따라잡으려면 공격적 증설 기조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그룹 오너가문의 일원으로서 그룹 차원에서도 중요한 성장동력이 될 배터리사업을 도맡아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공격적 투자에 나서는 뚝심을 보여왔다.
현재 SK온은 전기차 비중이 가장 급속도로 늘어나는 북미에서 생산능력을 빠르게 늘리는 배터리기업으로 꼽힌다. 향후 증설 규모나 증설 속도에서도 SK온을 뛰어 넘는 곳은 LG에너지솔루션 정도뿐이다.
SK온은 현재 조지아 단독공장을 통해 연산 20GWh 넘는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 현대차와 합작을 통해 2025년까지 조지아에 연산 35GWh 생산능력을 추가할 계획이 마련돼 있다. 또 포드와 합작해 2025년까지 연산 129GWh 생산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SK온은 북미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5년 연산 280GWh, 2030년 500GWh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정했다.
막대한 투자를 빠르게 집행하다보니 수익성 확보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배터리업계에서는 생산시설을 구축한 뒤 수율을 안정화해 생산성이 궤도에 오르려면 적어도 3~4년이 걸린다고 보고 있다. 공격적 증설 투자로 생산시설을 구축했더라도 수율이 안정화되기까지는 낮은 수익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던 SK온의 미국 공장 수율이 올해 3분기 90%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공장 수율은 6월 기준 약 80% 수준에서 10월 90%를 넘었고 연말 9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얄궂게도 미국 공장의 수율이 정상화되고 있는 시점에 전방 고객사의 판매 부진이 겹친 것이다. SK온 미국 공장에서는 폭스바겐과 포드에 공급하는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다만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SK온의 본격적인 성장 시점을 사실상 내년으로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 수석부회장은 4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 SK온은 빠르게 성장하는 배터리산업에서도 가장 빨리 크고 있는 기업“이라며 ”당장 힘들어도 서로를 믿으며 다 같이 한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젓자“고 말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러면서 “통상 제조업은 초기 4~5년은 적자를 보다가 이후 빠른 속도로 빛을 본다”며 “여러 어려움이 있으나 이를 잘 극복하면 2024년부터는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고객 외연 확장에 힘쓰며 내년 이후 결실을 키울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수석부회장은 8월 칼레니우스 벤츠 회장과 만나 사업협력을 논의한 데 이어 9월 독일에서 열린 ‘IAA모빌리티2023’을 참관하며 폭스바겐, BMW, 현대모비스 등 참가 기업들의 부스를 둘러보며 잠재 고객사들과 접촉면을 넓히기도 했다.
▲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유럽 최대 규모의 모빌리티쇼 'IAA 2023' 첫 날인 9월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메세 전시장을 찾아 BMW 관계자로부터 차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SK온 > |
흑자 전환 시점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지만 내년 이후 SK온의 영업실적 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K온은 외형성장을 동반한 수율개선으로 2024년 연간 흑자전환이 예상된다”며 “수율과 가동률을 고려한 발생 가능한 매출은 2025년 27조 원, 2030년 62조 원”이라고 내다봤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온은 2024년 1분기에는 흑자전환할 것”이라며 “포드 전기차의 판매 증가와 수율 정상화에 힘입어 기업가치 재평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