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의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놓고 전문가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유가 상승은 수요 감소라는 하락 요인을 발생시키는 만큼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도래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를 향한 시장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 석유 산업을 향한 추가 투자가 부재한 가운데 원유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유가가 조만간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시장의 의견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유가가 100달러를 일시적으로 돌파할 수는 있어도 그 가격을 계속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추가 유가 상승은 다시 수요 하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이 단 2번에 불과한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4일 최근 유가 흐름을 분석해보면 국제유가는 올해 7월 이후 상승 추세가 이어지며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1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6월30일 배럴당 70.64달러에서 이날 89.23달러로 26%, 브렌트유 가격은 같은 기간 75.41달러에서 90.92달러로 21% 뛰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와 브렌트유 가격은 9월27일 각각 모두 올해 최고치인 배럴당 93.68달러, 90.92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가가 급등한 것은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적 감산 영향이 크다. 사우디는 올해 7월부터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고 있다.
OPEC+가 지난해 말부터 원유 생산량을 줄였는데도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에서 머물자 사우디가 개별적으로 감산 조치를 강화한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는 지난해 11월부터 200만 배럴, 올해 5월부터 166만 배럴을 합쳐 하루 366만 배럴의 감산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 금융시장의 우려점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완화되면서 현재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하는 유가가 형성됐다.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우려의 해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원유 수요 회복세가 같이 나타났던 덕분이다.
사우디와 OPEC+ 차원의 감산이 최소 올해 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지에 관해선 엇갈린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일부 기업 및 기관들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크게 웃돌 것이란 예측을 내놨다.
더그 롤러 콘티넨털리소시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셰일오일 시추량을 늘리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에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콘티넨털리소시스는 세계 최대 셰일업체 가운데 하나다.
마켓인사이더에 따르면 JP모건은 원유 공급이 더 감소하는 상황을 가정해 올해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전날 하이탐 알가이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도 BBC와 인터뷰에서 “하루 평균 원유 수요가 240만 배럴 가량 늘어나고 있다”며 수요 증가로 고유가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가이스 사무총장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것이라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OPEC은 전망 가격을 내놓지 않는다”면서도 “석유 산업에 투자 부족 등을 이유로 높은 가격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 2014년 말부터 셰일 가스와 셰일유가 시장에 공급된 뒤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가 유일하다. 사진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 동쪽 쿠리스 인근 사막에 위치한 원유 시설. < Getty Images > |
반면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유가가 형성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전날 미국 3대 은행인 씨티그룹은 4분기 전망 보고서를 통해 유가가 하락세를 보이며 내년에는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에서 에드워드 모스 씨티그룹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 부문 책임자는 “우리는 브렌트유 가격은 올해 4분기 배럴당 평균 82달러, 내년에는 74달러로 예상되는 약세 전망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씨티그룹은 미국, 브라질, 캐나다 등 OPEC+ 비회원국 중심으로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모스 책임자는 “원유 공급 증가 속도를 고려할 때 현재 배럴당 90달러 유가도 지속가능하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배럴당 100달러는 쉽게 넘지 못할 ‘벽’으로 여겨진다.
최근 10년 동안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유지된 적은 2010년대 초와 2022년 상반기, 단 2번에 그친다.
새로운 시추법 개발을 통해 셰일 가스와 원유를 생산하게 된 ‘셰일혁명’ 이후 현재 원유 공급 구조가 정착한 뒤로 한정하면 지난해 1번에 불과하다.
2008년 한때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유가는 2010년대 들어서 수요 증가에 힘입어 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세계 원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에 유가는 2011년부터 2014년 3분기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다.
지난해 상반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돈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깔려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에도 OPEC+의 하루 200만 배럴 감산 결정 이후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다.
고유가 시대를 바라보는 여러 전망 속에서도 100달러 유가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은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채로 유지된다면 향후 수요 둔화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의 핵심인 감산 정책을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이 지금보다 더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기 어려운 이유다.
김도현 SK증권 연구원은 “배럴당 90달러 안팎의 높은 유가가 지속될 만한 상황”이라면서도 “유가 상승이 수요 둔화로 이어지는 저항을 고려한다면 배럴당 100달러의 벽은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 역시 “2008년과 2022년 서부텍사스산 원유 기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이미 휘발유 수요 급감을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윤 연구원은 “유가 추가 상승 때 재고가 충분히 확보된 중국의 원유 수입 수요가 약세로 전환할 것”이라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넘어설 가능성이 제한적이라고 봤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