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미국서 '빅3' 스텔란티스 추월, 전기차 선도 브랜드 한걸음 더

▲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연기관차 판매 호조를 바탕으로 현지 전기차 투자에 가속페달을 밟아 전기차 선도업체 도약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상반기에 미국 자동차 판매시장에서 '빅3' 가운데 하나인 스텔란티스를 제쳤다.

현대차그룹은 아직 미국 시장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연기관차 판매 호조를 바탕으로 현지 투자에 가속페달을 밟아 전기차 선도업체로 도약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은 올해 미국에서 첫 연간 판매량 기준 첫 톱4 진입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전년 동기보다 16.7% 증가한 82만180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이는 현대차그룹 역대 상반기 기준 최다 판매 기록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함께 '미국 빅3'로 꼽히는 스텔란티스를 제치고 미국 시장 판매량 4위에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스텔란티스는 전년 동기보다 1.3% 줄어든 80만6819대를 상반기 미국에서 판매했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그룹 앞자리는 1위 GM과 2위 토요타, 2위 포드가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년 동안 미국에서 자동차 판매량 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021년 0.5%포인트였던 점유율 격차를 0.2%포인트로 크게 줄이며 스텔란티스를 바짝 추격했다. 특히 2022년 하반기 스텔란티스를 추월하기도 했지만 상반기 실적에서 밀려 5위에 머무른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순위에서 토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은 3위에 올랐다. 미국 빅3의 '안방'이 아닌 곳에서는 이미 이들을 넘어서는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 호조는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 전기차 전환 정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테슬라처럼 전기차만 판매하는 업체와 달리 현대차그룹과 같은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내연기관차 판매에서 확보한 수익을 전기차 확대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 신차 판매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5.8%에 그친다. 올 상반기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판매한 신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4.7%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판매 톱4에 자리잡을 정도로 내연기관차 판매를 확대해 수익성을 높이면 전기차 투자에도 힘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더욱이 현대차그룹은 수익성이 높은 SUV(스포츠유틸리티) 판매 비중을 지속해서 확대해왔다. SUV 판매비중은 글로벌 자동차 판매 시장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높다.

현대차와 기아의 1분기 내수시장 SUV 판매 비중은 각각 37.2%, 55.3%를 보였지만 미국시장에서 SUV 비중은 각각 75.1%, 70.7%에 달한다. 또 현대차 고급브랜드 제네시스는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3만1234대가 팔려 반기 사상 최대 판매실적을 새로 썼다.

북미는 현대차그룹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판매하는 시장인데 가장 급진적 전기차 전환 정책을 펼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4월 완성차업체별 2027~2032년식 차량을 대상으로 1마일(약 1.6km) 주행할 때 배출하는 배기가스 배출량을 2026년 186g에서 2032년 82g으로 56% 줄이도록 하는 차량 배출규제 강화안을 발표했다. EPA는 내년 상반기까지 규칙을 확정하고 시행하기 위해 의견수렴 중이다.

EPA 규제안은 2032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67%까지 끌어올리도록 설계됐다. 미국 정부는 2022년(5.8%)부터 10년 동안 미국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10배 넘게 높이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운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유럽 체코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코나EV와 미국에서 일부 만드는 GV70 및 인도네시아에서 일부 제조하는 아이오닉5를 제외하면 대부분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북미(미국·멕시코·캐나다)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를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면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IRA 대응의 일환으로 미국 현지 전기차 생산기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 하반기에는 2조 원을 투입한 연산 30만 대 규모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이 양산에 들어간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첫 전용전기차공장인 HMGMA는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의 전기차를 모두 생산한다.

기아는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하고 있는 전기차전용공장과 별개로 현재 기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의 생산라인 1개를 EV9 전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는데 기아는 EV9을 시작으로 최대 전기차 5개 차종을 미국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 전기차 생산을 위한 증설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 미국서 '빅3' 스텔란티스 추월, 전기차 선도 브랜드 한걸음 더

▲ 현대차 중장기 전기차 판매 계획. <현대차>

현대차는 2030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목표인 200만 대 가운데 가장 많은 66만 대를 미국에서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기아도 2030년 주요시장 목표 판매량인 140만 대 중 47만5천 대(33.9%)를 미국(캐나다 포함)에서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와 기아는 IRA 시행으로 1천만 원에 육박하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못받는 상황에서도 올 상반기 미국에서 전기차 역대 최다 판매 기록를 수립했다.

특히 6월 아이오닉5와 코나EV는 미국 월간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고 올 3월 현지 판매를 시작한 아이오닉6 역시 지난달 처음으로 월간 판매 1천 대를 넘어섰다. 

이는 IRA와 관계 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 등 상업용 판매를 늘리고 5월부터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EV6 등 전용전기차 모델에 IRA와 동등한 수준인 최대 7500달러의 대규모 할인을 실시한 데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내연기관차 판매 확대를 통해 이익체력을 키우는 일은 미국 현지 생산체제 본격 구축에 앞서 전기차 프로모션 등 전기차 시장점유율 방어 전략을 펼치는 데도 힘을 보태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들어 미국에서 역대 최대 판매실적을 써내려가면서 현재 추진중인 현지 전기차 증설투자에도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HMGMA가 완공되는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 전기차 구매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 모델이 차츰 늘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 현지 전기차 생산이 본격 시작되면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판매 확대에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의 6월 미국 인센티브(판매장려금)는 1441달러로 미국 빅3 평균인 2539달러 및 미국 산업 평균인 2048달러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다른 브랜드보다 찻값을 덜깎아줘도 차를 팔 수 있는 브랜드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내연기관를 중심으로 쌓은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IRA 시행에도 미국에서 전동화 일정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속 내비쳐왔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현지 전기차 공장을 짓는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 부분을 활용하고, 그것조차 안 될 때는 인센티브를 가장 낮게 지급하고 있는 점을 이용할 것"이라며 "현재 계획하고 있는 전동화 사업계획 달성에는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