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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독립운동에 재산 쏟은 가문(3)

류인학 khcrystal@hanmail.net 2023-05-2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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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경제] 영동 제일 명가 강릉 선교장, 독립운동에 재산 쏟은 가문(3)
▲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강릉의 명소들을 찾아왔다가 선교장을 방문한다. 강릉 선교장 전경. <강릉시>
[비즈니스포스트] 선교장이 만석군의 부를 일군 첫걸음은 염전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염전이 있던 곳은 지금의 견소동 일대였다고 합니다. 

견소동은 남대천 하구의 바닷가 마을입니다. 동해 바다와 남대천에 둘러싸인 기다란 반도형의 땅에 자리 잡은 마을로 끝자락에 강릉항이 있습니다. 삼면이 큰물에 둘러싸인 곳이라 때를 만나면 많은 재화가 모일 곳입니다.

그런 곳이기에 과거엔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던 소금 생산이 여기서 이뤄졌으며 지금은 이곳에 항만이 조성된 것입니다.

견소동의 동쪽 끝 부분, 항만의 윗쪽에는 죽도봉이라는 작고 예쁜 동산이 솟아 있습니다. 항만 주차장에서 보면, 죽도봉의 형상은 둥그런 구슬 세 개를 모아 놓은 모습입니다.

죽도봉 서쪽에서는 크고 둥근 한 개의 구슬처럼 보입니다. 동그란 봉우리 하나가 홀로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다른 산들과 산줄기로 이어지지 않고 평탄한 땅 위에 혼자 솟아오른 독봉입니다.

서쪽에서 보는 죽도봉처럼 홀로 작고 동그랗게 솟아오른 동산을 풍수학에선 옥인이라 부릅니다. 옥으로 만든 도장이란 뜻입니다.

옥인은 아주 작은 산이지만 매우 큰 역량을 발휘합니다. 어느 터의 정면 앞쪽에 옥인이 있으면, 뛰어난 지혜와 높은 지위, 또는 많은 재물을 얻게 됩니다. 주변의 산세와 물의 형상에 따라 얻는 바가 달라집니다.

견소동은 가까이에 다른 산이 없고 삼면이 물에 둘러싸여 있어 죽도봉의 정기는 높은 지위보다 큰 재물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선교장 이씨 가문이 소금 사업을 기반으로 만석군 대부호가 되었습니다. 선교장 집터와 함께 사업장 터의 특별한 기운도 선교장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지난 회에 말씀 드렸듯이, 선교장의 3대 장주 이후 선생은 출사의 뜻이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의 아들들이 선생의 꿈을 대신 이뤄주었습니다. 두 아들 이용구 선생과 이의구 선생이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의구 선생이 통천군수로 부임했을 때였습니다. 어느 해엔 강원도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선생은 선교장의 창고에 있던 수천 석의 곡식을 가져다 백성들을 구했습니다. 그 덕에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재물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라 한 부친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들어 실천했던 것입니다.

선생은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크나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 훌륭한 목민관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 고장 사람들은 선교장을 통천댁이라 불렀습니다.

선교장 사람들은 대를 이어 많은 선행과 덕행을 베풀었습니다. 소작인들에겐 계속 소작료를 적게 받고 소작인 지주제를 유지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흉년이 들면 창고를 열어 굶주린 이들을 구했습니다. 

선교장 인근 마을에는 높은 산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산에 있는 마른 나무 가지와 나뭇잎을 취사와 난방용 연료로 썼습니다. 그런데 마을엔 낮은 야산들뿐이라 멀리 떨어진 높은 산들로 가서 땔감을 구해야 했습니다.

가을 추수를 마치면, 남자들은 봄철 농번기까지 거의 매일 먼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갔습니다. 먼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또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서 오노라면 모두들 심한 허기로 힘들어했습니다.

이런 나무꾼들을 위해 선교장에선 그들이 지나는 길목에 커다란 가마솥들을 걸어두고 밥을 짓고 국을 끓여 그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섬세하게 살피고 배려하며 도왔습니다.

선교장은 또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충심으로 헌신했습니다. 1908년 일제가 노골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던 때, 선교장 7대 장주 이근우 선생은 인재를 양성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선교장 안에 동진학교를 세웠습니다.

동진학교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강원도 최초의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이시영 선생과 여운형 선생이 교사로 재직했었습니다. 동진학교는 영동지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다 1911년 일제에 의해 폐교됐습니다.

동진학교에는 이근우 선생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가 있었습니다. 선생은 나라를 잃고 학교가 문을 닫은 뒤에 이 태극기를 땅 속에 묻어 숨겼습니다. 해방 후에 다시 세상에 나온 이 태극기는 지금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일제에 의해 우리의 나라꽃 무궁화가 혹독한 수난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자기네 국화인 벚꽃을 많이 심도록 적극 장려했습니다. 이 때 남궁억 선생이 강원도 홍천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보급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이에 일제 경찰은 무궁화 보급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다며 선생을 감옥에 가두었고, 강원도 경찰서에선 무궁화 제거령을 내려 무궁화를 모두 없애려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제거된 무궁화가 11만 그루나 되었다고 합니다.

선교장에선 나라꽃 무궁화를 보존하기 위해 외인이 출입할 수 없는 사당에 무궁화를 숨겨 보호했습니다.

이근우 선생은 또,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기 위해 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어 겉으로는 일제에 협력하는 척 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에 많은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동

진학교 교사였던 여운형 선생 이시영 선생 등을 통해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이에 감사하며 그 보답으로 `천군태연` `천하위공` 두 점의 친필 휘호를 써서 기증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휘호는 두 점 모두 도난 당했었는데 천군태연 휘호는 경매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다행히 선교장으로 돌아왔으나 천하위공 휘호는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앞의 16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교장은 경포호에 서린 재화의 기운 덕에 막대한 부를 일궈 영동 제일의 대부호가 되었습니다. 또, 그 덕에 많은 선행과 덕행으로 뭇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경포호는 세월이 흐르면서 경포천과 위촌천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가 쌓이고 쌓여 조금씩 옛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토사로 인해 호수가 메꿔지고, 호수가 있던 자리는 차츰 농지로 바뀌었습니다. 선교장에서 바라다 보이던 호수의 모습도 사라지고, 그곳은 농경지와 냇물과 저류지가 되었습니다.

경포호가 사라지고, 경포호로부터 받은 기운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선교장의 가세 또한 서서히 위축되었습니다. 예전의 그 창성했던 경제력은 이제 미약해져서 예전처럼 큰 재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나라를 도울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또 옛날과 같이 큰 경제력으로 명성을 떨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장의 아름다운 정신과 덕행은 오래 오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귀감이 되리라 봅니다.

지금 선교장은 명승지가 많은 영동지방에서 손꼽히는 명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선교장에서 사방 십리도 안 되는 곳에 오죽헌, 경포대, 허균 허난설헌 남매의 생가, 경포호, 경포 해수욕장 등 여러 명소가 있습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강릉의 명소들을 찾아왔다가 선교장을 방문합니다. 그 방문객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교장 사람들의 특별한 미담을 가슴에 담고, 또 선교장에 감도는 아름다운 정기를 받아 안고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고 평화로워지는 데 크게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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