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매매값과 전세값이 모두 급락한 가운데 금리와 경기흐름을 지켜보면 집값의 추세적 반등을 여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어느덧 윤석열 정부 취임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부동산 시장은 매매값과 전세값 모두 급락을 면치 못했다. 부동산 시장이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만큼 단기간에 급락한 건 무엇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드라이브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 집값은 8년간의 대세상승을 거치면서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급등한 탓도 컸다.
올 1월 이후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부동산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시장의 낙폭이 줄고 거래가 다소 늘었지만 부동산 가격을 결정짓는 금리, 경기 등의 지표들이 시장에 비우호적일 가능성이 높아 추세적 반등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단기간에 급격히 내려앉은 부동산 시장
7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첫째 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1년 새 12.50%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10.94% 하락했고 경기와 인천도 각각 16.47%, 17.04% 떨어지면서 수도권은 14.83% 하락했다. 비수도권도 10.22% 하락했다.
실거래가 하락 폭은 더 심각하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연간 22.43% 하락했는데 이는 2006년 실거래가 지수 조사가 시작된 이래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인 2008년(-10.21%)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 낙폭이다.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도 작년 5월부터 하락 전환해 지난해 17.24% 떨어지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철저히 실거래로 구성된 전셋값도 낙폭이 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주택 전셋값은 지난해 전국이 5.56%, 서울이 6.55% 각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04년(-5.84%, -7.80%) 이후 1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거래심리도 빙하기에 접어든지 오래다. 서울 아파트 매수심리는 2021년 11월 둘째 주 100.9를 마지막으로 올해 5월 첫째 주까지 1년6개월간 기준선인 10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미분양 대책에 힘입어 미분양 물량 증가세가 주춤하지만 분양시장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낙폭이 줄고 거래가 다소 증가한 시장
물론 윤 정부가 올해 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대대적으로 규제를 완화한 이후 거래량과 집값이 다소 반등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올해 1월 첫째 주 71.5였으나 5월 첫째 주에는 81.1로 상승했고,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도 같은 기간 64.1에서 76.2로 상승했으니 말이다.
집값 낙폭도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값은 1·3 대책 이전인 작년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주 낙폭이 0.76%였으나, 대책 발표 이후 낙폭이 차츰 줄어 5월 첫째 주에는 0.09% 떨어지며 하락 폭을 많이 축소했다.
거래량도 최악의 국면은 지나간 듯 보인다.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1천 건대를 하회(이는 2006년 실거래가 통계작성 이후 최초다)하던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올 1월 1418건, 2월 2456건, 3월 2980건, 4월 2310건(4월 거래량은 5월 말일이 되어야 정확히 알 수 있다)으로 서서히 증가 중이다. 물론 평상시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월 5천건을 상회하는만큼 본격적인 거래량 회복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일 것이다.
금리와 경기라는 거대한 벽이 시장의 추세적 상승을 허용하지 않을 것
벌써부터 시장에선 낙폭 축소와 거래량 증가를 근거로 반등을 기대하거나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하지만 거시경제지표들을 들여다보면 이런 기대와 전망이 매우 경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부동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금리, 대출, 경기다.
먼저 금리를 살펴보자. 미 연준이 이번 연방공기시장위원회(FOMC)를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 않을 것은 물론 연내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하는 관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해 안에 내리기 어려운 데이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4월28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3월) PCE(개인소비지출)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직전달인 2월 당시 상승률(5.1%)보다 하락한 것이다.
직전 월과 비교한 PCE지수는 0.1% 상승했는데 이 역시 전월 수준(0.3%)을 하회했다. 문제는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PCE가격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4.6% 상승하면서 월가 전망치(4.5%)를 상회했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근원PCE가격지수가 2021년 2월 이후 처음으로 헤드라인(전체) 지수 상승률을 추월했다는 사실이다. 근원PCE지수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2%)를 언급할 때 참고하는 물가지수다.
연준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고용시장도 여전히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5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비농업 신규 고용은 25만3천 개 증가하여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개)를 대거 상회했다. 직전 월인 올해 3월 당시 16만5천 개보다 증가 폭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실업률은 3.4%로 전월(3.5%)보다 낮아져 시장 예상치(3.6%) 역시 하회했다. 3.4%는 지난 1969년 이후 54년 만에 역사적 최저치에 해당한다.
참으로 놀라운 건 임금 상승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 대비 0.5% 늘면서 예상치(0.3%)를 훌쩍 상회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4.4% 증가한 것이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드라이브와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의 예상치 못한 연쇄 파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노동시장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견고하기만 하다. 고용지표가 이처럼 강력하게 나오자 연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해 미국의 국채금리는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근원PCE지수가 헤드라인 지수를 상회했다는 건 연준의 유례를 찾기 힘든 기준금리 인상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매우 끈적끈적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인플레이션의 근간은 서비스물가이며 서비스물가의 중핵은 고용이기 때문에 근원PCE지수가 연준의 목표치인 2%언저리로 내려오기 위해선 고용이 부러지면서 서비스물가가 급락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고용시장은 양과 질 모두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견조한 상태가 지속 중이다. 근원PCE지수와 고용이 이처럼 견조한 흐름을 이어간다면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하기가 쉽지 않고 이미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1.75%p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기도 여의치 않다.
기준금리가 내려가지 않는 한 시장금리의 만족할만한 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 윤 정부가 대출을 최대한 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출한도가 늘어나는 건 금리가 낮을 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더 무서운 복병은 경기다. 장래 경기전망이 시시각각 비관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4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5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호언했던 경기 '상저하고'(상반기에는 경기가 나쁘지만 하반기에는 호전될 것이란 전망)가 극히 불투명해지고 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작년 10월 보합을 기록한 후 5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전망도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으로 주요 IB 여덟 곳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1%를 기록했다. 씨티는 성장률이 1%에도 못 미치는 0.7%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심지어 노무라는 역성장(-0.4%)을 전망하기도 했다. 게다가 글로벌 리세션의 도래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은 작은 파도에 이목을 집중시킬 때가 아니라 파도를 만드는 바람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여기서 바람은 금리와 경기를 의미한다. 금리와 경기라는 바람이 잠잠한데 어떻게 부동산 시장이라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칠 수 있겠는가?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