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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신격호, 두 거인의 '일그러진' 초상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6-07-22 14: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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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거머쥔 영화다.

미국 3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보스톤글로브’의 탐사보도팀이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다뤘다. 2002년 실제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건희 신격호, 두 거인의 '일그러진' 초상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If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it takes a village to abuse them(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지만, 한 아이를 학대하는데도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책 제목을 패러디한 대사다.

아동성추행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좀 더 확대해석하자면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나 범죄행위도 사안에 따라 결코 사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에 직접 가담하거나 공모하지 않았더라도, 방조하는 것만으로도 공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행위의 주체가 막강한 권력이나 영향력을 가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영화에서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성추행도 개인적 욕망과 성적 취향에서 비롯된 지극히 사적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권력과 조직이 동원된다. 거짓말과 돈이 오가는 것은 물론이다. 은밀한 사생활이 공적 범죄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파문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삼성그룹은 이번 파문과 관련해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데 대해 당혹스럽다”면서도 “이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2년이 넘게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이번 사안에 대해 이 회장의 해명을 들을 길도 없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밝힌대로 이번 사안이 이 회장의 사생활이기만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회장은 국내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회장의 성적 취향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특히 남성들의 ‘허리 아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유독 관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도된대로 한 번에 500만 원씩을 주고 여자를 사고 유사성행위를 시도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 회장이 ‘사적’ 즐거움을 위해 ‘공적’ 회사를 동원했다면 이 또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일이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22일 "촬영장소 중 한 곳인 고급빌라는 삼성SDS 김인 고문 명의로 돼 있었다"며 "만약 불법 성매매 의혹이 사실이고 이 과정에 비서실 등의 삼성조직이 동원됐다면 이건희 회장은 물론이고 삼성그룹 역시 법적이고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올해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112위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는 포천이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2년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회장과 삼성전자가 국내외에서 보여주는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위상과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이건희 신격호, 두 거인의 '일그러진' 초상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국가대표’로 키워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거인임에 틀림없다.

삼성전자에 혁신의 DNA를 심었고 이는 현재 반도체와 스마트폰이란 과실로 풍성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 경영자로서 ‘이건희’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동영상 파문은 이건희 신화에 가려진 민낯을 내보인 듯하다. ‘과(허물)’가 ‘공’을 가리지는 못할지라도 국내외에서 이미지 추락은 불가피해보인다.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에서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 실망감을 크게 안겼다. 신 총괄회장은 치매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자금 조성의혹 등 여러 의혹들에 대해 아무런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 역시 맨 주먹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재계 5위이자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아시아권에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롯데신화의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경제성장기 신화를 써낸 두 거인의 추락을 바라보면 씁쓸함이 크다.

영웅은 영웅이되, ‘일그러진’ 영웅들이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한들 결국 결핍과 욕망으로 나약하고 불행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음을 확인하는 보통사람들은 씁쓸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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