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3사가 미국 현지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안마당으로 삼기 위해서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거대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K배터리 3사를 압도하고 있다. K배터리 3사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세계 1위 중국 CATL 한 업체에 미치지 못한다.  
 
[데스크리포트 4월] K배터리, 미국 시장 '안마당' 삼기까지 3가지 변수

▲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3사가 중국 CATL을 따돌리고 미국 배터리 시장을 안마당으로 삼기까지는 크게 3가지 변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CATL은 올해 들어 중국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도 선두 LG에너지솔루션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K배터리 3사로서는 가파르게 성장하는 미국 시장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삼을 수 있어야 글로벌 배터리 패권전쟁에서 중국과 맞설 수 있다. 

다만 K배터리 3사가 미국 시장을 주도해 나가기까지는 원활한 현지 투자 확대 외에도 크게 3가지 변수가 더 있다. 

첫째, 배터리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의 조달처를 중국 이외 지역으로 바꿔내는 일이다. 이른바 '배터리 광물 공급망의 탈중국'을 해내야 한다. 

시간이 많지도 않다. 미국 정부가 현지 시각 3월31일 발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부 지침은 K배터리 3사에 2025년까지 배터리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만만치 않은 숙제를 안겼다.

IRA에서는 북미산 부품을 50%(2029년부터 100%) 이상 쓰는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구매자에 3750달러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또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가공한 광물을 40%(2027년부터 80%) 이상 사용한 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 구매자는 3750달러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합쳐 총 7500달러의 보조금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는 미국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이번에 발표된 IRA 세부 지침에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모두 한국에게 유리하게 정해졌다. 

한국 배터리 생태계는 양극재와 음극재에 들어가는 물질은 국내에서 가공하고 양극·음극재 판 같은 배터리 부품은 미국에서 만든다.

IRA 세부 지침에 따르면 양극재와 음극재에 들어가는 물질들이 부품이 아닌 광물로 분류됐다. 또 핵심 광물의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한 재료를 한국에서 가공해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현재 배터리 공급망 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K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미국에서 조립되면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하지만 IRA 세부 지침은 보조금을 받으려면 핵심 광물을 2025년부터 '외국 우려 단체'에서 조달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미국 정부는 외국 우려 단체 목록을 추후 공개하기로 했는데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은 중국산 광물을 한국에서 가공해 쓸 수 있지만 2025년부터는 이런 구조를 완전히 없애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배터리산업의 중국산 광물 의존도는 매우 높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이차전지 핵심 광물 8대 품목의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국 광물 수입 비중은 2020년 기준 60%에 육박했다. 일부 품목의 경우는 80~90% 안팎인 경우도 있다. 중국산 광물이 없으면 한국 배터리를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주요 배터리업체뿐 아니라 LG화학,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그룹 등 소재 업체들이 중국 이외 지역으로 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호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얼마나 원활하고 충분하게 광물을 들여올 수 있냐 여부는 K배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K배터리 3사가 미국 시장을 주도하는데 있어 두 번째 변수는 중국 업체들의 미국 시장 침투 속도다. 이번 IRA 세부 지침에서는 중국 CATL과 미국 포드, 테슬라 사이에 이뤄지는 기술 제휴에 관해 구체적 규제를 담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단단히 하기 위해 배터리 공장 지분을 자국 기업들이 소유하면서 기술만 CATL이 제공해 IRA를 우회하려는 꼼수까지는 바로 틀어막지는 않은 것이다.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에서 미국 내 공급망을 다져 자국민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게 IRA의 주된 목적이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 기업만 도와주리라 생각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의회의 반발에도 미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 공급망 내재화를 위해 어느 정도는 CATL의 우회 침투를 용인해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중국 견제라는 IRA의 주요 목적을 부각해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리 외교가 중요하다.

K배터리가 미국을 안마당으로 삼기까지 세 번째 변수는 바로 일본의 움직임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과 새로 핵심 광물 협정을 맺은 나라도 IRA 상 FTA 국가로 규정했다. 

일본이나 유럽연합(EU)에도 FTA 체결국인 한국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특히 일본의 파나소닉은 북미 배터리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현지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 있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이에 맞서 K배터리 3사는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생산능력을 늘려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미국에서 277GWh(기가와트시)를 넘는 생산기지를 갖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같은 해 글로벌 생산능력 목표 580GWh의 절반가량에 해당한다.

SK온은 2025년까지 글로벌 생산목표의 70%에 해당하는 151GWh를 미국에서 생산할 예정이며 삼성SDI는 최대 70GWh까지 생산능력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파나소닉 역시 미국 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테슬라의 주요 파트너로 현지 배터리 생산능력(연간 39GWh)이 만만치 않다. 또 2028년까지 미국 내 생산 능력을 3~4배 늘릴 계획도 갖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도 이번 IRA 세부지침에 따라 생산세액공제(AMPC)에서 한국과 동등한 조건을 가지게 된 만큼 LG에너지솔루션 등 K배터리 3사와 미국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IRA에 따른 광물과 부품 조건만 만족하면 파나소닉도 생산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K배터리 3사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적 투자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미국 정부는 조만간 생산세액공제와 관련한 구체적 조건도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 배터리 시장 상황과 발표된 IRA 세부조건을 종합하면 대략 2025년부터는 배터리 패권전쟁 판도에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남은 2년은 K배터리 산업뿐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에도 중요한 시간이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