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가 전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온실가스 흡수원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추세는 기후변화와 함께 더 강화될 전망이라 빠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29일 비즈니스포스트 분석에 따르면,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기본계획) 중 ‘흡수원’ 부문은 2018년 4130만 톤에서 2030년 2670만 톤으로 1460만 톤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율은 35.4%에 이르렀다.
흡수원은 산림과 염습지, 잘피림 등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토지 이용 및 임업(Land Use, Land Use Change and Forestry)’을 뜻한다.
흡수원의 감소는 2018년에서 2023년 사이 급격히 일어났다. 2023년 흡수원의 온실가스 흡수량은 3350만 톤으로 2018년 대비 18.9% 급감했다.
흡수량은 2025년까지 2890만 톤으로 꾸준히 감소하다가 2026년 일시적으로 3040만 톤으로 증가한 후 다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수원이 줄어들면 다른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늘어난다. 실제로 흡수원 외 다른 부문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산업 11.4%, 폐기물 46.8% 등 두자릿 수로 줄이기로 했다. 21일 발표된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이를 통해 국가 온실가스를 총 40%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취재 결과,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림의 고령화와 동해안 산불의 여파다.
국내 흡수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림은 65% 이상이 31~50살 수령에 들어면서 온실가스 흡수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전쟁 후 황폐화된 산림을 1970~1980년 대에 집중 조성한 탓이다.
산림과학원의 김영환 연구관(임학 박사)은 "많은 산림이 특정 연령대에 집중 되다 보니 한꺼번에 흡수량이 떨어지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활엽수와 침엽수들은 평균적으로 20살에 탄소 흡수량이 헥타르(ha) 당 11.5 이산화탄소(CO2)톤으로 정점을 찍는다. 60세부터는 흡수량이 5.6CO
2톤으로 전성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대형 산불의 영향도 받았다. 특히 2022년 3월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2025년까지 3년 동안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울진, 삼척 등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2만500여ha의 산림을 훼손했다. 그 영향으로 지난해 산불 피해 면적은 약 2만4795ha를 기록했다. 최근 10년간 평균(3559ha)의 7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김 연구관은 "산림의 흡수량 통계는 국제 기준에 따라 3년 평균값을 사용하는데, 2022년 산불 발생으로 피해지의 탄소 저장량이 줄어들어 2023년 흡수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2025년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와 탄녹위는 나이 많은 나무를 솎아내고, 신규조림을 해서 탄소 흡수량의 감소를 상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수확한 목재를 건축용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개발해 탄소 저장 기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목재를 태우면 보유 탄소가 배출되지만 오래 사용하면 탄소 저장소가 된다.
그러나 나무 솎아내기나 목재수확에는 제한이 있다. 노령수가 산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노령의 큰 나무들은 새홀리기 등 맹금류의 주요 서식지다. 또,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물을 끌어올리면서 주변의 흙을 촉촉하게 만들어 어리고 작은 나무들이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게 돕는다.
이에 정부는 바다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블루카본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는 잘피 등 바다숲을 확대 조성하고, 염생식물 군락지 등 연안습지를 복원할 방침을 세웠다.
한국에선 이미 35제곱킬로미터(㎢) 즉 3500ha의 염습지, 1900ha의 잘피림이 흡수원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다. 다만, 인정 받는 연간 흡수량은 1만1000톤이다. 소나무숲 1134ha에 해당하는 양이다.
정부는 갯벌 염생식물 군락을 2030년까지 105㎢ 복원하고, 바다숲도 540㎢를 조성해 해양 흡수원을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다른 유망 후보는 갯벌 그 중에서도 식물이 살지 않는 '비식생 갯벌'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표적 탄소 흡수원인 ‘비식생 갯벌’이 IPCC 등 국제 사회에서 블루카본으로 인정 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는 염습지 외에 2447㎢ 즉 24만4799 면적의 비식생 갯벌이 있다. 학계에 따르면 국내 갯벌은 연간 2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비식생 갯벌이 블루카본으로 인정 받으면 해양 흡수원이 현재의 23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갯벌 등 신규 블루카본 후보군에 대한 탄소흡수력을 규명하고 이것을 신규 블루카본으로 인정 받기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함께 2026년까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관련 지침 개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 2022년 3월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2025년까지 3년 동안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의 연도별 감축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3월2일 강원 동해시 일원의 피해 산림을 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 산불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과 조양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가 14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한국 해수면 높이는 2050년 25㎝, 2100년 82㎝까지 상승할 수 있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염습지와 갯벌 면적이 줄어든다.
대형 산불이 늘면 피해지역은 탄소 흡수원이 아니라 탄소 배출원이 된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가뭄이 길어지면서 산불은 발생건수, 피해면적 모두 증가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산불 발생 건수는 27일 기준으로 343건에 이르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307건보다 증가한 건수다. 최근 10년 동안 평균(225건)보다는 53%가량 증가했다.
결국 산림과 갯벌 등 흡수원 감소가 기후변화 속도를 높이고 기후변화는 다시 산불과 해수면 상승으로 흡수원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의 초입에 들어선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외 다른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흡수원의 추가 확대가 어려워지자 국제사회와 정부는 온실가스 제거 등 기술적 측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IPCC는 지난 20일 발표한 6차 종합보고서에서 감축하기 어려운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제거(CDR) 기술과 탄소 포집·저장 기술(CCS)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