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서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가 승기를 잡은 모양새다. 하지만 승자의 저주 우려를 완전히 떨칠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
[비즈니스포스트]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앞으로 최대 10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사업자의 윤곽이 나오자 어김없이 '승자의 저주'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과거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낙찰받았지만 이익을 내지 못해 사업권을 반납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입찰 결과에 대한 판단도 미뤄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입찰에서 승기를 잡은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모두 이익을 낼 수 있는 선에서 입찰 가격을 제시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일 면세점업계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면세점 사업자 후보군이 각 권역별로 2~3곳으로 좁혀지면서 앞으로 면세업계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제2여객터미널에 위치한 면세점을 운영할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2월 말 진행한 입찰의 1차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가 매우 선전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두 회사는 향수·화장품, 주류·담배를 취급하는 DF1, DF2 구역뿐만 아니라 패션과 액세서리, 부티크를 취급하는 DF3, DF4 구역, 부티크만 다루는 DF5 구역에서 모두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이 DF5 구역의 후보군에 포함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두 기업의 경쟁 체제나 다름없다.
애초 자금력을 앞세워 공격적 입찰에 나설 것으로 여겨졌던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이 탈락한 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국내 1위 면세점기업인 롯데면세점마저 입찰에서 모두 탈락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당장 롯데면세점이 사업권 획득 기회를 놓치면서 앞으로 신라면세점이 면세점업계 1위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번 입찰이 면세점 운영권을 최대 10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롯데면세점이 앞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쉽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은 DF1과 DF2 구역을 1그룹으로, DF3~5를 2그룹으로 묶어 그룹 내 중복 낙찰을 금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는 DF1과 DF2 구역, DF3과 DF4 구역에서 각각 1개 구역을 따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중복 낙찰 금지 규정에 따라 DF5 구역은 자동으로 현대백화점면세점이 가져갈 것이 확실시된다.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호텔롯데는 호텔신라, 신세계디에프와 달리 보수적 전략을 취해 경쟁에서 탈락했다"며 "공항점이 면세점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입찰 결과에 따라 면세점업계의 순위가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각 회사의 외형을 키운다는 점과 별개로 이번 입찰 결과가 각 기업에게 정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면세점 입찰은 항상 '쩐의 전쟁'으로 불린다. 누가 얼마만큼 높은 임대료를 써내느냐에 따라 사업자가 결정된다는 의미인데 후폭풍에 휩싸였던 회사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롯데면세점이다.
롯데면세점은 2015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의 4개 구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특허를 낙찰받았다. 하지만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이 가운데 3개 구역의 사업권을 2018년 2월에 반납했다.
당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면세점 임대료를 30% 가까이 인하해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약금 3천억 원을 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정도다.
시내면세점에서는 승자의 저주가 유독 많이 반복됐다.
한화갤러리아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면세사업을 낙점하고 2015년 12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갤러리아면세점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당시 시내면세점 진출 기업이 우후죽순 늘어난 탓에 적자가 지속됐고 결국 2019년 4월 이사회 결의를 통해 면세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두산그룹 역시 2016년 5월 서울에 두타면세점을 열며 면세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면세점업계 경쟁이 치열해지자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두산도 2019년 10월 시내면세점 운영을 중단했다.
이렇듯 승자의 저주가 끊이지 않았던 면세점업계의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승기를 잡았다거나 사업 기회를 놓쳤다고 각 회사를 평가하는 것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입찰에 너무 보수적으로 참여해 기회를 잃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회사 판단에 이익을 낼 수 있는 규모로 입찰금액을 적어서 제출했다"며 "무리하게 베팅해 적자가 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고 한 입장에서 보면 다른 회사들의 입찰이 과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이런 시각에 단호하게 아니라는 뜻을 보였다.
신세계디에프 관계자는 "이번 입찰에 참여하면서 중국에 사업권을 뺏기면 안 된다, 적자가 나서는 안 된다, 하나라도 성공하자는 3가지 목표에 주안점을 뒀다"며 "내부적으로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참여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세계면세점은 2018년부터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에서 모두 면세점을 운영하는 유일한 회사였다"며 "여행객들의 트렌드나 물품 구입과 관련한 데이터를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만큼 최적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입찰가격을 적었다"고 덧붙였다.
신라면세점 역시 승자의 저주를 우려할 때가 아니라는 태도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입찰을 담당한 태스크포스에서 적정 가격으로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에 입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할 때 결코 임대료가 높은 수준이 아닌 만큼 공항면세점이 정상화하면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