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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진경준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야권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고 있다.
우 수석은 이명박 정부 당시 검사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우 수석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부담으로 검찰에서 나왔지만 청와대에 입성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 우병우, 권력의 핵심으로 재조명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국회에서 “우병우 수석은 권력의 정점에서 인사와 사정, 모든 권력을 전횡했고 비서실장까지 무력화한 장본인”이라며 “권력 곳곳에 있는 우 수석 사단의 횡포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우병우 수석과 진경준 검사장 의혹으로 무너진 공직기강과 함께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전면개각을 빠른 시일 내에 실시해야 한다”며 “정부와 권력기관 도처에 있는 우병우 사단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수석은 처가가 1300억 원대 부동산을 넥슨에 매도하는 과정에서 진경준 검사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 수석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 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꼽힌다.
우 수석의 위상은 지난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보좌진들과 함께 한 ‘티타임’ 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우 수석은 사진에서 사법고시 기수가 18기수나 위인 이명재 민정특보를 제치고 박 대통령 옆에 서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양복 재킷 앞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검찰인사에서도 우 수석의 힘이 드러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 수석과 서울법대 동기로 친한 것으로 알려진 최윤수 전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는 올해 2월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됐다.
우 수석이 데리고 있었던 권정훈 대통령민정비서관은 지난해 12월 검찰인사에서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됐다. 법무부 인권국장은 차기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요직이다. 우 수석의 또 다른 측근인 이영상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검찰의 수사첩보를 총괄하는 대검찰청 범죄정보1담당관을 맡았다.
지난해 검찰인사에서도 우 수석과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이 대거 요직을 차지하면서 ‘우병우 사단’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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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월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수석비서관 및 특보단과 티타임을 가졌다. 박 대통령 옆에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위치와 자세는 논란을 일으켰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잘나가던 검사에서 삐끗
우 수석은 경북 봉화출신으로 교사였던 부친 우영구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우 수석은 경북 영주에서 자라 1984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87년 사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검사로서 일찍부터 출세가도를 달렸다. 우 수석은 각종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특수통’으로 이름을 떨쳤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하며 차정일 특검을 도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승환 씨를 구속했다.
그는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수사팀은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 7년을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는데 이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전환사채 헐값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를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우 수석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씨를 수사했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같은 해 8월 김옥희 씨를 구속했다.
2009년 대검 중수부 수사1과장으로서 이인규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에 엮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수사하게 됐다. 우 수석은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했고 노 전 대통령은 수사를 받은지 20여 일 이후 생을 마감했다.
그 뒤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맡는 등 요직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검사장 승진에서 두 번이나 탈락했다. 이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여론의 부담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 수석은 “23년 검사로 살아오면서 보람을 느낀 때도 많았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쳐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힘겨운 적도 많았다”며 “이제 보람은 가슴에 품고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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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3월16일 청와대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뉴시스> |
◆ ‘리틀 김기춘’으로 이름 떨쳐
우 수석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됐다. 당시 야당은 이를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을 민정비서관에 임명하는 것은 국민을 분열하는 인사”이라고 비난했다.
우 수석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호흡을 맞추며 대통령의 총애를 받게 된다.
우 수석은 정윤회씨 등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와대 내부감찰 등을 진두지휘하면서 이를 잘 수습했다.
우 수석은 2015년 1월 48세의 나이에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보직이다.
그의 초고속 승진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
우 수석은 민정비서관시절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직보했는데 이는 김 민정수석이 ‘항명사태’를 벌인 배경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많은 재산도 공직자로서 논란이 됐다.
우 수석은 지난 3월 개인재산으로 393억 6754만 원을 신고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재산이 가장 많았다.
많은 재산은 부인 덕분이다. 우 수석은 2008년 별세한 이상달 기흥컨트리클럽 및 정강중기정강건설 회장의 둘째사위다.
우 수석은 여러 정치세력으로부터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10일 우병우 민정수석과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대한민국어버이연합으로 이어지는 자금지원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백혜련 더민주 당선인은 “리틀 김기춘이라 불리는 우 수석이 대한민국 사정정보라인을 총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어버이연합 게이트는 국기문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4월26일 고발 조치된 이후로 어떤 조사도 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