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제공 조건으로 10년 동안 중국 투자 금지를 제시하면서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이 인수를 밀어붙였던 인텔 낸드플래시사업부(현 솔리다임)는 반도체업황 악화에 미국의 제재까지 직격탄을 맞으며 SK하이닉스에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SK하이닉스 중국 반도체 공장 위기, 미국 정부 지원금 정책에 진퇴양난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이 인수를 밀어붙였던 인텔 낸드플래시사업부(현 솔리다임)가 반도체업황 악화에 미국의 제재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 투자가 금지되는 만큼 지원금 신청을 놓고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내건 보조금 지급 조건에 다양한 ‘독소조항’을 넣었는데 이 가운데 SK하이닉스에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10년 동안 중국 내 시설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D램의 40%, 낸드플래시의 20%를 각각 중국 우시 공장과 다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향후 설비투자를 할 수 없다면 첨단공정으로의 전환이 막히게 된다.

중국 다롄 공장은 현재 96~144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는데 최근 200단 이상의 낸드도 양산되기 시작한 것을 고려하면 구공정이어서 향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서 1년의 유예기간을 받았지만 기간 연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2월23일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1년 유예가 끝난 뒤 조치에 대해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2021년 12월 인텔로부터 최종인수한 중국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은 SK하이닉스에 부담이 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을 90억 달러(약 11조8천억 원)에 매입했고 1차 대금으로 70억 달러를 지급했다. 잔금 20억 달러는 2025년까지 지급해야 한다.

당시 SK하이닉스 대표이사였던 이석희 전 사장은 솔리다임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밀어붙였는데 결국 무리했던 인수가 ‘독’이 된 것이다.  

인텔 낸드사업부였던 솔리다임 인수합병(M&A)은 인텔 출신이었던 이석희 전 사장이 주도했는데 SK하이닉스와 SK그룹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상황에서 보면 90억 달러라는 금액은 너무 비쌌고 인수 시기도 좋지 않았다는 평가가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인텔이 미리 대중국 정세의 변화를 감지해 중국 다롄공장이 향후 골칫거리가 될 것임을 파악한 상황에서 이를 SK하이닉스에 넘긴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인텔 낸드사업부가 2017년부터 매물로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다소 무리한 분석으로 보인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추진할 당시 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도 반대의 목소리가 꽤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석희 전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도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에 책임을 지는 형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솔리다임은 미국의 제재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현재 좋지 않은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업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2022년 4분기 2조5200억 원에 이르는 영업외 손실을 봤다. 이 가운데 솔리다음 영업권 관련 손실액만 약 9천억 원으로 추정된다.

2023년에도 낸드플래시 사업의 흑자전환은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낸드플래시 업황은 올해 4분기는 돼야 반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SK하이닉스의 낸드 사업 영업손실 규모는 6조5천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인수가 장기적으로는 낸드사업 포트폴리오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모바일용 반도체를, 솔리다임은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제살 깎아먹기 없이 솔리다임 인수를 통해 낸드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솔리다임이 낸드플래시 업황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데이터센터용 SSD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일반 낸드보다는 빠르게 실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중소형 업체가 많은 낸드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규모 측면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또 당시 상황에서는 낸드플래시 업황이 지금처럼 나쁠 것이라고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도체법의 중국 투자 제한 조항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함께 대응책을 찾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달리 아직 미국에 반도체 공장이 없는 만큼 좀 더 다양한 선택권을 두고 저울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부지 선정 등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6일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궁극적 이유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생산기지를 빠르게 구축하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도) 협상 여지가 있다”며 “미국의 보조금 지급 조건에 구체적 제안을 하긴 어렵지만 (우리 기업은 미국에) 적게 또는 느리게 투자하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