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선 기자 insun@businesspost.co.kr2023-03-10 1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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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규 BGF리테일 온라인 주류 MD는 영업직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MD라는 업무에 매력을 느껴 MD에 지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출근해서 일과 중에 남의 눈치도 보지 않고 떳떳하게 술을 마신다고? 맞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서류뭉치보다 술병이 더 많다. 회사 대표도 임원도 아닌 6년차 직장인의 책상이다. 그는 책상 위 가득한 다양한 술을 일일이 마셔보며 맛을 음미한다. 그것도 매일.
이처럼 '용감한' 젊은 직장인은 바로 BGF리테일 주류TF팀의 박형규 온라인 주류 MD다.
최근 편의점에 '위스키 열풍'이 불고 있다. 원하는 위스키를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까지 불사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각 편의점마다 다양한 주류 기획전과 주류 특화매장까지 선보이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편의점 CU 매출에서 주류, 음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카테고리 중 두 번째로 크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지난해 12월 편의점업계 처음으로 음료식품팀에서 주류TF팀을 분리했다. 주류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BGF리테일 주류TF팀은 다른 부서와 무엇이 다르고 어떤 사람이 일하고 있는지 박형규 MD에게 직접 들어봤다.
10일 BGF리테일 사옥에서 만난 박형규 MD는 인터뷰가 처음이라 긴장된다며 명함을 건넸다.
농구, 축구를 좋아하는 박 MD의 꿈은 원래 스포츠 기자였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 농구 매체에서 1년 동안 인턴기자도 경험했다.
하지만 박 MD는 결국 꿈을 접고 BGF리테일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일은 영업직 업무였다. 3년6개월 정도 경기도 오산과 동탄 지역의 매장을 열심히 관리했다고 한다.
매장 관리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품기획자인 머천다이저(MD)에 관심이 더 갔다고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유통의 꽃은 MD'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1만6천 개 정도 되는 CU 매장에 들어갈 상품을 고르는 일을 MD가 하거든요. 좋은 상품을 내놓고 그 상품이 점주들에게 선택받고 현장에서 판매되는 과정을 영업직의 시선으로 봤을 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내가 선택하는 상품들은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도 있어서 MD를 하고 싶었습니다."
2021년 드디어 꿈꾸던 MD로 발령이 났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박 MD는 음료식품팀에서 MD의 첫걸음을 떼고 지난해 주류TF팀이 분리되면서 주류TF팀에 합류했다.
현재 주류TF팀은 주류시장 히트상품인 '곰표맥주'를 개발한 이승택 팀장이 이끌고 있다.
팀장을 포함해 4명의 팀원들 모두 MZ세대로 신상품이나 차별화 상품 개발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주류TF팀은 일과 중에도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신다. 하나하나 맛을 보고 상품성 등을 판단해야 하므로 매일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기 때문에 주류TF팀으로 오고 싶어 하는 BGF리테일 사원들이 많다고 한다.
주류 MD를 맡으면서 박 MD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 박형규 MD는 와인, 양주, 맥주, 전통주 등 그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끊임없이 공부한다.
"오프라인 MD들은 와인 담당, 위스키 담당 등이 따로 있어요. 하지만 저는 온라인 MD기 때문에 와인, 양주, 맥주, 전통주 등을 전부 알아야 합니다.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서 공부를 많이 해요. 다음에는 무엇이 유행할까, 한정된 물량으로 어떤 기획을 하는 것이 좋을까 등을 고민하려면 많이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와인 자격증도 따려고 준비 중입니다. 마트, 백화점, 편의점 가리지 않고 자주 방문해서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어요."
이런 노력은 회사에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곧 결혼을 앞둔 박 MD는 신혼집에 '술 진열장'을 먼저 들여놨다. 위스키 30병, 와인 20병 정도가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술고래? 아니다. 주량은 소주 1병에 불과하다.
박 MD가 처음 접한 위스키는 '글렌피딕 12년'이다. 지금은 '글렌피딕 15년'을 제일 좋아한다. 평소에도 글렌피딕 15년을 자주 먹고, 집에 가장 많이 쟁여둔 위스키도 글렌피딕 15년이라고 한다.
'위린이(위스키+어린이)'들에게 주류 MD로서 추천해줄만한 위스키가 있는지 물었다.
"지인들에게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저는 글렌그란트 아보랄리스를 추천합니다. 가성비도 좋고 스트레이트, 하이볼 어떤 것으로 즐기든 맛있어요. 위스키가 익숙하신 분들께는 글렌피딕 15년이나 발베니를 추천합니다."
박 MD의 입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 이름만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증류소에 따라 개성이 너무 뚜렷해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MD는 판매 데이터를 보면 싱글 몰트 위스키 매출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박 MD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싱글 몰트 위스키가 또 있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만든 국내 1호 싱글 몰트 위스키 '기원'이다. 기원은 CU에서 올해 제일 많이 팔린 위스키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 단일 상품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 박형규 MD는 국내 1호 싱글 몰트 위스키 '기원'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인연을 맺기 위해 공을 들였다. <비즈니스포스트>
박 MD에게 기원이 특별한 이유는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를 생산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인연을 맺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3월8일 쓰리소사이어티스와 함께 유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위스키 마스터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마스터블렌더는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어떤 식으로 증류했고, 어떤 오크통에, 어느 정도 숙성시켰는지를 마스터블렌더가 클래스에서 하나하나 설명했다. BGF리테일은 온라인 CU에서 기원을 구매했던 고객을 대상으로 클래스 참가 신청을 50명을 선착순으로 받았는데 47초 만에 마감이 됐다. 박 MD는 이런 기획을 성공시켰을 때 자부심을 느끼고 일이 재미있다며 웃었다.
박 MD는 기획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통관자료를 많이 본다. 어디서 무엇을 수입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어떤 행사를 기획해야 할지를 준비한다.
최근에는 전통주 콘텐츠 플랫폼 '대동여주도'와 손잡고 전통주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전통주가 인기가 많아요. 하지만 법적 규제 문제가 있어요. 지역에서 생산하는 원료로 만든 술은 지역 특산주로 분류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박 MD는 성수동과 김포의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전통주에 눈길이 갔다. 그 지역 특산물로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지역 특산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운의 술이다.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도 없는 신세다.
"그런 소규모 양조장에 알짜 상품들이 많기 때문에 시장에 나왔을 때 판매가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했어요. 물론 판로를 개척해 주자는 의미도 있었고요. 점포에 들어간 지 36시간 정도 지났을 때 벌써 전체 물량의 40% 정도가 팔렸습니다."
마지막으로 BGF리테일 주류 MD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당장의 목표는 온라인 주류 매출이 잘 나오는 거에요. 다행히 온라인 역대 최대매출을 매달 경신하는 중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들에게 CU가 제일 좋은 가격에 좋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겁니다. 술은 역시 CU에서 사야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제가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야죠."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