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공개매수 러시, 국내증시 밸류에이션 개선 시험대

▲ 행동주의 펀드의 공개매수 러시가 연초부터 뜨겁다. 우리나라 주가의 저평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비즈니스포스트]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의 공개매수 요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라는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주의 활동이 확산되면서 한국 증시 저평가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공개매수 요구 자체로 주가가 상승하면서 단순 시세차익을 좇는 것으로 의심되는 변질된 모습들이 행동주의 활동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행동주의 활동은 2021년 보다 36% 증가했다. 우리나라 행동주의 활동은 같은 기간 2배가 넘는 74%나 늘었다.

주식에서 행동주의 활동이란 단순한 시세차익을 넘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경영 관행이나 전략을 바꾸려는 행위를 뜻한다. 주로 배당정책 등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한다. 

우리나라 행동주의 활동은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주로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거나 주가를 끌어 올린다.

한샘의 최대주주인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지난 2일 한샘 보통주 182만8182주를 주당 5만5천 원에 공개매수한다고 밝혔다. 이에 4만 원대를 오가던 한샘 주가는 곧바로 19.73%(8850원) 오른 5만37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앞선 2월27일에는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유니슨캐피탈코리아 컨소시엄이 오스템임플란트 주식 공개매수에 성공하며 88.7%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같은 행동주의펀드 활동의 증가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가져다줄 긍정적인 면이 몇 가지 존재한다.

우선 주가를 끌어 올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7월29일 미국 사회과학 연구 네트워크(SSRN)에 올라온 보고서를 보면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2465건의 행동주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14개월 동안 해당 기업 주가는 업종 평균보다 2.5% 높았다.

최근 화제가 됐던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얼라인파트너스의 행동주의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두 회사가 1월20일 공개한 12개 합의사항엔 앞으로 3년 동안 에스엠 이사회가 별도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하며 3월 주주총회에서부터 현금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에스엠 주가는 1월20일부터 3월2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54.03% 급등했다.

행동주의펀드가 확대되며 다른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제로 행동주의펀드와 관련된 대부분의 종목이 코스피 대비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주주환원정책 확대를 이끌어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 저평가) 해소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을 배당성향 등 주주환원 43%, 수익성·성장성 36%,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 14% 순으로 분석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내 은행의 평균 주가순자산배율(PBR)이 0.31배로 해외 은행 평균 1.28배보다 낮다며 이는 낮은 주주환원 때문이라고 지적해왔다.

이에 국내 은행들이 주주환원정책을 확대하자 외국인들은 올해 초부터 코스피에서 8조원 이상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최효정 KB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펀드의 활성화는 기업들에게 주주환원정책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면서 한국증시의 저평가 요인인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본래 취지를 잃고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우선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보호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으나 정작 소액주주를 차별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MBK파트너스와 유니슨캐피탈코리아 컨소시엄은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 과정에서 최규옥 회장이 보유한 자회사에 대해 추가 금액을 지불했다.

또한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보호라는 명분 아래 경영권 분쟁을 조장해 단기 차익을 챙기려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과거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국내 기업 지분을 차지한 채 단기 고수익만 실현하고 빠지는 '먹튀' 사례가 많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우리나라 제도환경은 주요국들과 달리 행동주의 활동이 단기 차익 실현을 추구하는 것을 제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요구가 너무 무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지주의 2대 주주로서 결산배당금을 주당 900원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JB금융지주 측은 이는 오히려 회사의 성장을 저해할 거라며 715원을 적정선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 JB금융지주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제시한 주주환원율 35%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행동주의 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2월27일 남앙유업에게 자사주를 주당 82만 원에 공개매수하라고 압박했다. 2월27일 종가 57만6천원보다 42% 높은 수준으로 업계에서는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주주보호라는 방패에 숨어 횡포를 부리는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