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지원법 시행과 관련해 정부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기업들이 초과 이익을 반납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대만 TSMC가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TSMC가 정부 보조금을 포기하고 40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속도를 대폭 조절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만 경제일보는 2일 “반도체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투자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다”며 “바이든 정부에서 제시한 이익 공유 조건으로 많은 기업들이 ‘속 쓰린’ 상태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상무부는 현지시각으로 2월28일 반도체 지원법 시행안의 세부 조건을 발표하며 정부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들이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원금을 받은 뒤 5년 동안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거나 공장 근로자를 위한 육아 지원 등 복지 혜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건은 반도체기업들이 사전에 매출 전망 등 사업 계획서를 상세히 제출하고 초과 이익이 발생했을 때는 이를 미국 정부와 일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일보는 반도체기업들이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TSMC도 보조금 신청 여부를 두고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정부 지원금을 노리는 일은 미국 이외 국가에 있는 주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TSMC는 미국에 상당한 규모의 반도체 시설 투자를 계획하고 있던 만큼 정부 보조금에도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는 미국 공장 투자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까지 늘린다는 발표도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보다 앞으로 초과이익 공유 조건을 통해 지불하게 될 비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지원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대만보다 훨씬 높은 데다 기술이나 인력 유출 등 위험성도 고려한다면 투자를 벌여야 할 이유도 그만큼 낮아진다.
결국 TSMC가 상무부의 이번 발표를 계기로 미국 공장에 들이는 투자 비용을 다시 축소하거나 공장 건설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제일보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은 매우 혼란스럽다”며 “반도체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는 삼성전자도 TSMC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다. 미국 공장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점은 경제적 이해관계 측면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이 중국 등 국가에 반도체 시설 투자를 벌이기 어려워지는 조항이 포함되는 점도 부정적 요소로 꼽혔다.
경제일보는 “TSMC와 삼성전자 등 미국과 중국에 모두 반도체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특히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공장의 공정 개선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기 어려워져 딜레마에 놓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