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이민자센터 지인들과 겨울 산책 모임을 하고 있다. <캐나다홍작가> |
[비즈니스포스트] 남들과 다른 길을 꿋꿋하게 혼자 걸어가는 것도 멋지다. 그러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독려할 수 있다면 그 길이 더 즐거워진다. 비슷한 이들과의 연대가 힘이 되는 이유이다.
생각이나 취향의 차이 중에서 특히 경제관이 다르면 갈등을 빚을 확률이 높다. 직장에서 정년은퇴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친구와 매일이 휴가인 조기은퇴자가 허심탄회하게 사는 얘기를 나누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소비를 즐기는 이와 절약을 추구하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조기 퇴직함)이 만나면 서로 중간 접점을 찾아 소비하더라도 둘 다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상대방 때문에 소비를 줄인 친구는 이런 만남이 덜 신날 것이고 소비를 늘린 쪽에서는 여전히 낭비이니 서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간극을 극복하며 만날 대단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경제관 차이가 큰 관계는 결국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쉬고 놀러 다니지 말고 일에만 집중하라는 한국 사회에서 시간부자 조기은퇴자가 되는 것, 이 상품 저 상품을 사서 당신을 증명하라고 권해대는 물질주의 세상에서 소박하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 아직 드문 일이다.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운 좋게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더라도 꼭 외로운 파이어족이 될 필요는 없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시대 덕에 다행히 취향 비슷한 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파이어족을 추구하는 인터넷 카페도 여럿 있고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필자도 조기은퇴 후 살기 좋은 소도시로 이주해 문화센터와 이민자센터 등을 통해 새로 만난 지인들과 꽤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번잡하고 피곤한 서울을 떠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제주도로 내려온 비슷한 취향의 이들을, 각자 나라에 문제점을 느끼고 캐나다 동부 소박한 관광지 마을을 찾아 이민온 지향점 비슷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기 성향에 맞춰 어느 나라, 어느 동네가 좋은지를 조사하고 찾아내서 이주한 이들이 모인 지역이다 보니 아무래도 은퇴 전 서울에 살았을 때보다는 비슷한 이들, 성격 맞는 친구들을 만나기 수월했다.
제주도와 캐나다 바닷가의 소박한 관광지 소도시는 은퇴자나 워라벨 추구자들이 많이 이주하는 곳답게 문화센터와 이민자센터의 무료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 외지에서 이사오고 이민온 이들이 많다 보니 잘 맞는 새 친구를 찾고 싶어하는 열정도 느껴진다.
만일 내가 폐쇄적인 산업단지 마을이나 농촌으로 귀촌하는 식이었다면 지금만큼 만족하며 비슷한 이들과 연대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파이어 운동의 가치를 이해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환경을 생각하고 내 건강을 생각해서 덜 사고 덜 쓰는 습관을 중시하는 지인들, 몇만 원씩 쓰며 레스토랑에서 만나지 않고 소박하게 요리한 소풍 음식을 싸들고 동네 공원이나 바닷가에서도 신나게 놀 줄 아는 친구들, 물건을 사며 플렉스를 즐기는 것의 허상에서 벗어나 시간부자이자 여유로운 마음부자로서 행복한 이들….
이런 사람들과의 연대를 가진 파이어족과 혼자 고독하게 소신을 지켜가는 파이어족 간에는 자신감, 만족감, 파이어 운동 효과까지도 크게 다를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서 또는 인터넷 상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찾아 소통하고 즐기며 힘을 받기를 권한다. 직접 연대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영상이나 책 등을 통해 간접 연대를 느껴볼 수도 있다. 힘이 되는 인생 책 한 권 만나는 일이 의미 없는 수십 명과의 소모적 모임보다 더 힘이 되기도 하지 않은가.
콘텐츠 소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가 되기도 쉬워졌다. 필자도 마흔에 은퇴하고 소박한 파이어족으로 사는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서 공유하고 있다. 생각을 나누는 것은 글 쓰고 영상을 만드느라 공을 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피드백을 받으며 소통하고 응원받는 효과도 준다.
▲ 캐나다의 미세먼지 하나 없이 새파란 겨울 하늘이 인상적이다. <캐나다홍작가> |
나이가 들면서 사람 볼 줄 알고 세상 볼 줄 아는 눈이 더 깊어지기 때문에 지인 집단이 꾸준히 재정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삭막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변화이고 더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를 여는 일이다. 호구가 될 친구를 찾겠다는 것도 아니고 파이어 생각이나 합리적 소비관을 가진 이들과 편하게 소통하며 연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니 당연한 데다 건전하기까지 하다.
어릴 때는 친구 집단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기 어려워서 그저 속한 집단에서 배제되지 않으려 기를 쓰기도 한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만 말하고, 절약 얘기는 커녕 있는 척 쿨한 척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수동적인 관계, 마음 안 맞는데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학창 시절부터 오래 만난 친구와 무조건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한다는 우정 원칙 같은 것은 없다.
때로는 이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도 하다. 학생 때는 몰랐지만 성인이 되어 만날수록 나에게 민폐만 되는 친구, 이기적인 친구, 예의가 없는 친구, 상대를 이용하려는 친구 등 오래 교류해서 좋을 것 없는 모습들을 발견할 게 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맘에 안드는 인간관계 속에서 억지로 버티는 것은 회사에서나 쓰는 '먹고살기 스킬'이지 용감하게 은퇴하고 자유롭게 살려는 파이어족의 일상에서는 필요 없다.
나와 잘 통하는 새 친구들을 만드는 것, 나와 지향점이 같은 파이어 연대를 찾아 서로 응원하고 힘을 받는 것은 합리적이면서도 따듯함을 늘리는 성숙한 선택이다.
그러니 새 지인을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인생 2막에 맞는 좋은 친구를 찾아보겠다는 적극성으로 다가가면 된다. 캐나다홍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