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이 12월6일 카타르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브라질과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축구를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으로 이끈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이 2022 카타르 월드컵을 끝으로 한국 대표팀을 떠난다.
벤투 감독은 세계 축구계의 변방이었던 한국 축구에 점유율을 강조하는 '빌드업 축구'를 이식해 월드컵 본선에서 강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벤투 감독은 6일 브라질과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 재계약을 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들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에게 내 결정을 말했다"며 "결정은 이미 지난 9월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미래를 생각할 때"라며 "앞으로 쉬면서 재충전하고 그 뒤에 향후 거취에 대해 선택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벤투 감독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뒤인 2018년 8월28일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4년 넘게 팀을 이끌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과 함께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벤투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이뤄낸 것에 대해 고맙다"며 "그동안 한국팀을 이끌 수 있어서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4년이 넘는 동안 한국 축구 대표팀에 '빌드업 축구'를 심었다. 빌드업 축구는 최후방 골키퍼부터 차근차근 패스를 전개해 최대한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다가 상대 진영에서 빠른 패스로 득점을 노리는 방식을 말한다.
빌드업 축구는 유럽과 남미 등 현대축구에서 보편화된 흐름이었지만 한국 대표팀의 축구는 '선 수비, 후 역습'으로 강팀을 상대하는 게 대표적 전술이었다.
벤투 감독은 2018년 9월 대표팀 감독 데뷔전인 코스타리카전부터 점유율 축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후 체계적 훈련프로그램과 선수단 장악능력으로 신뢰를 얻었다.
벤투 감독 체제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은 비교적 수월하게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과했다.
본선에서도 강팀들을 상대로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점유하고 공격을 펼쳤다. 남미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아프리카 복병 가나에도 우위를 보였다. 포르투갈전에서도 팽팽한 힘싸움을 이어갔다.
그동안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최하는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했으나 개최국 카타르에 일격을 당해 8강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월드컵 2차 예선에선 북한, 레바논과 잇달아 0-0 무승부에 그쳤다. 2021년 3월 한일전에서 0대3으로 패배했을 때에는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선발 명단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 '쓰는 선수만 쓴다', '잘하는 K리거를 외면한다'는 지적을 종종 받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에선 조규성(전북), 이강인(마요르카) 등을 기용하기도 했지만 이강인 선수를 좀 더 일찍 대표팀에 합류시켜 호흡을 맞추게 했다면 보다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는 시선도 있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아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올려놓으면서 한국에서 성공적 커리어를 마감했다.
포르투갈 출신의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을 이끈 외국인 감독이자 한국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이다. 월드컵이 끝나고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 감독이 다음 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모두 맡은 사례는 벤투 감독이 사상 최초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57경기를 소화하며 거둔 35승(13무 9패)은 역대 감독 최다승 기록이기도 하다.
현역 시절인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포루투갈 선수로서 한국을 상대하기도 했던 벤투 감독은 2004년 은퇴한 뒤 2005년부터 포루투갈 축구 리그의 스포르팅 FC 감독을 맡았다. 그는 팀 창단 사상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등의 성과를 냈다.
이후 2010년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에 선임돼 유로 2012 4강, 2014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2016년 포루투갈 축구 대표팀 감독을 사임한 뒤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기 전까지 브라질 크루제이루 EC,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FC, 중국 충칭 당다이 리판 등을 전전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