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삼성전자 '리사 수' 원한다면 여성인재 이공계 진학 지원부터

▲ 삼성전자가 창사 53년 만에 여성 사장을 발탁했지만 여성 대표이사가 나오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종희 DX부문장 대표이사 부회장(오른쪽)과 경계현 DS부문장 대표이사 사장.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 창사 53년 이래 첫 여성 사장 탄생.’

이영희 삼성전자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의 사장 승진이 6일 언론에 집중조명되며 주요 기업에서 여성 전문경영인들의 약진이 부각되고 있다.

이영희 사장을 시작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제조업계에 앞으로 여성 사장이 줄줄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나오기 힘든 조직이었고 매년 1~2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삼성전자의 사장 승진자는 앞으로도 남자가 될 공산이 크다.

2022년 6월30일 기준 삼성전자 전체직원 11만7321명 가운데 여성 직원은 3만530명으로 2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 내 여성임원 비율은 2020년 기준 6.6%에 불과하다.

이 여성임원들 마저도 대부분 마케팅, 전략, 인사, 법무 등 지원업무를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기업에서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기술전문가가 우대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인력들이 지원 업무에 쏠려있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도 삼성전자 사장단에서 여성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희 사장도 결국 마케팅 전문가로서 사장단에 합류한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에서 미국의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여성 엔지니어 겸 전문경영인의 탄생은 여전히 요원한 셈이다.

리사 수는 대만계 미국인으로 MIT 전기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IBM을 거쳐 AMD에 합류한 뒤 한 때 파산 걱정까지 해야 했던 AMD의 부활을 이끈 최고경영자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로 유명하다. 

사실 제조, 기술기업의 여성임원 부족은 삼성전자나 우리나라 기업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경쟁자이기도 한 대만 TSMC도 임원층으로 갈수록 여성이 부족하고 특히 여성 기술전문가는 더더욱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TSMC는 2021년 기준 생산라인 근무자의 80%가 여성인 반면 임원진의 여성 비율은 8.3%에 불과했다.

직원의 35%가 여성인 애플은 좀 더 상황이 나은 편이긴 하다. 애플은 최고위 임원 12명 가운데 2명, 약 16%가 여성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이와 같은 현상과 관련해 “기업들은 더 이상 컴퓨터나 과학을 배우는 여성들이 충분치 않다는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며 “더 많은 여성들에게 컴퓨터 과학을 교육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이공계학과 진학 기피현상은 두드러진다.

국내 여자 대학생 가운데 이공계 전공자는 20%에 불과하지만 남자 대학생은 50.1%가 이공계를 전공하고 있다.

또 2020년 여성 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인력의 신규 채용 비율은 남성이 71.9%인 반면 여성은 28.1%에 그쳤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선호도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공계 직업군과 타직업군의 평균연봉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여성들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계속 멀어진다면 남녀의 임금 격차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 아래서 임금격차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남녀평등이란 것도 결국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기업들은 우선 여성 기술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육과정에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느 분야에 진학할 것인지는 중·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이 시기에 이공계 과목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도 주요 기업들이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제도권으로 끌어올려 확대 운영한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이공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사내 지원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여성은 기업에 입사한 뒤 결혼, 출산, 육아와 관련된 구조적 제약 때문에 고위 임원에 오를 만한 전문성을 획득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여직원들이 자녀가 만 12세가 될 때까지 필요한 시기에 맞춰 육아휴직을 2년간 분할해서 쓸 수 있도록 해준다. 2012년부터 ‘임산부팀’ 콜센터를 세워 임신한 여직원들의 업무량 조정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도적으로나 기업문화 차원에서 개선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첫 여성 사장 발탁에는 53년이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성이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르는 날이 너무 멀리 있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