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EU 전기차 보조금 논의 긍정적 신호, 현대차 기아 수혜는 난망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으로 12월1일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잔을 부딪히고 있다. < AFP >

[비즈니스포스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을 대표해 미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논의를 거쳐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전기차 지원금 지급 중단을 겪게 된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한국 자동차기업까지 수혜가 돌아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 일을 피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1일 마크롱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동맹인 유럽연합을 위해 양보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같이 해결해 나갈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른 시일에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유럽 전기차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럽도 미국의 정책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새 전기차 지원 정책은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자연히 유럽과 한국, 일본 등 국가 자동차기업은 미국 수출에 타격을 받게 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을 대표해 미국 정부의 이런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하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전기차 지원 방안에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연합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 만큼 앞으로 유럽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가 같은 문제로 한국을 대할 때와는 다소 비교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새 지원 정책으로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어려워지자 미국 정부 측에 항의하며 다양한 소통채널을 통해 해당 정책을 재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전기차 보조금에 관련한 내용을 재차 언급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거나 앞으로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전했을 뿐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 과정에서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미국의 ‘양보’와 변화, 해결 등을 언급한 것과 다소 온도차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유럽연합과 미국 사이 논의가 긍정적 방향으로 진전되면 현대차와 기아도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왔다.

미국이 유럽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 시기를 늦추거나 보조금 지급 조건을 완화한다면 한국 자동차기업도 미국에서 전기차 지원금을 받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 논의가 긍정적으로 진전되더라도 유럽 이외 지역까지 수혜가 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현재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방안은 캐나다 또는 멕시코와 같이 유럽 국가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적용에 예외로 두는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연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자유무역 협정을 기반으로 멕시코와 캐나다를 대하는 것처럼 유럽을 지원 허가 목록에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 국가에 예외를 적용하는 일은 미국 정부가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안을 전반적으로 손보는 것보다 비교적 쉬운 일이 될 수 있어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국과 EU 전기차 보조금 논의 긍정적 신호, 현대차 기아 수혜는 난망

▲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되는 현대차 전기차 주력모델 '아이오닉5'.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 소속 국가에 예외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 방향을 결정하거나 중국을 견제하는 데 매우 중요한 파트너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점도 이런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라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입장에 놓이지만은 않았다는 점도 한국 정부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어려운 이유로 분석된다.

현재 미국에 대규모 배터리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가장 큰 수혜를 볼 수 있는 기업들로 꼽히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전기차 생산공장을 통해 이르면 2024년부터 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유럽연합과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 기업까지 폭넓게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현대차와 기아가 불이익을 받는 상황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관련해 사과할 뜻이 없다"며 법안 시행 과정에 약간의 오류가 나타난다면 이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