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위기의 디즈니 구원투수는 '구관', 밥 아이거 다시 CEO로

▲ 밥 아이거 전 디즈니 최고경영자(사진)가 2년9개월 만에 디즈니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그는 현재 디즈니 왕국을 건설하는데 초석을 놓고 성과까지 거둔 입지전적 전문경영인으로 유명하다.

[비즈니스포스트] 디즈니가 다시 ‘밥 아이거’를 새 사령탑으로 선택했다.

밥 아이거는 전임자의 실책으로 위기를 겪던 디즈니를 15년가량 이끌면서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현재의 ‘디즈니 왕국’을 건설한 종합엔터테인먼트업계의 입지전적 전문경영인이다.

미국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미국 현지시각 20일 디즈니는 성명서를 통해 밥 차펙 최고경영자(CEO)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밥 아이거 전 디즈니 CEO를 선임한다고 밝혔다. 밥 아이거가 앞으로 최소 2년간 디즈니를 이끌게 됐다고 덧붙였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의 성명서 발표 이후 사내에 이메일을 돌려 “저는 디즈니가 지난 3년 동안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현재도 여전히 상당히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저는 낙천주의자다. 디즈니에서 일하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불확실성에 직면하더라도 우리 임직원들은 불가능을 달성한다”고 말했다. 

밥 아이거가 디즈니 CEO로 복귀한 것은 코로나19 펜데믹 직전인 2020년 2월 디즈니 CEO에서 물러난지 2년9개월 만이다.

아이거 CEO의 복귀는 예상치 못한 일로 여겨진다.

CNBC는 밥 아이거의 복귀를 놓고 ‘밥 아이거가 돌아왔다(Bob Iger is back)’는 짧은 문장을 시작으로 그의 귀환 소식을 전했다.

아이거 CEO는 디즈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는 디즈니가 위기에 처했던 2005년 디즈니의 최고경영자에 발탁됐다. 디즈니인터내셔널 사장에 오른지 약 6년 만의 일이었다.

아이거는 당시 취임하자마자 ‘디즈니는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공개 발언으로 위기감을 환기한 뒤 여러 인수합병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 등 콘텐츠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미디어기업을 잇따라 사들였으며 중국 상하이와 홍콩에 있는 디즈니 테마파크를 확장해 디즈니의 부활을 이끌었다. 2019년 3월에는 20세기폭스를 710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거 CEO의 행보는 일각에서 ‘무리한 투자’가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디즈니가 인수한 회사들이 콘텐츠로 수십억 달러를 안정적으로 벌어들인 덕분에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모두 없어졌다.

CNBC는 2019년 9월 보도에서 여러 콘텐츠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돌이켜보면 (디즈니의) 모든 선택이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이거 CEO는 (디즈니의) 역사적으로 주요 거물로 간주될 것이다” 등의 평가를 내렸다.

넷플릭스가 주도해온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 디즈니플러스라는 플랫폼으로 도전장을 내 성과를 낸 것도 아이거 CEO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가 디즈니 CEO로 복귀한 것은 모두 이러한 성과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이거의 뒤를 이어 디즈니를 이끌어온 밥 체이펙 전 디즈니 CEO는 2년 반 동안 디즈니의 새 활로를 찾지 못했다.

디즈니가 11월 초에 발표한 3분기 실적은 기존 월가의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디즈니 주가는 1년 동안 40% 넘게 하락했다. 아이거 CEO 시절(2005~2020년) 디즈니 주가가 약 6배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사실상 아이거 CEO의 복귀는 위기에 빠진 디즈니를 다시 한번 수렁에서 건져내라는 특명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수잔 아놀드 디즈니 회장은 아이거 CEO의 복귀를 알리는 성명에서 “디즈니가 점점 더 복잡한 산업 변화의 시기를 지나는 가운데 밥 아이거가 이 중추적인 시기에 회사를 이끌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재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거 CEO는 디즈니 내부에서도 평판이 좋다.

그는 디즈니 CEO에 취임한 뒤 각 부서에 적임자를 임명하고 그들에게 모든 권한을 맡겼다. 2000년대 초반 디즈니를 이끌었던 전 CEO 마이클 아이스너가 모든 업무에 사사건건 참견했던 것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아이거 CEO의 행보는 자연스럽게 디즈니가 최고 실적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다. 외신을 보면 그가 적재적소에 인사를 하고 전적인 믿음을 부여해 디즈니를 콘텐츠업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힘들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거 CEO는 195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새 옷을 살 수 있는 돈이 생길 때까지 천 조각을 덧대어 꿰맨 옷을 입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 ABC에 입사해 제작보조로 일했다. 이후 캘거리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방송 제작으로 두각을 나타내 ABC 임원진의 눈에 들었고 1989년 ABC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발탁됐다.

1993년에는 ABC네트워크텔레비전그룹의 사장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는 ABC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에 올랐다. 1995년에는 ABC 회장으로 승진해 1999년까지 일했다.

디즈니는 1999년 아이거를 디즈니의 국제 운영을 감독하는 사업부인 디즈니인터내셔널의 사장이자 ABC그룹의 회장으로 임명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