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
▲ 홍기택 KDB 산업은행 회장.
홍기택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성빈 전 신한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아내다.
경기고등학교,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융사 사외이사 경력이 많다.
박근혜정부 들어 금융정책의 싱크탱크로 부상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경제1분과 인수위원에 이어 KDB금융그룹 회장 겸 KDB산업은행 은행장으로 선임됐다.통합 산업은행이 출범하면서 초대회장으로 임명됐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 리스크담당 부총재로 선임됐으나 반 년도 안 돼 중도사퇴했다.
경기고와 서강대의 화려한 인맥을 자랑한다. 기행과 돌발발언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엉뚱한 성격의 소유자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
◆ 평가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의 전문가다.
홍기택은 ‘외국 자본과 1970~199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 ‘외국 자본의 유입과 금융이 경색된 경제에서 통화정책’ ‘1970년대 초 이후의 한국 금융개혁’ 등의 논문을 썼다.금융위는 그를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 은행장으로 선임하면서 “홍 교수가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 전문가로, 정책금융 체계 개편과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 경제의 활력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소 엉뚱한 데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위 시절 모자를 쓴 채 취재진에게 귤을 나눠주기도 했다. 기자들이 “누구시냐”고 묻자 그는 “비밀”이라고 답했다. 그를 알아본 한 기자가 “홍기택 교수 아니냐”고 묻자 그는 “홍기택이 누구야”라며 인수위 건물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이 일로 ‘귤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맑은 날 검은 우산을 펼쳐 드는가 하면 기자의 손이 어깨에 닿자 “여기 굉장히 민감한데에요. 어제도 얘기했지만 민감대, 민감한 부분은 좀. 나 여성부에 고발할거야”라고 말해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2013년1월23일 출퇴근길에 돌발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출근길에 “내가 까마귀 고기를 먹어가지고 금방 까먹어 아무 것도 몰라 어휴”라고 말했고, 퇴근길에 “저녁 식권 4천 원짜리야. 4천 원짜리 일밖에 안해. 수고하십쇼”라고 말했다.
김용준 인수위 위원장이 총리직에서 사퇴한 다음날인 2013년1월30일 “여러분들 뻗대기(기자들이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 너무 많이 해서 내가 불쌍해 죽겠어 아주. 데스크한테 얘기해서 뻗대기 하지말라고 그럴게”라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의 기행과 돌발발언에 대한 주변인들의 생각은 갈린다.“달리 보면 그만큼 친화력이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뜻” “그는 진지하고 생각이 깊고 점잖은 이미지” “그의 행동들이 신문에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괴짜스럽진 않지만 소신이 강하다. 이 같은 성격이 때로는 주장이 강해 잘 굽히지 않는 것처럼 비친다. 그가 인수위에서 기자들을 피하기로 한 번 마음먹어서 기이한 행보들을 이어나가는 게 아니겠느냐” 등 다양하다.
그는 얼리어답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먼저 사용해 보고, 먼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이런 성격은 업무에서도 나타난다.
그가 운영위원을 맡았던 한국투자공사 관계자는 “홍 위원은 업무처리에서 꼼꼼하며 남들보다 앞서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인터넷이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익혀 동료들에게 가르쳐주거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IT 제품을 먼저 사용하는 취미가 있으며 예전부터 컴퓨터를 직접 조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
◆ 경력
1975년 한국은행 조사2부에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뗐다.
1984년부터 중앙대학교에서 경제학부 부교수를 거쳐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을 맡았다.
금융사 사외이사 경력이 많다. 동양종합금융증권과 삼성카드에서 사외이사를, NH농협금융지주에서 사외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2013년부터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경제1분과 인수위원으로 선임돼 박근혜 대통령의 금융분야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같은 해 4월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 은행장으로 선임됐다.2015년 1월 통합 산업은행의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 2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 리스크담당 부총재로 선임됐다. 그러나 임기를 시작한지 반 년도 안 돼 중도사퇴했다.
◆ 학력
1971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75년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전성빈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부인이다. 전 교수는 2010년 신한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금융권 최초 여성 이사회 의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같은 해 ‘신한사태’가 일어나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사태수습을 주도했다.
두 사람은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시절 만났다.
◆ 상훈
◆ 상훈
- 어록
-
“제가 낙하산으로 왔기 때문에 전 부채가 없다. 오히려 제가 어떤 의미에서 적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3년10월29일 국정감사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
“지난해 적자 규모는 1조 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올해 흑자경영기반을 재구축하겠다. 구조조정 등 리스크관리를 통해 대손충당금을 줄이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6000억 원 정도의 흑자는 가능하다.” (2014년2월1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전년도 13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산업은행 실적에 대해)
“최근 세계경제가 악화하면서 그동안 추진했던 민영화 여건이 악화하고 정책금융의 필요성이 확대됐다. 정책금융 강화가 KDB금융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책금융은 KDB금융이 강점을 가진 분야로서 지주사의 역량과 노하우를 100%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KDB금융이 정책금융기관 맏형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2013년 4월9일 취임식에서)
“30년간 교수직을 수행하는 동시에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현장을 경험했지만, 국내를 대표하는 금융기관의 수장자리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시작을 고민하다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정책금융기관의 맏형 역할, 리스크관리, IB역량 강화, 현장탐방 등에 힘을 쏟았다." (2013년 7월24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으로 새롭게 출발할 산업은행은 중소기업을 위한 튼튼한 금융 사다리를 다양하게 준비해 중소기업의 희망이 되도록 하겠다.” (2013년 9월4일 '창조경제 확산을 위한 창조금융 현장설명회'에서)
“2014년 중 KDB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책금융 모델을 정립하고 지속가능한 흑자경영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 (2014년 신년사에서)
“국가재건 업무가 중심이었던 은행을 기업금융과 투자금융을 선도하는 은행으로 발전시킨 선배들의 바통을 이어받고 세계 일류은행이자 통일대박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으자.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서독이 동독을 너무 몰랐다는 이야기를 새겨 들어야 한다." (2014년 4월1일 창립60주년 기념행사에서)
◆ 평가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의 전문가다.
홍기택은 ‘외국 자본과 1970~199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 ‘외국 자본의 유입과 금융이 경색된 경제에서 통화정책’ ‘1970년대 초 이후의 한국 금융개혁’ 등의 논문을 썼다.금융위는 그를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 은행장으로 선임하면서 “홍 교수가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 전문가로, 정책금융 체계 개편과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 경제의 활력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소 엉뚱한 데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수위 시절 모자를 쓴 채 취재진에게 귤을 나눠주기도 했다. 기자들이 “누구시냐”고 묻자 그는 “비밀”이라고 답했다. 그를 알아본 한 기자가 “홍기택 교수 아니냐”고 묻자 그는 “홍기택이 누구야”라며 인수위 건물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이 일로 ‘귤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맑은 날 검은 우산을 펼쳐 드는가 하면 기자의 손이 어깨에 닿자 “여기 굉장히 민감한데에요. 어제도 얘기했지만 민감대, 민감한 부분은 좀. 나 여성부에 고발할거야”라고 말해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2013년1월23일 출퇴근길에 돌발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출근길에 “내가 까마귀 고기를 먹어가지고 금방 까먹어 아무 것도 몰라 어휴”라고 말했고, 퇴근길에 “저녁 식권 4천 원짜리야. 4천 원짜리 일밖에 안해. 수고하십쇼”라고 말했다.
김용준 인수위 위원장이 총리직에서 사퇴한 다음날인 2013년1월30일 “여러분들 뻗대기(기자들이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 너무 많이 해서 내가 불쌍해 죽겠어 아주. 데스크한테 얘기해서 뻗대기 하지말라고 그럴게”라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의 기행과 돌발발언에 대한 주변인들의 생각은 갈린다.“달리 보면 그만큼 친화력이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뜻” “그는 진지하고 생각이 깊고 점잖은 이미지” “그의 행동들이 신문에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괴짜스럽진 않지만 소신이 강하다. 이 같은 성격이 때로는 주장이 강해 잘 굽히지 않는 것처럼 비친다. 그가 인수위에서 기자들을 피하기로 한 번 마음먹어서 기이한 행보들을 이어나가는 게 아니겠느냐” 등 다양하다.
그는 얼리어답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먼저 사용해 보고, 먼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이런 성격은 업무에서도 나타난다.
그가 운영위원을 맡았던 한국투자공사 관계자는 “홍 위원은 업무처리에서 꼼꼼하며 남들보다 앞서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인터넷이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익혀 동료들에게 가르쳐주거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IT 제품을 먼저 사용하는 취미가 있으며 예전부터 컴퓨터를 직접 조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타
경기고와 서강대 인맥이 화려하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기고 1년 후배다. 참여정부시절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권오규 카이스트 교수와 경기고 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홍 회장과 함께 1971년 경기고를 졸업한 인물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김경호 전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최흥식 하나금융지주 사장,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등이 있다.
이들을 잘 아는 지인은 “1971년 경기고 졸업생들은 정계, 기업 고위직, 관료 등에 많이 진출했다”며 “이들이 파워엘리트 그룹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소위 3세대 서강학파로 불린다. 1세대 서강학파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재직한 남덕우 전 총리, 전두환 전 대통령 때의 김만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재무부 장관을 거쳐 6공화국 때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한 이승윤 전 부총리가 있다.
2세대 서강학파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3세대 서강학파로 홍 회장과 함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김인기 중앙대 명예교수, 김경환 남성일 서강대 교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으로 인연이 깊다. 그는 2007년 정책 과외그룹인 이른바 ‘5인 공부모임’ 일원으로 참여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부인인 전성빈 서강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와 인연이 있다. 김 전 총재는 2007년 경희대 교수였을 당시 대선 출마를 고려 중이던 고건 전 총리의 자문조직인 ‘미래와 경제’의 정책개발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미래와 경제’에 홍 회장을 비롯해 이두원 연세대 교수, 김경환 서강대 교수, 김종석 홍익대 교수, 이진순 숭실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KDB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직원들과 소통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생일이거나 결혼하는 직원에게는 축하전화를 하고 가족 상을 당한 직원에게 위로 메일을 보냈다. 그는 “직원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었지만 주요 현안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며 “비록 전화나 메일이지만 수시로 마음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