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외압은 없다. 혹여 있다면 정면으로 맞서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하며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을 향한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에 외압은 없었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기자의눈] 우리금융 회장 제재에 "외압 없다"는 이복현, 믿어보고 싶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징계 결정에 외압이 없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검사 인생 20여 년을 들며 외압에 맞서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전문분야라고도 강조했다.

일단 이 원장 발언의 진정성을 믿어보고 싶다.

이 원장은 취임 뒤 발 빠른 움직임과 거침없는 소신 발언, 소통의 리더십 등을 보이며 금융산업 관련 경험이 부족하다는 업계의 우려를 깨고 금융권의 신뢰를 얻었다.

검사출신인 이 원장은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고 적어도 이 원장이 생각하고 있는 범주에서는 다른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원장이 내세운 원칙의 범주를 넘어서 살펴보면 미묘한 상관관계들이 연결된다. 그래서 계속 의문이 가시지를 않는다.

왜 지금일까. 왜 이 시점에 손 회장의 징계를 확정했을까.

이번 손 회장을 향한 금융당국의 제재는 다소 갑작스럽게 이뤄진 경향이 있다.

애초 금융권에서는 현재 법적다툼이 끝나지 않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뒤 손 회장의 라임사태 징계가 확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하게 보면 펀드상품을 은행창구에서 대신 팔면서 책임질 일이 있었느냐를 따지는 유사한 사안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1년 반 넘게 서랍 속에 넣어뒀던 손 회장 징계 건을 꺼내들고 강한 제재를 확정했다. 이에 따라 손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이 불투명해진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상황으로 보면 외압이 있다고 오해 받기 딱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평시가 아니다. 아무 일 없어도 다들 긴장하고 조심한다는 연말 인사 시즌이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금융권에서는 새 정권의 낙하산 인사설이 파다하게 돌고 있다.

BNK금융지주는 최근 자녀특혜 의혹으로 회장이 임기를 남기고 물러나게 됐는데 다음 회장 후보군에 외부 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경영승계 규정을 바꿔 놓은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기 위한 금융당국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Sh수협은행은 최근 재공모를 통해 지원한 후보 2명을 상대로 면접을 보고도 최종 행장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 역시 이미 내정된 인사가 있어 일어난 일이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에너지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차 면접에서 떨어진 최연혜 전 의원이 재공모를 통해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큰 논란도 일었다.

"외압은 없다"는 이 원장의 말 자체를 믿기 쉽지 않은 이유다. 

물론 외압이 없다는 이 원장 말의 진위를 지금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진정성을 사후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기자의눈] 우리금융 회장 제재에 "외압 없다"는 이복현, 믿어보고 싶지만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당국의 중징계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만약 손 회장이 금융당국의 뜻대로 물러나게 된다면 그 다음 인사 진행 과정을 보자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우리금융 회장 낙하산설이 도는 것을 넘어 3월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거나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금융권 인사의 구체적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금융권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4대 천왕, 박근혜 정부 시절 서금회 등 낙하산 인사가 내려온 전례가 많이 있다.

만약 손 회장이 그대로 물러나고 대선 당시 지지선언을 했거나 캠프에 몸 담았던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우리금융 회장으로 낙점된다면 이 원장의 진정성은 사후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낙하산이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경영되고 있는 민간업체를 대상으로 최고경영자를 징계를 통해 사퇴 압박을 하고 난 뒤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거나 지지선언을 했던 인사를 앉힌다면 그 어떤 전문성을 지닌 인물이 오더라도 낙하산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외압이 없다는 이 원장의 말을 제발 좀 끝까지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한재 기자